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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푸근 Dec 22. 2016

기억의 파편들

비가 오는 날, 듣지 말았어야 할 윤상의 노래를 들으며 쓴 에세이   





기억의 파편들이 머릿속을 돌아다닌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쉽사리 잊히지 않는 것들이다. 평소에는 잊었다고 생각했다. 너의 그림자와 삶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파편들을 상기시키는 것들이 있다. 혼자 있던 카페의 의자와 너의 그것과 닮았고, 비가 와서 썼던 우산도 언젠가 같이 쓴 우산이다. 혼자 영화를 보면 무의식적으로 왼쪽 자리가 신경 쓰인다. 넌 항상 왼쪽에 앉았다. 쓰던 로션이 다 떨어져서 새로 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이 로션은 항상 네가 선물해주곤 했다. 그렇게 로션을 손에 쥐고 든 생각이 있다. 기억의 파편들은 모두 내 삶과 연관되어있다. 내가 억지로 잊으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방법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훌쩍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면 될 줄 알았다. 2주 가까이 북해도의 이름 모를 곳들을 서성였다. 남들이 장관이라는 풍경을 바라봐도 개운치 않은 느낌이 있었다. 무시하려 했다. 그리고 평소 좋아하던 케이크를 먹으려 들어갔다. 네가 좋아할 것 같은 케이크들이 많다. 혼자서 쓴웃음을 짓는다. 여행을 와도 소용이 없다. 생각해보면 너와 만난 그 시절에도 장소적 거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어떻게든 발버둥 치려는 나 자신이 우스웠다. 안된다. 인마. 그냥 버텨야 하는 거야.


한 번은 공항을 갔다. 왜 갔는지는 모르겠다. 바람을 쐬고 싶었다. 그렇게 차를 몰고 공항에 갔다. 공항 가는 길은 참으로 좋다. 그저 자연과 알 수 없는 몇몇 건물들만 존재한다.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나 따위쯤 지나간다고 뭐라 할 것 같지 않은 기분으로 길을 달려간다. 그렇게 공항에 도착했다. 출국을 앞두고 신이 난 사람들, 지친 표정으로 빨리 집으로 가고 싶은 사람들, 그 속에 무심코 앉아서 커피 한잔을 했다. 입국장보다는 출국장이 좋다. 넓디넓은 자리와 한가로움이 좋다. 그러다 또 나는 다른 파편들을 밟아간다.


그날은 너와 출국을 하기 직전이었다. 사소한 것으로 다툼을 시작했다. 너는 토라져 먼저 출국심사장으로 들어갔고, 나는 심사장 밖 의자에 앉아서 생각을 했다. 누가 이렇게 여행을 떠나며, 나는 왜 그렇게 속좁게 굴었는지. 그리고는 너를 뒤따라 달려갔던 출국심사장이 보인다. 잠시나마 머릿속 상념들을 정리하려 했지만 여전히 너의 파편들 때문에 난 머리가 지끈거린다. 과거의 연애는 내게 말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 말이야, 좋은 사람이 좀 생기면 말이야 나아질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당장은 내게 그 시간이나 그 사람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다. 미래를 비관하게 된다. 어차피 너는 없는 미래니까, 어차피 너와는 별개인 미래니까.


그렇게 남겨진 파편들만 다시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또다시 쓴웃음을 짓는다. 더 이상 나아지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파편들은 안고 살아가겠다 다짐했다. 대신 그저 이 파편들로 인한 아련함이, 마음속 허전함이 조금씩 덜 해가기를 기원한다. 정말 이제는 그러면 좋겠다.




https://youtu.be/XIr2y-888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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