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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Jul 02. 2021

방학을 기다리는 엄마

오늘은 아이가 방학하는 날이다. 한국 학교보다 조금 빨리 시작하는 방학이기도 하고 조금 많이 긴 방학이기도 하다. 꼬박 8주. 보통 7주 정도인데 이번 학기는 학교 사정이 겹치면서 일주일이 더 늘었다. 


아침에 아이를 깨우면서 예의 그렇듯 볼을 비비며 나는 말했다. 

"와 오늘 방학이야! 너무 좋다. 이제 우리 두 달 동안 내내 같이 놀 수 있어!"

오롯이 진심이다. 말투와 표정을 조금 더 행복하게 포장하긴 했지만. 


나는 아이의 방학을 기다리는 엄마다. 아이가 학교에 가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물론 좋다.

언제부턴가 함께 있어도 따로 또 같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법을 터득한 우리는 종일 함께 있어도 힘들거나 지치지 않는다.  먹을 것을 챙기고 빨리 지저분해지는 집을 치우는 횟수가 늘어나는 건 분명 사실인데 크게 스트레스랄 것도 없다. 집이야 평소보다 덜 신경 쓰면 되는 일이고 먹는 일 역시 상황에 따라 편리한 방법을 택하면 그만이다. 


아이가 부쩍 빨리 크는 모습을 바라보며 방학을 기다리는 마음은 예전보다 더 기대로 가득하다. 우리에게 이렇게 온전히 함께 하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 것임을 너무나 잘 아는 까닭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두 달 동안 무엇을 할까, 어디를 갈까, 이런 계획은 사실 크게 세우지 않는다. 시간에 쫓겨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는 대신 여유롭게 뒹굴거리기도 하고 느긋하게 아침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오늘은 뭐하지'라며 느슨하게 그날 일정을 짜고 별 계획 없이 책을 읽거나 함께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기도 하고 그도 아니면 한 공간에서 각자 할 일을 하며 지낸다. 

이번 방학 개인적인 일정으로 바쁘게 보내야 하는 상황이라 예전만큼 여유롭지는 않을 듯하지만 나는 그저 종일 수시로 눈을 맞추고 오다가다 안아주고 그저 아이의 등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언젠가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은 육아를 참 즐기는 편이야."

특별히 내가 그런 스타일인가,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 정재찬 교수님이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이라는 책에서 "자녀를 위해 부모가 존재하는 것 같지만, 어쩌면 부모를 위해 자녀가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나는 아이를 통해 인생의 행복을 알고 세상을 바라보는 넓은 시각도 생기고 엄마로서 한 개인으로서 더 성장하는 기회를 얻었으니까. 

꼭 성장의 의미가 아니라도 아이라는 우주가 나에게 와준 것만으로, 그 아이가 아니었으면 느껴보지 못했을 온갖 경험과 감정들을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일 아닐까. 정채찬 교수님의 글을 조금 더 보자. 


자녀를 위해 부모가 존재하는 것 같지만 어쩌면 부모를 위해 자녀가 존재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평생 부모에게 줄 행복을 자녀는 어린 시절에 이미 다 준 셈이고, 부모가 남은 생애 그 빚을 갚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이렇게만 말하면 부모들은 억울할 겁니다. 어마어마한 희생을 치렀으니까요. 엄청난 시간과 노고와 근심과 걱정, 그리고 자본을 들이지 않았습니까. 대부분은 아마도 과잉투자라 여길 지도 모릅니다. 적정한 시점에서, 가령 사춘기쯤 해서, 손절매를 했어야 옳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자녀가 태어났을 때, 아니 뱃속에 들어왔을 때로 돌아가 봐야 합니다. 우리가 그 아이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기다렸는지 말입니다.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2장 돌봄 '아이' 편의 '잉태의 축복, 육아의 고통' 중


얼마 전, 몇 분을 모시고 온라인으로 인터넷 강좌를 열었을 때 나는 이렇게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신이 내린 직장, 엄마라는 직장에 다닙니다"라고. 육아만을 전적으로 하고 있단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든 엄마라는 자리는 변함이 없고 그 자리는 직장에 다니는 것만큼이나 많은 에너지와 열정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다행히도 나는 아이를 키우며 겪는 모든 것들이 즐겁고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동시에 그 안에서 나도 성장하는 성취감마저 누리고 있으니 이 정도면 신이 내린 직장이 비유할 만하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엄마라는 자리는 신만이 내릴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방학을 기다리는 마음을 적는다는 게 또 길어졌다. 성적표를 받아 들고 올 아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생각하다 '오늘 점심으로는 짜장면을 먹어야지'라고 생각한다. 한국 학교로 치면 아이는 오늘 초등학교를 졸업하니까 이런 날엔 짜장면이 딱이다. 


오늘도 굿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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