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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화일 Jun 19. 2024

이방인의 뉴욕뉴욕 VI

이방인의 관광객 모드 -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치는 날

저녁에 여행메이트가 별렀던 브루클린에 드디어 들렀다.

영국인들이 왜 그렇게도 고층 빌딩에 집착하는지 알 것만 같은 허드슨 강 건너의 야경.



야경을 보자마자 아 런던인들 이걸 갖고 싶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햇빛이 반사되어 오묘하게 빛나는 건물의 유리벽이나 허드슨 강 위로 넘치는 저 불빛들이 탐나서 그렇게 고층 건물을 못 지어 안달을 내고 있나 싶다.


개인적으로 런던의 매력은 승전국 역사 덕분에 보존된 거리의 고전미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런던 지역 주민들은 은근히 스카이스크래퍼(초고층 건물)에 자부심이 있다. 건물 꼭대기층에서 런던 전경을 볼 수 있는 스카이가든도 관광 명소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영국인들이 더 사랑하는 느낌. 막상 올라가면 고층 건물이 너무 익숙한 한국인에겐 시들할지도 모른다.


인건비가 비싸고 옛것이 머물러 있어서인지 현지 사람들은 조금만 깔끔하고 마감이 좋아도 잘 감탄하고는 한다. 처음엔 보여주기식 반응인가 싶어 얼떨떨했는데 자연스레 살다 보니 알게 됐다. 조그마한 것에도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새삼스레 우리나라 사람들의 미적 기준이나 손재주가 정말 높다는 깨달음. 자랑스럽지만 칭찬에 후한 점에서만큼은 영국인들이 부럽기도 하다.



전날 밤을 브루클린 피자와 불태우고 느긋하게 현지인 놀이를 하는 날.

느긋하다고는 하지만 오전부터 나가 베이글 가게에 줄을 서고 센트럴 파크로 향하는 제법 부지런한 일정이다. 그러고보니 어느 순간부터 런던에서 어느 베이글 맛집이 어디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는데 알고 보니 한국에 런던베이글 가게가 생겼다고 한다. 스콘도 아니고 베이글이 왜 런던인가 싶어 어리둥절했던 기억.

베이글 맛집은 뉴욕입니다. 베이글이라기엔 살 떨리는 가격이었지만 정말 먹을 때마다 맛있었다.



런던 웨스트민스터처럼 뉴욕 센트럴파크에도 역사적인 인물들의 조각상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2020년 새로 세워진 여성 인권 선구자들의 조각상은 노예 출신 흑인해방운동가 소저너 트루스, 노예제 폐지 운동가이며 미국 최초의 여성 참정권자인 수잔 B 앤서니, 여성인권운동가 엘리자베스 스탠턴이다. 20개가 넘는 조각상 중 첫 여성 조각상이니 기념비적이라 할 수 있지만 시내 곳곳에서 오래된 페미니스트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런던에 비해서는 다소 아쉽다.



베레모를 쓰고 색소폰을 부는 너무나 뉴욕적인 장면도 마주친 반면 런던에서 본 것과 똑같은 거리 공연도 있었다. 사람들 몇몇을 불러 모아 세워놓고 뛰어넘는 아크로바틱 쇼였는데 재주넘기 자체는 런던보다 오히려 시시했던 반면에 호객하고 팁을 받는 입담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대담했다.


기껏해야 즐겁게 봤으면 관객들에게 이따 공연 끝나고 팁 부탁해, 카드도 돼, 박수 쳐 줘, 정도의 부탁(?)만 보다 참여자들 하나하나에게 적극적으로 일대일 대화를 시도하고 넌 백인이네? 좀 더 내, 하는 식의 애교 반 날강도 반의 매운 맛 호객을 보고 있자니 왐마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만 참여자 중 유일한 동아시아인이었던 한국인 남성에게 당연하다는 듯 재키 찬이라 부르는 모습에 기가 찼다. 총기 허용 국가에서 총 맞을 짓을 다 하네 싶었던 순간. 뉴욕은 다문화가 아닌 흑인과 백인 양문화 지역이고 그 속에서 타 인종은 절대적 소수일 뿐이라는 사실이 실감났다.





