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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섭 Mar 30. 2020

[드라마 리뷰] 타인은 지옥이다

타인은 정말로 지옥인가

OCN 드라마는 특유의 색채가 있다. 미스터리, 스릴러 기반의 수사물. 장르적 색채가 강한 까닭에 호불호가 갈린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채널이 대중에게 인식되고 약 5년 전부터 오리지널 콘텐츠로 히트하고 있는 것을 보면 충분히 이걸 좋아하는 마니아층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매체가 많아진 현재 콘텐츠, 플랫폼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의미한다. 때문에 OCN 드라마들은 계속 장르적 쾌감을 중시하는 형태로 발전해왔다. 연쇄살인마, 악귀, 사이비 교주 등 다소 자극적인 소재에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공중파 그리고 종편에서조차 드라마로 다뤄지기 어려운 것들이 OCN에서는 드라마화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그들만의 '씨네마틱 유니버스'는 더욱 공고해졌다. (여담이지만 TVN 대탈출이 OCN 드라마를 참고한다면 아이템들을 꽤 많이 발굴할 수 있을 것 같다.)


문득 OCN 드라마들을 정말 말 그대로 '드라마로 시청하고 소비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드라마는 현실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와 반대로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로서 현실을 배제한 채 소비해도 되냐는 것이다. 이러한 나의 의문은 기본적으로 드라마라는 것에 대한 내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나는 드라마는 현실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만큼 어떤 형태로든 현실의 모습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그것이 새로운 현실을 재생산해낼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이를 테면 요즘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 돌풍 때문에 박새로이 컷이 유행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나의 이런 관점에서는 단순히 자극적인 재미만 추구하는 드라마보다 우리에게 감정적으로 스며들어 여운을 남기는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다. 


그러나 모든 드라마가 그런 형태라면 드라마 시장은 다양성을 잃는다. 또 모든 드라마가 따뜻해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기에 OCN 드라마는 내 기준에서 나쁜 드라마야 라고 함부로 일컬을 수 없는 것이다. 예능의 경우도 비슷하다. 유퀴즈처럼 따뜻하고 건강한 가치를 표방하는 프로가 있는 가하면 더 지니어스나 대탈출처럼 다분히 오락적인 재미가 뛰어난 예능 또한 존재한다. 나 역시 정반대의 분위기를 가진 이 프로들 모두 좋아하기에 어떤 프로그램이 감히 좋고 나쁘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 드라마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니 OCN 채널에서 따뜻한 드라마, 이를 테면 멜로가 체질이나 동백꽃 필 무렵 같은 드라마를 제작해야 한다는 것은 채널 아이덴티티를 없애버리자는 말과 같다. 그러니 OCN은 장르적 색채를 그대로 가져가는 드라마들을 계속 찍는 것이 채널 경쟁력일 것이다. 그러니 결국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OCN 드라마를 '하나의 장르물'로서 보겠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어 드라마에 대한 별 볼 일 없는 내 생각을 운운했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장르물로서 미스터리, 스릴, 서스펜스 등 원작 웹툰의 핵심적인 부분들을 훌륭하게 영상으로 구현했다. 연출이나 연기, 카메라 워크 등의 요소에서 크게 아쉽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없었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메인 빌런을 한 명 더 추가한 것이고 그다음 중요한 변화는 여경 캐릭터의 투입으로 수사 플롯을 극의 한 줄기로 가져온 것인데 나는 이것들이 꽤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앞선 요소들 말고 장르물에서 다소 뒤로 밀려나 있는 평가요소인 '메시지적인 측면'에서 이 드라마를 좀 더 살펴보고 싶었다. 타인은 지옥이다 라는 그 말의 의미를 말이다.


원작 작가가 20대 초반 고시원에서 거주했던 경험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이 드라마가 아닐까. 그곳의 낯선 이들에게서 느꼈던 거리감, 두려움, 공포, 불편함, 불안감 등 축축한 감정들을 공간과 인물로 구현해낸 것이 아닐까. 내 상식 선에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인물들 투성이지만 안타깝게도 요즘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현실이 더 드라마 같다. 결국 타인과 타인의 접촉에서 오는 바이러스나 타인이 타인에게 저지른 끔찍한 성 착취 등 현실은 더 잔인하다. 드라마 속 낭자한 유혈보다 이제 타인을 믿지 못하게 돼버린 현실이 더 끔찍하다. 미디어를 접하고 드라마를 생각한다면 이제 더 이상 드라마 속 고시원과 인물들이 어디에도 없을 것 같지 않다. 어딘가에 충분히 존재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단 드라마에서 잔인한 것은 낯선 고시원 사람들만이 아니다. 어쩌면 그들보다 주인공 종우의 여자 친구, 지은이 더 지옥일지도 모른다. 가장 가깝고 믿었던 사람마저 나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것은 낯선 이에게서 오는 두려움보다 더 큰 상실감과 절망감을 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현실에서의 우리들도 (물론 나를 포함하여) 믿었던 사람에게 신뢰를 잃거나 혹은 배신당한 경험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럴 때의 기분은 어떠한가.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하지 않았나. 잠시나마 우리는 지옥을 맛본 것이다. 물론 다시 살아가겠지만 한 번 지옥을 경험한 이로서는 이제 더 이상 쉽게 타인에게 마음을 내주지 않게 된다. 그럼으로써 점점 고립되고 아이러니하게 이런 나는 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타인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이다. 아마 종우 여자 친구인 지은이 웹툰에서보다 드라마에서 더욱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등장한 것도 나는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연일 뉴스에서 다뤄지는 n번방 사건을 보면 이 드라마는 무난한 수준이다.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에 의해 받았을 고통과 또 사건이 공론화된 이후에도 이렇다 할 구제책이 없는 시스템을 생각하면 지옥은 드라마 속이 아닌 현실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며 조금이라도 같이 아파하고 국민 청원에 동의하는 것 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지옥을 사람이 사는 곳으로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고 믿는다.


이 드라마를 단순한 장르물로서 소비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드라마보다 더 잔인한 현실이 있기에 "에이, 그래도 저건 드라마지. 현실에서 저럴 수는 없잖아."라는 말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세상 잔인하고 폭력적이어서 다음 화를 보고 싶지 않았던 이 드라마를 보는 것이 오히려 현실을 마주 하는 것보다 쉽다. 이런 드라마를 그냥 그저 하나의 엔터테인으로서만 소비할 수 있는 사회가 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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