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읽는 데레사 Apr 11. 2019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작년 이맘때 강진에 있는 다산 초당을 둘러본 일이 있었다. 싱그럽고 아담한 산 중턱에 작은 연못을 품고  가옥이 몇 채 모여있었다. 산비탈을 좀 더 올라가면 강진만이 넉넉하게 드리워져 있고 주변 풍경도 아름다워서 지금도 그곳의 풍광이 눈에 선하다. 200여 년 전 바로 여기에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유명한 명저들이 탄생했다니. 그 18년 기간 동안 저술을 위해, 가족의 안부를 묻고 학문 독려를 위해 오갔던 서신을 또 얼마인가. 일견 단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공간이다. 하여 작년 강진 여행 후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었고 올해는 우연의 일치로 독서모임 언니의 추천으로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읽게 되었다. 작년의 독서 덕분에 이번 책은 너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눈알 굴려서 읽어버리는 속독과 배경지식으로 술술 넘기는 책장은 그 맛이 다르리라. 겨우 책 한 권으로, 부족하고 경박한 배경지식이지만 그것 만으로도 한층 가벼운 마음으로 다산선생의 저술 과정을 훑어볼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 희망적이다.


다산의 위대성은 그의 작업량이 아니라 작업의 성격에서 발견된다. 자칫 잡학적 호사 취미에 빠지기도 했던 다른 지식인들과는 달리 그는 한 가지 편집 원리로 경학과 경제의 핵심 주제들을 관통하는 작업을 해냈다. 그 저변에 깔린 정신은 위국 애민 네 글자뿐이었다. 그는 고리타분한 경학의 주제를 다루면서도 실제의 쓰임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작업했다.
나는 지난 10여 년간 연암 박지원에 몰두해왔다. 그 연장선상에서 18세기의 새로운 지식경영에 대해 공부하다가 다산과 새롭게 만났다. 그의 글을 거듭 읽는 동안 나는 또 다른 한 세상이 열리는 느낌을 받았다. 연암은 높고 크고 다산은 넓고 깊다. 연암을 읽고 나면 오리무중의 안개 속으로 숨는데, 다산은 읽고 나면 미운을 걷어내 푸른 하늘을 보여준다.


이 책을 엮은 저자의 말이다. 작업량으로도 압도적이지만 다산의 모든 저작물의 큰 그림을 그려본 후 본다면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저 베껴쓰기만 해도 수십 년이 걸릴 경집 232권과 문집 260여 권을 다산은 강진 유배 18년간 모두 정리해냈다. 참고할 서적도 넉넉지 않고, 여건도 여의치 않은 척박한 환경에서 이뤄낸, 경이롭다 못해 경악할 만한 성과였다. 굳건한 바탕 공부의 힘이 위기를 만나 오히려 위력적으로 발휘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바탕 공부는 효제, 즉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로움을 힘쓰는 것이다. 그 과정이 학문에 젖어들게 된다면 학문이 저절로 일어서고 그 정신이 위국 애민으로 퍼져가는 건 차라리 당연한 결과가 될 것이다. 천자문도 사실은 양나라 무제가 죄인에게 '하룻밤 안에 천자문을 지어 바치면 사면해주겠다'고 하여 급하게 만든 글자의 나열이었다고 한다. 그 순서에는 사실 맥락도 철학도 없어 외우기도 어려운 것이어서 아동의 발달과정과 인지과정을 고려하여 새롭게 펴낸 (예컨대 대립되는 개념어를 짝짓거나 글자의 품사가 같은 것들로 묶어 글자의 성질에 따라 계통적으로 배우게 함) '아학편'을 보더라도 다산선생은 당시 중국의 학문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던 사대주의와는 거리가 먼 학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공부하는 환경과 200년 전 학문을 하는 것을 일대일 병행 비교 하기란 가능하지도 이치에 맞지도 않다. 다만 과거에 비해 지식의 접근성을 뚝 떼어 놓고 보자면 지금 세대는 공부하기 편한 환경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건 마치 올림픽 초기 마라톤 선수들의 기록과 (남자의 경우 2시간 55분_1908년) 보다 유리한 신체조건과 전문적인 훈련으로 중무장한 현대 마라톤 선수들의 기록의 (남자 2시간 1분_2018년) 차이가 당연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이 책을 통해 얻어야 할 통찰이 있다면 도처에 넘치도록 쏟아지는 지식정보를 통합하고 추슬러서 쓸모 있게 추출하는 과정과 저술의 기본 방향을 절대 잃지 않고 신념처럼 붙들 견고한 목적성일 것이다. 저자는 다산의 저술 과정을 탐구하여 10강 50목 200결로 분류하였다.


AI가 부상하고 호모 사피엔스의 단순한 지식노동이 설 자리는 갈수록 없어지고 있다.

참을성 없고 전문화가 일상인 이 사회에서 정보를 알맞게 가공하고 효과적으로 제공할 줄 아는 능력이 큰 무기가 될 것이다. 흩어져있는 정보를 꿰어서 쓸모 있게 만드는 다산 선생의 편집 과정과 함께 당시의 사회상을 엿 보고 내 현실도 반추할 수 있어서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책이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2299492


작가의 이전글 공부 공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