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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푸근 Dec 24. 2016

젊고, 보잘것없는 사람

영어의 스펠링이 가져온 참사

영어. 그것은 우리가 가진 평생의 숙제이다. 누구나 피나는 노력을 하며 자신의 영어실력을 쌓아간다. 그리고 가끔은 Native Speaker가 되고 싶다는 환상을 갖기도 한다. 여기 내 친구 영석이가 있다. 그는 중고등학교 때 공부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책을 보는 것이 좋았고 소소한 취미생활을 했지만, 이상하게 공부만은 그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어느 날, 영석이는 난생처음 미국 여행을 위해 여권을 만들게 된다. 그는 호기롭게 동생과 여권을 신청하려 구청에 갔고, 그곳에서 요구한 영문성명을 가지고 잠깐의 고민을 한다. 평소 확실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그는 발음 또한 그래야 한다는 소신으로 다음과 같이 칸을 채웠다.


Kim Young Suck


마침 담당공무원은 민초들의 삶은 관심이 없다는 듯 요청대로 여권을 만들어주었다. 그는 모든 여행 준비를 마치고 그렇게 라스베이거스 공항에 도착했다. 이태원에서 간간히 보던 수많은 외국인들에 영석이는 당황했다. 그리고 입국심사대에서 줄을 서며 기다렸다. 그는 비행기에서 이번 여행의 목적에 대한 간단한 문장을 외우고 있었지만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영석이의 차례가 되고 가족 중 제일 먼저 그는 심사요원 앞에 섰다. 코스비를 닮은 흑인 심사요원은 늘 그렇듯 여권을 받아서 업무를 시작했다. 그는 일상이 무료한 듯 힘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영석이는 당황했다. 그래서 준비한 멘트를 써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Traveling for 4 days"


심사요원은 뭐라고 계속 혼자 중얼거리며 킥킥대기 시작했다. 영석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에 당황했지만 어떠한 리액션이라도 취해야 한다는 생각에 같이 웃으며 공감을 이루는 척했다. 옆라인의 아버지는 그런 영석이를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뼈 빠지게 공부시킨 보람이 있구나 라는 흐뭇한 미소를 영석이에게 보낸다. 그러나 영석이에게는 이 상황은 알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코스비를 닮은 심사 직원은 더욱더 크게 웃기 시작했다. 결국 주변 사람들까지 영석이의 위트에 부러운 듯 쳐다보기 시작했다. 심사 직원은 마지막에 뭐라고 말을 하며 여권을 건네주었다. 하지만 역시 알 수 없는 말에 영석이는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에 도착한 영석이 가족은 꿈에 그리던 겜블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영석에게 도박은 관심 없는 분야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는 쇼핑을 위해 자리를 떠났고, 그것을 알지 못했던 영석이의 어머니는 그의 행방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외지에서 아들을 잃어버린 듯한 공포에 휩싸인 어머니는 호텔에 방송을 요청했다. 그래서 호텔 관계자는 여권의 이름 그대로 그를 찾기 시작했다.


"May I have your attention please. We are looking for one of our guests. Mr. Young Suck Kim. 으흐흐흐흐. Is this right? Young Suck? 으흐흐흐흐"


순식간에 카지노와 호텔 로비는 웃음에 감염되었다. 아이쇼핑 후 호텔로 들어온 영석이는 모두가 즐거운 상황을 보며 이 나라의 유쾌한 습성에 감탄했다. 라스베이거스는 모두가 행복한 도시구나 라는 깨달음으로 그렇게 다시 카지노로 돌아갔다. 그리고 가족과 합류한 후 주변에 있던 한국인 가이드를 통해 그는 자신의 영어 이름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Kim Young Suk


그렇게 그는 C를 빼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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