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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Jul 28. 2021

내가 시원하게 해 줄까?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기후 위기 상황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맘으로 가능하면  에어컨 켜지 않고 버텨보리라, 했던 마음은 벌써 무너졌다. 에어컨 온도를 27도(최대로 낮춰도 26도)로 맞추고 전력 소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2018년 여름, 베를린에서도 엄청난 폭염으로 고생을 했었다. 여름 평균 25도 선인 나라에서 그해는 37도까지 치솟았으니 진짜 재난 수준이었다. 그 이전 해 그러니까 2017년 여름, 너무 서늘해서 반팔 옷 입을 기회가 거의 없었던 걸 생각하면 일 년 만에 그런 대 반전도 없었다. 집집마다 선풍기 한 대조차 없는 집들이 많았으니 서울에서 가져간 두 대의 선풍기가 돌아가던 우리 집은 그나마 천국이었다. 

그해 독일 전역에서는 맥주도 품귀, 선풍기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당시 직업정신이 발동했던 나는 선풍기 구하려는 고객인 척하며 백화점 가전매장 몇 군데를 돌며 직원들을 만나 '이 사태'에 대해 물어보곤 했는데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어떤 직원의 멘트가 "올해 안으로 구하긴 힘들 거예요. 행운을 빌어요!"였다. 그랬다. 그해 독일에서는 선풍기 한 대 사려면 행운이 따라야 했다. 


그때 선풍기 두 대로 어떻게 37도를 버티며 살았는지 모르겠다. 물론 한국의 37도와 독일의 37도는 습도 등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비교 불가 수준으로 더 덥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방학이 시작됐고 코로나 시국으로 남편은 매일 재택근무를 하는 상황에서 세 식구가 종일 집 안에서 '격리하듯' 지내고 있으니 집 안 온도는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어느 날 '덥다, 덥다'를 연발하는 아이를 보다가 탈무드 동화 <우리 집은 너무 좁아>가 생각나 이야기해주었다. 

"너 그 동화 기억나지? 어떤 사람이 너무 작은 집에 살아서 좁고 가족들하고 싸워서 못 살겠다며 현명한 랍비를 찾아가잖아."

아이 눈이 반짝! 

"아, 그 동화 말이야? 그래서 랍비가 닭이랑 오리랑 소를 집안에 들이라고 했었던 거? 아, 맞다, 기억나, 하하하"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내용은 그렇다. 좁은 집 때문에 못 살겠다며 랍비에게 현답을 구하러 간 남자에게 랍비는 말한다. "닭을 집 안으로 들이세요." 

이해 불가지만 일단 랍비의 말이니 실천하기로 했지만 며칠 뒤 다시 찾아와 더 좁고 답답해졌다며 남자가 하소연하는데, 랍비는 또 말한다. "이번엔 그러면 오리를 집 안으로 들이세요."

상황은 마찬가지. 화가 나 다시 랍비를 찾아온 이에게 결정타를 날린다. "소를 집 안으로 들이세요."


집 안에서 닭과 오리와 소들까지 함께 생활하다 보니 폭발할 지경이 된 남자가 다시 랍비를 찾아가고 랍비는 이렇게 말한다. "이젠 다 집 안에서 내쫓으세요."

(동물 순서가 맞는지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결론은 동물들을 다 내쫓고 넓~어진 집안에서 모두가 평화와 행복을 되찾았다는 이야기. 

원래 갖고 있던 행복을 깨닫지 못하고 잃고 난 뒤에야 알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이 동화를 소환한 까닭은 선풍기도 돌아가고 있고 에어컨도 켤 수 있는 지금 우리의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서였다. 


결과적으로는 아이의 장난기를 발동시키는 원인 제공을 한 셈이 되었다. 

내 말이 끝나고 뭔가 생각났다는 듯 아이가 미소를 띠고 말했다. 

"엄마, 내가 시원하게 해 줄까?"

우리 집에 닭, 오리 등을 들일 일은 없고 뭘까, 했더니 아이가 다가와 숨도 못 쉬게 나를 꼭 안았다.

"아~ 왜 그래. 더워, 숨 막혀. 뭐 하는 거야?"

잠시 그렇게 있더니 아이는 팔을 풀면서 말했다. 

"어때? 이제 시원하지?"


나는 탈무드 동화 속 남자가 되었고 아이는 랍비가 되었다. 

이런 깨달음의 응용 훌륭하긴 한데, 그 후론 틈만 나면 "엄마, 내가 시원하게 해 줄까?"를 말하는 아이. 

집안에서는 그렇다 쳐도 밖에서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든데 '시원하게 해준다'며 와서 찰싹 달라붙을 때면 '아 내가 괜한 이야기를 해가지고'라는 후회(?)가 밀려온다. 덥다는 말 자체를 못하게 하려는 원천봉쇄 전략이라면 완벽한 성공인 셈! 


아침부터 덥다. 오늘도 굿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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