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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데레사 Apr 29. 2019

걷는 사람 하정우

걷기 플러스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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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다” 는 말에는 호기심이 인다. 1km남짓 하는 거리도 나는 시간(적인 기회비용)을 생각하면서 차를 몰고 이동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물론 걸으면서 얻는 신체적, 정신적 편익을 시간의 가치와 비교해 내린 결정은 아니다. 걷기로 얻는 편익이 차를 타고 다니면서 동네 마트에서 조금은 더 싸고 싱싱한 부추를 사는것 보다 더 나을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냥 “못하는”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라고 해두자. 어떤 사람이 걸음으로서 얻는 밀도 있는 인생의 언어를 훔쳐보고 싶은 욕망이라 표현함이 맞겠다

“사람”도 또한 가치 중립적이다. 요즘 유행하는 남자 사람, 여자 사람 같은 속뜻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이란 단어에는 호오나 맥락의 어감이 거의 없다. 이 제목에서는 배우, 감독, 연예인의 의미를 걷는 장치로 쓰였겠지만 그래서 “걷다”와”사람”의 조합이 한층 새롭고 보고싶은 무언가를 만들어 준다.

이런 맥락에서 “하정우”는 역설적이다. 우리는 하정우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동시에 (모르는 부분까지) 안다고 생각하고 또 (그래서 모르는 부분을) 알고 싶어한다. 하여 이 세 단어가 조화하는 모양새가 매력적이다.

그래서 “걷는” “사람” “하정우”는 어떤 책일까?


2018년 11월23일 1판 1쇄

2019년 3월 29일 1판 12쇄

4개월동안 12쇄를 찍어 팔린 책이다. 나 같이 얻어 걸린 사람이 많이 사 보았다는 뜻이다.

그럴 가치가 있었을까? 나는 있다고 본다. 어차피 도서관에서 빌리려고 보면 항상 대출중이나 예약중이 뜰테니까.


 전반부는 제목에 충실하다. 작가가 걷기를 얼마만큼 생활하고 있는지 어디를 누구와 걸으며 우리가 궁금해 하는 “연예인”생활을 영위하고 있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특히 하와이에서 걸으면서 얼마나 자연에게서 위로를 받고 에너지를 얻는지에 대한 글을 읽을 때 나도 당장 하와이행 티켓을 끊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 정도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감사함을 잊지 않고 그 음식을 집에 가서 다시 만들어 보는 실행력과 학습력, 식재료와 일상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관리하는 부지런함과 정갈함에 얼마나 부끄럽고 또 부러웠는지 모른다. 이렇게 전반부는 어렵지 않게 작가의 일상을 글로 공유하며 즐겁고 빠르게 읽을 수 있다. 후반부가 어렵다거나 무겁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따뜻한 아침 햇살 받으며 상쾌한 걸음으로 맞는 기쁜 아침 같다.


후반부에서는 하정우”사람”의 관념을 약간은 더 깊게 살피면서 내 인생의 통찰을 더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나는 일반적으로 연예인이라고 하면 깊은 사고를 하는 환경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매일같이 연예인 뉴스에 올라오는 제목을 봐도 그러하고 연예인들이 하는 말을 들어봐도 인간적인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이는 내 편향일 뿐,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독서가도 있고 자기개발과 담 쌓은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그 분야라서 어떤 사람이라는 공식은 위험하다. 그 사람이 어떤 분야에 있다 정도로 보면 되겠다.

이 책의 중간 정도에 다다르면 작가가 걷기를 지속적으로 하면서 꾸준히 병행했던 독서모임을 소개한 부부이 나온다. 내가 전반부를 매끄럽게 잘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이 이 때문이다. 작가의 문장력, 일상과 관념의 연결 능력, 생각의 깊이는 부지런히 단련한 체력도 큰 몫을 하겠지만 꾸준한 독서가 없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매주 수요일 지인들과 식사를 겸한 독서모임이다. 매주 한 권을 독파 후 맛난 식사와 생보(후에 설명하겠다)로 인한 12시 전 귀가 후 꿀잠이 담보된 한잔을 겸한 모임! 매력적이다. 그때 그때 많은 신념을 세우고 무너뜨리고를 반복하는 나의 40년 인생이지만, 도저히 깨지지 않는 신념이 있다면 “역시 책!!”이다. 작게는 안정적인 직장인, 크게는 번듯한 영재를 키운 부모의 비결, 오마하의 현인이 된 비결, 위대한 기업가가 된 비결에는 “책”이 있었다. 역시 책은 가장 가성비 높고 기회비용이 낮고도 어떨땐 한 없이 높은 삶의 수단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눈여겨 본 부분은 작가가 은어를 많이 쓴다는 것이다 그 예는 아래와 같다.

돌려깎기(구릉지대 같은 원뿔형 코스를 원을 그리며 올라가는 걷기)

생보(생활 걷기)/제뛰 (제자리 뛰기)/눈물고개(고덕산을 낀 가파른 길)/체소심(체력소모가 심한 구간)

매직아워 (한 겨울 오후 5시에 걷기, 원래 여명기나 황혼기 부드러운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영화 용어임)

맵핵 (새로운 여행지에 갔을 때 맨 처음 두 다리로 걸으며 직접 여행지를 체화 하는것)

재판(아침 걷기 전 용변이 용이했는가를 묻는 안부인사)

밍태, 좐큐, 찰리, 코비 상원이, 랭보 황보라등 지인을 부르는 별명


은어란 보통 십대들이 반항심을 표출하기 위해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를 서로 교환하며 내부결속력을 다지는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라 어감이 좋지는 않다. 그러나 작가의 은어는 자신의 행위에 전문성과 재미를 높이고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긍정적인 언어다. 은어를 이렇게 유쾌하게 볼 수 있다는 신선함과 동시에 이만큼 남김없이 인생을 뜯고 맛보는 작가의 태도가 부럽고 나에게 귀감이 되었다. 나도 아이들과 좋은 의미의 은어로 소통하며 삶의 밀도를 높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반부엔 하와이 걷기 여행이 나를 흔들어 놓았다면 후반부엔 유학 같은 한 달 이탈리아 여행이 나를 다시 동하게 했다. 영화제 초정을 기회 삼아 작정을 하고 떠난 작가의 여행 후기에 나도 언젠가 아이들과 유학 같은 여행을 꿈꾸게 되었다. 사람 북적대는 트레비 분수에 30분 남짓 있으며 젤라또 하나 달랑 사먹고 다음 스폿으로 떠밀리듯 가는 여행이 아니라 새벽 5시에 일어나 여행지를 오감으로 꼭꼭 씹어 먹으며 필요하면 현지에서 역사공부나 다큐멘터리 시청으로 보완을 하는 여행. 너무 하고 싶지 않은가! 이 책을 덮으며 이렇듯 희망을 품게 되었으니 읽을만 하고 추천할만 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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