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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Feb 04. 2020

Asian이라서 미안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만든 일상의 차별, 아이의 대처방식은...

몇몇 독일 친구들이 나와 만나기로 한 약속을 취소하더라. 우리 가족이 아시아인들과 긴밀하다는 게 이유였어.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
다만 네가 요즘 어떤 느낌일지 알 것 같아.


아이 학교 친구의 엄마이자 나와 절친이 된 독일 친구는 요즘 내게 거의 매일 메일을 보내고 있다. 메일 제목과 내용에 주로 들어가는 단어는 'Virus'. 가까이 살지만 서로 이런저런 바쁜 일상 탓에 기껏해야 한 달에 한두 번 따로 만나는 우리는 보통 메일과 문자 등을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다. 지난 12월 중순 시작된 크리스마스 방학 이후, 그리고 어느새 개학한 지 3주가 넘어가는데 커피 한잔 따로 못 마신 터라 할 얘기가 산더미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 이슈를 잠식해버린 이후 우리의 대화도 그 안에서 맴돌고 있다. 


큰일이다, 얼른 이 상황이 지나가면 좋겠다, 특히나 애들이 조심하게 하자 등등 보편적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들 위주였지만, 솔직히 어느 순간엔 감정이 상하기도 했다. 우리 아이가 감기에 걸리자 그녀는 내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열 체크는 해봤어? 조금이라도 열이 있다면 학교에 보내면 안 돼." 거기까지는 괜찮다. 12월부터 학교에 독감이 돌았고 많은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게 옮고 옮기는 식으로 각 반마다 몇 명씩 결석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어디까지나 걱정스러운 마음에 하는 말이었을 테니. 잠시 '저 친구도 우리가 아시안이라서 그러는 건가?' 하는 식으로 꼬였던 마음은 이내 그런 나 자신을 자책하는 것으로 상황 정리.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후 날아든 또 다른 메일을 받고선 나는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그 친구는 말했다. "우리 학교도 걱정이야. 애를 학교에 보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 중국 아이들 많잖아. 그중에서 방학 동안 자기 나라에 다녀온 아이도 있을 테고 친척이나 가족이 베를린을 방문한 경우도 있을 거 아냐. 나는 오늘 학교 측에 메일을 보냈어. 중국에 다녀온 아이와 중국에서 가족이 방문한 케이스를 파악해서 알려달라고 했지. 나 말고도 다른 엄마들도 요청한 것 같던데, 너도 필요하면 학교에 문의해봐." 


독일 내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관광지 인근에서는 마스크 판매를 하고 있다. 


국제학교인 아이의 학교에는 중국 학생들이 있다. 사실 한국인 학생들 수에 비하면 많은 편도 아니다. 프라이머리(초등학교)의 경우 학년마다 한 두 명 있는 경우도 있고, 아이 학년처럼 아예 한 명도 없는 경우도 있다. 독일 친구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몇 명 중국 학생들이 일부 엄마들의 '타깃'이 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걱정하는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는 일인지 모르겠지만 듣는 나는 참으로 불편했다. 어쩌면 내가 아시안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전부터 이미 중국인으로 오해받아 황당하고 불쾌한 일을 겪었다는 사례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들려왔고, 일부는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개의치 않고 아시안은 다 똑같이 '바이러스' 취급한다는 얘기도 들렸다. 심지어 '코로나 사태' 이후 아시안에 대한 인종 차별 사례가 심심찮게 발생하면서 주독일 한국대사관에서는 각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공지를 대사관 홈페이지에 올리기까지 했다. 

친구지만, 그녀의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나는 내가 느끼는 불편함을 최대한 정중하게 말해주기로 했다. "나도 걱정돼. 하지만 가능하면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왜냐면 요즘 내가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굉장히 불편한 상황이나 시선들을 겪고 있거든. 아이도 학교에서 비슷한 일들을 겪고 있는 중이고. 다행히도 아이는 아이대로 잘 대처하고 있는 것 같아. 조심해야 할 상황인 건 맞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듯해."

