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푸근 Jan 06. 2017

잭 스페로우의 결혼

우리가 꿈꾸는 결혼식이란




어릴 적 나는 '동물농장'이라는 그룹의 친구들이 있었다. 이름에 '용'이 들어가는 나는 당연히 용이었고 그 밖에 곰과 개구리가 있었다. 곰과 개구리는 생긴 것을 바탕으로 지어졌는데 그 싱크로율은 지금 봐도 놀라울 정도이다. 중학교 시절, 철없던 우리는 일주일에 5일은 만나며 온갖 해괴한 짓을 하고 다녔다. 그러나 동물농장은 고등학교를 홀로 외진 곳으로 간 나로 인해 다소 와해되었다. 하지만 곰과 개구리는 고등학교도 같았고 한 동네에서 오래 같이 살았기 때문에 그 우정은 꽤나 변함없이 이어져갔다. 우리는 대학을 가서도 함께 미팅을 하는 등 나름의 많은 추억을 쌓았고 여전히 친한 친구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던 작년 어느 날 개구리가 나와 곰을 갑자기 소집했다. 개구리는 탁구공 같은 두 눈알을 연신 껌벅이며 말을 시작했다.

"나, 결혼하려 한다. 니들이 도와줬으면 해."

그것은 동물농장의 첫 결혼이 발표된 그 순간이었고 개구리는 곰에게는 사회를, 나에게는 축의금을 받으라는 부탁을 했다. 그러나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은 곰의 발언을 듣고 난 후부터였다.

"걱정하지 마. 내가 음악부터 진행까지 잘 짜 볼게."

학창 시절 곰은 정말 본인만 재밌는 개그를 하는 학생이었다. 열심히 부린 곰의 재주에도 친구들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한 번은 대학교 때 미팅을 함께 나간 적이 있었다. 곰은 당시에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던 '아재 개그'를 다양하게 선보였는데, 그 자리에 있던 여성에게 핵 폐기물급 개그라는 혹평과 함께 '체르노빌'이라는 별명도 수여받았던 기억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 체르노빌이 지금 진행을 기획하려 한다. 나는 다소 걱정이 되었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내 친구를 믿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 결혼식 당일이 되었고, 나는 일찍 결혼식장에 도착하여 곰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리서 뒤뚱거리며 걸어오는 곰이 보였다.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평소 슈트는 남자를 어떻게든 업그레이드시킨다는 수트 만능주의를 주창한 나는 그날 역시 정장을 입는데 꽤나 많은 신경을 썼다. 불변의 진리라는 네이비 수트와 평소 좋아하던 진청색 넥타이를 하고 간 나였지만 곰은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넥타이 없이 바바리코트를 입고 있었다. 혹시나 결혼식 내에 벌어진 살인사건을 조사하러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하객이었다면 상관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결혼식 사회를 본다는 녀석이 바바리코트에 진청바지를 입고 왔던 것이다. 나는 애써 좋게 생각하려 했다. 현대사회의 격식을 파괴하는 신지식인이라 곰을 평가하며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신랑 입장이 시작되고 다시 발생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가끔 신랑이나 신부가 등장할 때 이런 음악을 틀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후보군들이 있었다. 하지만 다소 완고한 성격의 곰이 진행을 맡았기 때문에 따로 요청하시도 않은 조언을 그에게 하지는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곰의 애창곡은 자자의 <버스 안에서> 였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의 음악영역도 확장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신랑 입장!'이라는 호쾌한 곰의 포효 뒤로 이어지는 음악은 나를 절망으로 빠져들게 했다. 바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OST 중 메인타이틀로 유명한 BGM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해적들이 하늘을 끼르는 기상으로 칼을 뽑아 들고, 파도를 해치며 나아가는 해적선이 그려지는 웅장한 음악이었다. 그 순간 개구리는 잭 스페로우가 되었고, 나는 애꾸눈을 가리는 안대라도 찾아서 써야 할 느낌이었다. 식장 안에는 원숭이가 뛰어 나니는 환상이 보이고 바다 냄새가 나는 듯했다. 다소의 술렁거림이 들렸지만 워낙 음악이 크게 재생되었던 관계로 우리들의 우려는 곰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그렇게 잭 스페로우가 자리를 잡았고, 드디어 신부가 등장을 위해 준비를 마쳤다. 나는 순간적으로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설마 아닐 거야.. 비슷한 노래는 아니겠지.. 그리고 드디어 음악이 시작되었다.


