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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Oct 04. 2021

우리 허그할까요?

시댁에 허그 문화를 도입하다

한국 가면 선생님들하고 허그 못하잖아요.


베를린에 있을 때 먼저 한국으로 귀국하는 가정들을 꽤 많이 환송했다.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가장 아쉬운 게 무엇이냐'는 것인데 어떤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했던 저 대답이 나는 가장 인상적이었다.


대답을 듣고 '아, 그렇지. 한국에는 허그 문화가 없지.' 했던 깨달음은 이내 현실 자각으로 바뀌어 '허그는커녕 손만 닿아도 큰 일 나는 경우 많을 텐데...'로 바뀌었다.


독일살이를 시작한 후 나도 제법 시간이 흐른 후에야 허그 문화에 적응했다. 처음엔 몇 번 보고 친해진 학부모들이 허그를 시도해올 때마다 쭈뼛쭈뼛 어색한 몸짓으로 마지못해 응하고는 했다. 각자의 허그도 다양해서 누군가는 한번 가볍게 안는 것으로 끝나지만 또 누군가는 좌로 한 번 우로 한 번 하며 '쪽'하는 소리까지 입으로 내는데 그럴 때마다 똑같이 따라 하며 나 혼자만 민망함을 견뎌야 했다.


언제부턴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조금씩 허그 문화에 익숙해지면서 친한 이들을 보면 으레 허그 인사를 위해 팔부터 앞으로 뻗어나갔다. 상대가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여자든 남자든 상관이 없었다. 유럽에 4년 가까이 살고 와서도 여전히 허그 문화에 어색해하는 남편 앞에서도 나는 친구의 남편과 따뜻한 허그로 인사를 나누곤 했다.

잘 몰랐을 때, 북미와 유럽에서 흔한 허그 문화는 우리 식으로 하면 악수 정도의 인사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살면서 경험해본 입장에서 깨달은 바, 유럽인들도 아무 하고나 허그를 하지는 않는다. 허그를 하는 상대와 그냥 인사만 하는 상대의 '친밀도'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상대를 발견했을 때 팔부터 뻗어 '우리 허그하자'라는 신호를 보내는 사이는 정말로 친한 사이이거나 그렇게 친밀하지 않더라도 서로 호감을 갖고 친해지는 중이거나 하는 정도였다.

허그를 할 때 껴안는 강도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도 친밀함의 정도는 달라진다. 나의 독일인 친구는 만날 때마다 나를 꽉 안아주었는데 그 허그를 통해서 늘 그녀의 따뜻한 진심을 전달받고는 했다.


허그가 익숙해진 나는 베를린을 방문한 친구와 친정 식구들, 시댁 식구들을 공항에서 만나는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허그로 반가움을 표현했고 일정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깊은 허그로 아쉬움을 달래고 마음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허그 인사는 귀국과 동시, 인천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사라졌다. 몸에 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식' 라이프스타일로 스위치 전환이 된 순간 신기하게도 내 팔은 더 이상 뻗어나가지 않았다.


다시 허그 인사가 깨어 난 것은 몇 달 전이었다. 친정 엄마가 며칠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을 계기로 자연스레 부모님을 뵙고 돌아올 때마다 작별 인사로 허그를 했다. 그때 부모님이 좋아하시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좋아하시는 걸, 이게 뭐라고 그동안 안 했을까? 좀 더 자주 안아드리면 좋았을 텐데... 어릴 때 부모임은 숱하게 우리를 안아주셨는데 우리는 왜 부모님을 안아 드리는 데 그렇게 인색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댁에서 허그를 시도하는 것은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평소 굉장히 살갑게 지내는데도 며느리가 먼저 나서서 '우리 허그할까요?' 하면 다들 어떻게 생각하실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몇 번을 망설인 끝에 용기를 낼 순간이 찾아왔다. 몇 년 전과는 다르게 부쩍 몸이 쇠약해지는 시어머니를 뵐 때마다 늘 마음 한 구석이 아팠던 나는 어떻게든 나의 사랑과 걱정과 진심을 전해드리고 싶었고 시아버님 생신을 계기로 시댁에 '허그 문화' 도입을 '선언'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추석 연휴를 겸해 소소하게 치러진 시아버님 생신 파티에서 나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시부모님, 그리고 시누이 가족 앞에서 일어나 거두절미하고 외쳤다.

"우리도 오늘부터 허그를 하면 어때요?
'이게 뭥미?' 하는 가족들 앞에서 나는 먼저 시아버님을 안아 드리는 것으로 테이프를 끊었고 쑥스러워하던 가족들은 모두 나의 종용에 못 이기는 척 아버님을 한 번씩 안아드렸다. 아들과 딸이 아버지를, 사위가 장인을, 그리고 나아가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아들과 딸이 어머니를, 사위가 장모님을 안아 드리는
더없이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되었다.


재빨리 이 광경을 사진으로 기록하신 시어머니는 며칠 후 따뜻한 메시지와 함께 사진들을 '가족 단톡방'에 공유해주셨다. 정작 그날은 보지 못했던 시부모님의 더없이 행복한 표정을 보면서 나는 일을 벌인 스스로를 칭찬했다. 나는 안다. 그날 '허그' 이후 감정 표현에 서툰  시댁 식구들 사이에도 '어떤 따뜻한 변화'가 시작됐음을.


시작이 어려울 것뿐, 이제 우리는 만날 때마다 허그로 마음을 나누는 데 조금씩 익숙해질 게다. 다른 가족들이 까먹고 안 하면 그때 또 내가 나서서 상기시켜드리면 될 테고.

부모님들과 함께 할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사랑한다'라고 말해주면 좋을 텐데 솔직히 그 말을 눈앞에서 하기란 어지간해서는 쉽지 않으니 다만 나는 깊은 허그를 통해 진심을 전달할 뿐이다.


"우리 허그할까요?"

마법 같은 이 한 마디를 한 번씩 실천해보기를 바라며,

오늘도 굿 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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