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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화일 Jul 10. 2024

이방인의 뉴욕뉴욕 VII

이방인의 관광객 모드 - 핫도그, 피자, 베이글 먹었으면 스테이크


케빈을 따라간 크리스마스 여행,

마지막 날 아침은 우중충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당장 다음날부터 크리스마스에 임박할수록 천둥번개가 칠 거란 예보가 나왔다.

돈이 없어 크리스마스 전 주에 여행을 온 것이 이런 식으로 전화위복이 된다니요?



지하철에서는 아침부터 부지런한 마약쟁이들이 역내에서 대마를 피고 있었다.

나는 뉴욕이 허락한 유일한 마약, 베이글을 또다시 먹으러 간다.


이른 시간인데도 지난번 간 곳보다도 줄이 더 길었던 베스트 베이글.

이름값을 이렇게 하는군요.


기나긴 줄을 기다리는 동안 화가 잔뜩 난 행인 하나를 봤다. 느닷없이 사방팔방을 발로 차며 가는가 하면 허공을 향해 욕을 해대기도.

런던보다 대체로 사람들이 더 활발한 만큼이나 빈곤층의 분노도 더 높은 것 같은 뉴욕, 더 강렬했던 점은 일주일간 본 여러 빈민층 중에 코카시안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뉴욕 베이글 가게에 올 때마다 느끼지만 선택지가 정말이지 너무나 많다.

머릿속으로 우왕좌왕하다 결국 직원분이 추천해 주신 블루베리 치즈에 블루베리 베이글 조합으로 선택했다.


결제 말미에 혹시 어디서 왔냐 물으시길래 한국이라 대답했더니 I'm Korean, too라며.

뉴욕에서 뜬금없이 만난 한국인, 정말 정말 반가웠다. 어쩐지 추천해 주신 베이글이 너무 맛있더라니. 믿고 먹는 한국인 입맛 최고.

가게 너무 바빠 보이던데 건승을 빕니다.



어제 저녁에는 너무 번잡했던 크리스마스 마켓에 다시 가니 주말 지난 오전이라 그런지 제법 평화로웠다. 사람이 조금 빠진 광장은 조명이 없는 오전에도 예뻤다.


느긋하게 노상 아침 식사를 마치고 마켓 구경을 하다 뉴욕에 온 내내 고민했던 해리포터 퍼즐을 결국 하나 샀다.

런던에 있다 뉴욕까지 와 사는 기념품이 해리포터라니.

하지만 박스에 NEW YORK이 박혀 있었는걸요.



뉴욕에서의 마지막 식사 메뉴는 스테이크.


소고기를 가능하면 안 먹고 있어서 갈까 말까 고민했는데 이왕 뉴욕에 와서 핫도그, 피자, 베이글을 차례로 먹어봤으니 다음은 스테이크 아니겠냐 싶었다.

그렇게 해서 가게 된 스타벅스 맞은편에 있는 백종원 아저씨 픽 식당.


위소한 사람의 여행이라 아침 내내 먹은 뉴욕의 거대한 베이글을 소화시키기 위해 미드타운부터 첼시까지 40분 거리를 찬찬히 걸어가기로 했다.


구역의 모든 사방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듯한 번화가를 지나 아파트들이 들어선 주택가를 걸으니 은근히 재미가 있었다.

건물 밖으로 드러난 비상용 계단을 볼 때마다 프렌즈가 떠올랐고 동네가 작아질수록 대문에 꾸며놓은 크리스마스 장식도 저마다 개성이 강했다. 뉴욕만의 독특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골목길 차도가 넓은 편인데도 일방통행이 많다는 것도 눈에 띄는 부분.

뉴욕 이미지와 다르게 한결 안전해 보여 좋았다.



식당 예약 시간까지 잠깐 짬이 나 마침 맞은편에 첼시 마켓을 가 보기로 했다.


빠른 걸음으로 둘러만 봐도 투머치의 나라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요란스럽게 꾸며진 공간.

눈부터 시끄러웠다.


안이 예상보다 크고 깊어서 좀더 둘러 보고 싶었는데 예약 시간이 점점 다가와 아쉽게 중간에서 돌아섰다.

들어오기 전에 구글 스토어 앞에서 어영부영 보낸 시간이 아까워졌다.



예약한 식당은 Old Homestead Steakhouse 라는 곳.


화장실에 들어가니 뉴욕 어느 식당에나 붙어 있던 "Employees Must Wash Hands Before Returning To Work" 문구가 여기에도 붙어 있었다.

처음엔 당연한 말을 써 붙여야 할 정도로 위생이 별로인 건가 싶었는데 가격대가 있는 식당에서마저 저 문구를 보니 관습인가 싶기도 하고.


둘이서 메인을 하나만 시키니 종업원이 확실하냐고 재차 물었다.

워낙 여러 번 괜찮겠냐 묻길래 기재된 무게에 뼈 무게도 포함되었나 했는데 나온 양을 보니 두 개 시켰으면 큰일났겠다 싶었다. 소식가의 위장을 좀더 무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녁 시간이 되자 주변 식탁도 하나 둘 차기 시작했는데 뉴욕에서 한국인은 이 식당에서 다 보는 것 같았다. 백종원 아저씨의 파급력인가.

스테이크는 나쁘지 않았는데 옆 자리 커플이 스테이크를 앞에 두고 엄청나게 싸우고 있어 오히려 그 쪽에서 도파민이 팽 돌았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


25달러에 지구를 사랑할지 유일하게 고민했던 물건


공항 가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스타벅스 매장.

여기서도 느낄 수 있는 투머치. 뭔가 잔뜩 장식해 놨는데 예쁘다기보다 정신이 하나도 없어 저절로 웃음이 터졌다.


반면에 파는 기념품이 특별히 소유욕을 자극하는 게 없어 조금 아쉬웠다. 뉴욕 자본주의에 처음으로 실망을 느껴봤네요.



겨울 뉴욕은 많이 춥고 많이 흐리다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유독 날씨 운이 좋았다.

뉴욕이라는 도시 자체를 기대보다 훨씬 재밌게 즐기기도 했지만 이번 여행은 해외 거주 한국인으로서 그 전까지는 생각지 못했던 여러 새로운 시각을 안겨주기도 한 점에서 특별하고 소중했다.


오기 전엔 환상조차 없었는데 오히려 여행이 끝나가니 다시 한번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몇 안되는 여행지, 뉴욕. 그래도 다음에 오게 된다면 그때는 이왕이면 따뜻한 날에 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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