음악이 시작되었고 나는 한숨을 돌렸다. 곰은 마늘을 한 포대 먹은 듯 센스를 발휘했던 것이다. 그 노래는 바로 어바웃 타임에서 나왔던 <Il Mondo>였다. 두 주인공의 결혼식 때 BGM으로 나왔던 이 곡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정도 유명해졌다. 날씨가 정말 개판이라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엉망인 상황에서도, 두 사람의 결혼이 행복으로 가득한 것을 그 어느 것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 장면처럼 개구리의 부인, 나의 재수 씨는 행복하고 아름답게 입장을 했다. 나는 곰을 칭찬하고 싶었다. 이번 선곡은 좋았어. 나는 곰을 향해 엄지를 세워 올렸고, 바바리를 입은 곰은 두 번 다시는 보기 싫은 수줍은 웃음을 보였다.


누구나 본인 스스로 꿈꾸는 결혼이 있다. 어떤 이는 무조건 호텔에서 결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또 혹자는 작은 결혼식에서 정말 친한 사람만 부르고 싶다고 하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후자에 가깝다. 결혼한 내 친구들을 보면 대략 둘 중에 하나였다. 너무 긴장을 하였거나, 너무 정신 업거나. 일생의 큰 시작인 그 상황을 충분히 즐기며 행복했던 친구는 드물었다. 하객을 챙기기 바쁘거나, 때로는 곧 시작될 본인의 축가를 신경 쓰느라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는 녀석도 있었다. 그냥 영화처럼 마냥 행복하고 신부만을 바라보는 그러한 분위기는 사실 우리나라 문화에선 다소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남주인데 여주만을 바라보며 마냥 행복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나만의 바람이 가끔 생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가 봤던 가장 기억에 남는 결혼식은 무엇일까? 나는 이 결혼식이 떠오른다. 내 회사 동기의 결혼식이었다. 당일은 주례 없는 결혼식으로 양가의 아버님들께서 한 마디씩 하는 진행이 이어졌다. 나의 동기인 신부의 아버님 차례가 되자 아버님은 Speech를 시작하셨다. 나는 남자의 진정한 센스는 이러한 Speech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아버님은 유머와 결혼생활에 대한 조언을 적절히 섞으며 말씀을 하셨다. 워낙 말씀을 잘 하셔서 나와 내 동기들은 '허참 같다'는 찬사를 속삭였다. 아버님은 사돈어른들에게 진지하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 후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나이가 들어가니 말이 많아집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평생 못난 사람을 만나서 이렇게 이쁜 딸을 키워준 제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숙아 사랑한다. 감사합니다."


와.. 나는 자리로 돌아가는 아버님을 바라보며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아버님이 숀 코네리처럼 생기신 것도 아니었고, 엄청 부유해 보이는 이태리 수트를 입으신 것도 아니었다. 그는 남자로서 예의를 다해 주변인들에게 감사를 표했고, 딸과 사위에게 아낌없는 조언도 해주었다. 그리고 중요한 순간에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인생의 결정적 순간에서 진정 챙겨야 할 사람을 알고 있는 남자. 나는 그 순간 나도 나이가 들면 저것을 각색하여 써먹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불현듯 다가오는 인생의 멘토들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진정한 요소가 아닐까?


정답인 결혼식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인 두 사람은 반드시 행복하고 행복한 결혼식이었으면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결혼이다. 결코 실행되지 않는 이러한 계획과 꿈들은 오늘도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https://youtu.be/b06_ffOYE4U

Il Mondo




매거진의 이전글 예전의 나를 되돌아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