뉴욕 자살률을 눈에 띄게 경감시켰다는 이 빌딩 속의 숲도 볼 만큼 본 것 같겠다 슬슬 움직이려는데 마침 근처 광장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열고 있었다. 그럼 가야지. 갔는데 주말의 인파를 고려하지 않은 경솔한 결정이었다. 사람들 틈에 끼어 이리 저리 쓸려 다니다 결국 빠져 나와 예상보다 일찍 메디슨 스퀘어로 이동했다.

하지만 기가 빨려도 괜찮은 날이다.

런던보다 훨씬 맛있다는 뉴욕 한식을 예약했고 그전에는 런던보다 더 크다는 해리포터 기념품 가게에 들를 거니까.



해리포터 스토어는 갈까 말까 하다가 마침 기념품 가게가 가려고 했던 국밥 가게 근처에 있어 들렀는데 너무 잘한 선택이었다. 물건들보다도 인테리어가 너무 좋았다. 하늘을 나는 책들 하며 돌아가는 독수리 석상까지. 이야, 이거 진짜 같다 소리가 계속 나오는 디테일. 뉴욕 버터비어 병을 런던에 못 가져온 게 아직도 아쉽다.

감동에 못 이겨 저녁 전에 버터비어 아이스크림을 한 입 하고 말았다. 아는 맛이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느끼한 우유맛이 내 취향인건지 추억이 미각을 보정해 준 건지 괜찮았다.



약 이 년만에 먹는 돼지국밥은 감동적이었다. 서울 돼지국밥은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 걱정했는데 고기도 부산 돼지국밥과 비슷했고 조금 짰지만 양도 많았다.

문득 합천이 먹고 싶었다. 국에 부추 넣어서 깍두기 젓갈이랑.


어쩐지 한식집이 있다 했더니 알고 보니 그 근처가 한인타운이었다. 뉴몰든도 굉장히 (80년대) 한국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비할 바가 아니었다. 간판부터 한글로 도배가 된 진짜 한인타운. 주점 감성으로 소주병으로 장식한 트리도 먹튀한 백인 남성 얼굴을 가게 문앞에 그대로 박제한 것도 한국 그 자체라 너무 웃겼다.


그 사이에 마치 리키콜드런처럼 H마트가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었는데 내부가 끝이 없었다. 간혹 해외에서 한국 상품을 보다 보면 이것도 정말로 한국에서 파는 것인지 궁금할 때가 있는데 네모곽 빙그레 바나나 우유를 봤을 때도 그렇다. 한국 상품보다 오히려 일제가 많아 다소 실망했던 뉴몰든 H마트와는 너무 달랐다. 도파민이 폭발하는 라인업.

그 와중에 일본 회사에서 한국 호떡을 Korena pancake이랍시고 팔고 있어 어처구니가 없었다. 문어 팬케이크나 파세요.



다시 시내로 돌아가는 길. 주말이라 그런지 거리가 한가로웠던 적이 있나 싶게 바글바글했다. 미처 보지 못했던 하얀색 신호등도 그제야 눈에 들어오고. 색맹 때문에 초록빛을 흰색으로 바꾼 걸까 토론하다보니 어느 새 지난번 들렀던 크리스마스 마켓에 도착했다.

낮에 다른 마켓에 들렀을 때 이미 깨달았어야 했는데. 밤에 더 큰 마켓에 오면 더 붐빌 거라는 걸. 들어갈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마음대로가 아니었다. 본의 아니게 마켓 안에 갇혀 갈치처럼 차례차례 움직이다 나갈 길이 없어 트리를 가운데 둔 낭만적인 스케이트장에서 강제 구경을 하며 쉬었다.



뉴욕 여행의 마지막 밤, 예쁘고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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