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나는 '사용자의 자유로운 공간'이라고 부른다.
"사위, 이것 좀 봐봐. 누가 전화를 해도 다 '정종갑'이라고 떠. 무서워서 전화를 못 받겠어."
무슨 말씀인가 싶어 내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런데 정말이다. 내 번호가 분명한데 액정에는 '정종갑'이라는 이름이 당당하게 떠오른다. 다른 지인이 전화를 걸어도, 심지어 모르는 번호가 와도 휴대폰은 오로지 '정종갑'만을 외치고 있었다.
장모님은 진심으로 걱정하고 계셨다. 몇 일전 핸드폰을 교체하신 이후로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정종갑'. 새로 산 폴더폰이 무슨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닌지. 며칠 동안 전화가 와도 받지 못하시고 바로 끊어버렸다고 한다. 친구들이 "왜 전화를 안 받냐"고 나중에 따져 물으면 "그래? 친구야? 난 정종갑이라고 떠서..."라고 설명하셨는데, 친구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했다고 한다.
서둘러 연락처 목록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정종갑'을 검색하자 아래로 끝도 없이 스크롤이 내려갔다. 한 사람의 이름 아래 무려 78개의 전화번호가 들어가 있었다. 친구 난연 여사도, 옆집 할머니도, 동네 슈퍼도, 심지어 내 번호까지 모두 '정종갑'이라는 데이터베이스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있었다.
"어머니, 정종갑이라는 분 아세요?"
"응? 상인이여"
"바로 그 분에게 다른 연락처들이 다 들어가 있어요."
장모님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아마도 주소록 이동 과정에서 발생한 기묘한 버그였을 것이다. 이전 폴더폰에서 새 폴더폰으로 데이터를 옮기면서, 누군가의 이름 하나가 모든 전화번호의 '기본값'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정종갑이었을까? 혹시 통신사 직원의 이름? 아니면 테스트 계정?
나는 그 자리에서 78명의 정종갑 씨를 모두 삭제했다. 장모님의 단호한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종갑 씨, 안녕히 가세요."
"정종갑 씨도 안녕."
"아, 이분도 정종갑."
아내와 나는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그 광경에서 한참을 배를 잡고 웃었다.
"세상에, 정종갑 씨는 번호가 왜 이렇게 많아?"
"이분 전생에 스파이였나 봐!"
"아니면 엄청난 인맥왕?"
장모님도 우리와 함께 웃으셨다. 78명의 정종갑을 삭제한 후에야 장모님의 휴대폰은 평화를 되찾았다.
IT 비즈니스를 25년간 운영하고 앱을 기획하는 내 입장에서는 참으로 황당한 설계였다.
만약 내가 주소록 데이터베이스를 설계했다면, 한 이름에 연결되는 전화번호는 최대 3~4개로 제한했을 것이다. 집 전화, 사무실, 휴대폰 정도면 충분하니까. 무제한으로 번호가 입력되게 방치하는 건 메모리 낭비이자 데이터 무결성을 해치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데이터베이스 설계 101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제약조건(Constraint)' 설정을 누락한 것이다.
하지만 78명의 정종갑 씨를 모두 쫓아내고 장모님의 환한 웃음을 마주한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효율적이지 못한 설계가 삶의 여백을 만든다.'
만약 그 휴대폰 소프트웨어가 지독하게 완벽해서 번호를 딱 3개만 저장하게 막았다면, 어제 우리 가족이 거실에서 나눴던 그 유쾌한 폭소는 없었을 것이다. 장모님이 며칠간 겪으신 당혹감도, "정종갑 씨 안녕"을 외치며 웃었던 순간도,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도 모두 사라졌을 것이다.
요즘 나는 'JJ 명언'이라는 명언 앱을 운영하고 있다. 직장인들에게 매일 아침과 퇴근 길에 동기부여가 되는 명언을 전해주는 간단한 앱이다. 개발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얼마나 완벽하게 좋은 기능들을 만들어야 하는가'였다.
UI는 미니멀해야 할까, 아니면 조금 더 풍성해야 할까?
알림은 정확히 오전 7시에만 와야 할까, 아니면 사용자가 선택하게 할까?
