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일 구하기
무릇 한국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사람이라면 한번쯤 해 봤을 생각, '여기 왜 이렇게 느려?'
눈만 많이 와도 안전 문자가 울리고 문의 메일을 보내면 늦어도 일주일 내에 답변이 오는 한국과 비교한다면 영국의 소통 시스템은 아주 꽝이라 할 법하다.
유럽에 비한다면 그나마 빠릿한 편이라는 건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그나마도 이전에는 한땀한땀 우편을 부치고 전화를 걸었다는 괴담이 있지만 코로나 이후로 많은 것이 간편화되고도 여전히 한국인에게는 느리고 아날로그인 런던이다.
물론 취업 준비에도 예외는 없다.
미리 현지 회사와 논의해 고용이 확정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영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은 미리 NI 넘버를 신청한다.
영국의 사회보장번호 시스템으로 이 번호가 있어야만 정규직이든 계약직이든 파트타임이든 고용이 될 수 있다. 다만, 번호를 받는 데만 약 한 달이 걸린다는 점. NI 넘버 승인이 떨어지면 그 번호가 무려 우편으로 오기 때문에 거주지도 미리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
나는 NI 번호를 받고 나서 본격적으로 영국의 이력서 개념인 CV를 돌리기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론 굳이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력서를 돌려도 웬만해선 답변이 바로 오지 않았기 때문에…
집을 구할 때와 비슷한 양상의 바늘 구멍, LinkedIn이나 채용 사이트를 통해 온라인으로 집어넣든 무작정 카페에 들어가 매니저에게 쥐어주고 나오든 10개를 돌리면 한 군데에서 전화가 올까 말까.
그리고 그 전화는 지원한 사실을 잊었을 때쯤 온다.
이력서를 너무 돌리다 보니 정작 ‘여기 너가 지원한 회사인데’ 하고 전화가 왔을 때 거기가 어디인지 몰라 당황한 적도 있을 정도. 심지어 나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효율성을 따지자면 NI 신청할 때 CV도 미리 다 준비해서 돌려놓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간혹 구인이 급한 회사에서는 빠르게 답을 줄 때도 있다.
그렇게 CV를 돌려 답변을 받아냈다면 다음은 면접 절차가 남았다. 회사들의 채용 절차는 대개 1차 HR과 하는 screening interview, 2차 test, 3차 실무 interview로 이어졌다.
Screening interview의 경우는 말그대로 회사에서 원하는 포지션과 내 경력 및 역량이 부합하는지, 언제부터 업무가 가능한지 등 기본적인 부분을 확인하는 절차였고, 2, 3차는 회사마다 직무마다 달라진다.
면접 절차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대부분 날짜와 시간을 회사에서 통보하는한국과 달리 영국은 지원자에게 가능한 시간을 먼저 요청해서 진행한다는 점이었다.
회사에서 통보하는 경우더라도 약 3개의 일정 후보를 알려주고 선택하게 했고,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지원자의 입장에서도 조율이 편했고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한국에서 회사 경력이 있더라도 영국에서 학위 또는 관련 경력이 없는 한 지원자는 출처 불분명한 대학을 나온 신입과 다름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사무직으로의 진입은 쉽지 않다.
한국 회사로 우회해서 영국에 정착하는 경우도 많지만, 현지에서 맞는 커리어를 찾기가 맨땅의 헤딩이나 다름없는 탓에 아무 연고가 없는 곳에서 혼자만의 실패를 여러 번 겪는 건 분명 벅차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 무한 실패의 과정에서도 제3자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채용 시장을 바라볼 수 있었던 독특한 경험이 남았다.
스스로를 어필할 기회조차 없는 상황이 어렵게 느껴지고 어렵게 주어진 기회에서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해 좌절하고. 내가 선보일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는 곳에서 스스로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어필한 경험은 아마 한국에서라면 해 보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모두가 똑같은 출발선은 아니지만 비교적 비슷한 선에서 출발한다. 그 때문에 한국에서 한계에 자주 부닥쳤던 이들이 오히려 런던에서는 원하는 일을 빠르게 구하기도 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각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면 한번쯤은 도전해 볼 만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