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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데레사 Mar 21. 2019

육아 단상

하기 싫구나_무용한 독서

아이들을 낳고 얼마 되지 않았던 육아 용자 시절, 바이블처럼 회자되던 책이 있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4589760

'그렇구나, 그렇구나' 공감해주고 배려해주기. 응~ 잘 알지. 알아 알아.....

아이들이 옹알이도 겨우 할 적에 이 책을 읽었으니 당시 나에게도 공감 유전자가 디폴트로 저장되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책한 번 읽고 변했을 리 만무함을 왜 모르는 척 했었는지 처절하게 깨달았던 사건이 있었다.


그제 초등 2학년이 된 아들이 저녁을 먹고 이를 안 닦길래 닦으라고 몇 번 채근을 하는데 자꾸 '동생이 안 했으니' 본인도 양치질을 안 한다고 했다.

아니, 동생은 밥을 빨리 먹고 혼자 양치 다했어. 네가 못 봐서 그렇지 했어. 그러니 하자
아니, 내가 못 보면 안 한 거다.안 한다.
그런 게 어딨나. 엄마가 분명히 봤다. 해라
안 한다

계속 도돌이표 돌리다가 벌건 얼굴, 등짝 스매싱으로 사건은 일단락되고 그날 밤 아마 나의 장남은 이가 약간 상하고 마음은 몇 십배 상한 채로 잠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제. 받아쓰기 숙제를 사이에 놓고 또 동생은 안 했으니 나도 안 하네 설전을 벌이는데 전날의 허무함을 모르지 않기에 뜸을 좀 들이고는 내가 말했다.

너는 숙제가 하기 싫은 거지 동생과 네 숙제는 상관이 없어. 그건 핑계야. 넌 그냥 하기 싫다고 말하면 돼.
.......................

으잉?

으잉?

이렇게 쉬운 거였어?

내가 이걸 모르고 몇 년을 애들 수준으로 투닥거렸나?

아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정리해서 이름표만 붙여주면 더 이상 서로 감정 상할 일이 없었을 일이다. 책에서는 이를 '감정에 이름표 붙이기'라고 한다. (참고로 '감정에 이름표 붙이기'는 본문에 9번이나 나온다.) 나는 당연히 아들이 하기 싫어서 동생 핑계를 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게 괘씸한 내 감정에만 충실했지 아이의 감정엔 찰나도 머물러 보지 않았던 것이다.


책 한 번 읽고 그 지혜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는 건 모두들 알지만 이를 체득하는 건 또 다른 층위의 앎이다.

작년 엄기호 작가가 강연 중에 우치다 타츠루의 말을 인용한 적이 있다.

분별력이 있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해상도가 높아지는 것


메타인지를 높여 모르는 건 깎아내고 아는 건 돋을 새겨서 UHD급으로 세상을 분별하는 과정이 독서이고 공부고 인생이다. 7년 전 무용한 독서를 했지만 그래서 허송세월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읽어 내려간 밑거름들이 있었기에 내 가슴속 씨앗 하나가 지금에 와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고 떡잎을 올려 보낸다.

그래서 독서는 확실히 남는 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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