명언은 카테고리별로 정리되어야 할까, 아니면 랜덤으로 섞여야 할까?
KoreaUX 방법론을 만들고 4,30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는 '사용자 중심의 경험'과 함께 '최적화'와 '효율'을 추구해왔다. 불필요한 클릭 한 번, 쓸데없는 페이지 하나까지 제거하는 게 좋은 UX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완벽함을 향해 달려왔다.
하지만 78명의 정종갑 씨는 나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완벽한 경험이 항상 좋은 경험일까?"
생각해보면 내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제품들은 완벽하지 않았다.
대학생때 쓰던 워크맨은 테이프가 가끔 늘어나서 연필로 돌려 감아야 했다. 하지만 그 번거로움이 음악을 더 소중하게 만들었다. 초창기 아이팟은 휠 버튼이 고장 나기 일쑤였지만, 그 원형 휠을 빙글빙글 돌리던 촉감은 지금도 손끝에 남아있다.
완벽하게 설계된 시스템은 때로 너무 매끄러워서 기억에 남지 않는다. 마찰이 없으니 추억도 없다. 반면 '정종갑 78명' 같은 황당한 버그는 10년이 지나도 가족 모임에서 회자될 이야기가 된다.
AI 시대가 되면서 모든 것이 최적화되고 있다.
내가 요즘 실험하고 있는 AI 콘텐츠 자동화 시스템도 그렇다. 유튜브 스크립트를 AI가 작성하고, 음악도 Suno AI가 만들고, 썸네일도 AI가 디자인한다. 클릭 한 번이면 완성도 높은 콘텐츠가 뚝딱 나온다. 효율적이다. 놀라울 정도로.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완벽하게 최적화된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AI가 만든 완벽한 콘텐츠들은 서로 너무 비슷해서 구별이 안 된다. 인간의 실수, 우연한 해프닝, 예상치 못한 버그가 주는 '날것의 재미'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물론, 프로의 세계에서 버그를 용납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JJ 명언' 앱을 개발하면서 의도적으로 몇 가지 '비효율'을 남겨두기로 했다.
명언이 가끔 중복되어 나올 수도 있다.(베스트 명언이라 명명했다.) ai 상담은 우선 미뤄두었다. 대신 사용자가 '다이어리'에 생각이나 감정을 기록할 수 있는 룸을 제공하였다. 물론 버그는 안 되지만, 어느 정도의 불완전함은 오히려 이 앱을 '사람이 만든 앱'처럼 느끼게 할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니,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더 인간적이다.
떠날 때, 장모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위, 고마워. 이제 전화가 아주 좋아졌어.
"근데 엄마, 정종갑이라는 사람이 정말 궁금한데. 그 사람 누구에요?"
아내는 웃으며 물었다.
어머니는 전라도에서 햅쌀을 파는 분인데, 그렇지 않아도 햅쌀을 가져가라면서 2리터 패트병에 담아놓은 것을 챙겨주셨다.
"그래도 그 사람 덕분에 우리 재미있었잖아. 나는 그 사람한테 고마워."
오늘 차 안에서 아내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한 가지 생각이 정리됨을 느꼈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고, 그 도구가 만들어내는 '경험'이 진짜 가치라는 것을.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경험은 완벽한 설계에서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KoreaUX.com에서는 '사용자의 자유로운 공간'이라고 부른다.)
요즘 세상에 웬 폴더폰인가 싶지만, 손가락 끝으로 꾹꾹 누르는 물리적인 자판이 장모님께는 여전히 세상과 연결되는 가장 확실한 인터페이스다. 그리고 그 폴더폰이 만들어낸 78명의 정종갑 씨는, 우리 가족에게 오래 기억될 이야기가 되었다.
앱을 기획하는 사람으로서, 이제 나는 묻는다.
"이 앱은 사용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남길 것인가?"
효율도 중요하고, 최적화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10년 후에도 "그때 그 앱 있잖아"라며 웃을 수 있는 무언가를 남기는 것이다.
정종갑 씨, 어디선가 잘 지내고 계시길. 당신 덕분에 우리는 오늘도 웃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