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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Sep 16. 2021

부모란 그런 것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추석에 관련된 동영상을 제작한다며 협조를 요청해왔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한 집안 어르신 혹은 주위의 어르신들을 '추석'을 주제로 인터뷰를 해오는 것. 

요즘 동영상 편집하는 재미에 빠진 아이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며 번쩍 손을 들었고, 

지난 주말 할머니 할아버지와 화상으로 인터뷰가 진행됐다. 


인터뷰 질문은 간단했다.

추석에 얽힌 어린 날의 추억들 중 어떤 것들이 기억에 남는지와 차례상에 대한 의미 및 차례 음식에 관한 것. 

솔직히 모든 질문에 어떤 답이 나올지 어느 정도 예상은 가능했다. 

어린 시절, 명절이 되면 부모님이 새 옷과 새 신발을 사주시고 평소와 달리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어 명절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는 추억 이야기도, 농경시대 곡식을 추수한 후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며 자손들의 안녕과 내년의 풍년을 기원했다는 차례의 의미도 그랬다. 

차례상에 올라가는 음식들의 의미에 대해서도 몇 번 들은 적이 있기에 새삼 신기할 것은 없었다. 

붉은색이 왕의 옷을 상징하고 유난히 굵은 통 씨앗 때문에 그 자체로 '왕'을 뜻한다는 대추, 한 송이 안에 두 개 내지 세 개의 알이 들어 있는데 그것은 곧 3 정승을 의미하며 자손들이 그와 같이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는 밤, 8개의 씨가 8도 관찰하는 의미 하는데 역시 자손들의 번영을 의미한다는 감 등 차례상이나 제사상에 절대 빠지지 않는 음식들에 대한 의미 풀이도 어느 정도는 들어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그런데, 동영상을 편집 중인 아들 옆에서 시어머니의 답변을 듣다가 마음을 먹먹하게 하는 몇 문장이 있었다. 

"밤은 땅속에 있던 씨앗 밤이 그대로 밤 형태로 달려 있다가 나무에 열매가 열리고 나면 그제야 썩어 없어진단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부모들도 자식들이 잘 자라기를 바라며 그때까지 늘 지켜보고 있다가 자식이 다 크고 완전해지면 땅으로 돌아가 흙이 되니까. 

감나무도 마찬가지야. 감나무는 씨를 심는다고 바로 열매 맺지 않고 반드시 접붙이기를 해줘야만 열매가 열리는데, 열매를 맺어본 적 없는 감나무는 잘라보면 그 안에 검은색 진액이 없지만 열매를 맺은 감나무는 그 안에 검은 진액이 들어있어. 속이 검다는 건 고통이나 아픔 같은 것을 상징하지? 감나무는 바로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을 뜻하는 것이지."


거기까지는 몰랐다. 차례상의 의미는 그저 후손들의 번영,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나는 그런 이유로 차례상 또한 현세구복적인 의미라며 내심 못마땅한 마음도 갖고 있었다. 


어머니 말씀을 듣고 보니 새삼 어머니가 왜 그리 제사상 혹은 차례상에 공을 들이는 지도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친정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고 살았던 나는 결혼 후 제사 문화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는 내 속내를 어찌 읽으셨는지 "조상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힘들어도 기쁘게 하자"라고 말씀하시곤 했었다. 

부모 없는 자식이 어디 있으랴. 부모의 눈물로 자라지 않는 자식이 어디 있을까. 자식 키우는 데 일생을 바친 부모님들의 마음과 정성을 생각하니 어머니는 일 년에 몇 차례만이라도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정성을 쏟고 싶으셨을 테지. 

올 추석 차례상을 준비할 때는 한결 달라진 마음으로 하게 될 것만 같다. 


오늘도 굿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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