친구는 내 답변을 듣고 마치 독일을 대표하는 것처럼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인과 한국인을 헷갈려한다고, 학교에서도 그것 때문에 한국 아이들이 다소 불편한 상황을 겪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고, 그런 사람들을 무시해 버리라고. 한국인만이 아니라 모든 중국인을 '위험 대상'으로 바라보고 기피하는 발언을 지적해주고 싶었던 건데 거기까지는 행간을 읽지 못했던 모양. 


전반적으로 독일은 한국에 비하면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는 덜한 편이다. WHO 비상사태 선포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마스크를 쓰는 사람도 없고 심지어 공항에서조차도 관련 안내문이 붙어있는 정도로만 대처하고 있다. 일각에선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독일 정부의 태도에 불만을 갖는 목소리들도 들리지만, 물리적으로 중국과 먼 거리이고 중국 관광객들이 있다고 해도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하면 그 수가 많지 않다는 점도 비교적 공포가 덜한 이유 중 하나일 터. 

물론 속으로야 어떨지 모르지만 여전히 많은 독일인들은 아시안들에게 친절하고 전과 다를 바 없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사례들은 일부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어쩌면 무시하고 지낼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게 쉽지 않은 큰 이유 중 하나는 아이 때문이다. 기능 한한 오해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아이가 상처 받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우리는 불필요한 외출도 자제하고 있다. 안 그래도 인종차별이 벌어지곤 하던 베를린 내 일부 지역에는 더더욱 가지 않는다. 밖에서, 공공장소에서 전보다 더 의식적으로 당당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이 흘끗 쳐다보더라도 위축되지 않고 여유 있게 웃어주는 태도를 취한다. 


최근 주 독일대사관에 올라온 안내문. 독일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 및 혐오에 대한 주의를 담고 있다. 


나름의 이런 매뉴얼들을 아이에게도 늘 주지 시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서 아이가 때로 황당한 질문을 받거나 친구들이 멀리하는 어이없는 상황을 적어도 매일 한 번씩은 겪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진원지가 그냥 '아시아'라고 알고 있던 한 친구가 아이를 보고 손을 뒤로 감추는 일도 있고, 중국이라고 정확히 알고 있는 아이조차도 "한국은 중국과 가까우니 너랑 좀 떨어져 앉을게"라고 말하는 일도 있었다. 

다행히 코로나바이러스의 진원지와 감염의 경로 등에 들어서 알고 있는 아이는 그때마다 친구들에게 사실을 바로잡아주거나 설명해주는 식으로 적절한 대응을 하고 있다. '아시아' 전체가 코로나바이러스의 진원지로 알고 있는 친구에겐 "중국에서 시작됐다"라고 지적해주면서도 "너무 많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중국에 직접 다녀온 사람과 접촉하지 않으면 괜찮다"라고(물론 이 또한 수정이 필요해 보이지만) 부연설명을 해주기도 했고, 한국도 중국과 가까우니 위험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친구에겐 "그런 태도는 굉장히 어리석은 태도"라고 제법 강경하게 대처하기도 했단다. 잘했다고 칭찬을 하면 아이는 되려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그게 사실이잖아." '대응'을 위한 '대응'을 하는 게 아니라 아이는 순수하게 친구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주고 있다는 식이었다. 일단 감정적으로 격해지기부터 하는 어른들과 달라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에게 "오늘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별일 없었냐"는 질문이 일상화돼버린 요즘, 곧이어 시작될 일주일간의 겨울방학 동안 잡아놓은 여행을 유럽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차별 때문에 취소해야 할 것 같다는 주변의 한국 엄마들이 적잖은 요즘, 하루빨리 이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하루하루를 조심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한국인인 나도 이럴진대 이곳에 살고 있는 중국인 가족들은 어떨까. 며칠 전 눈인사만 하고 지내는 한 중국인 학부모가 하교 시 아이를 픽업하자마자 서둘러 주위 눈치를 보며 교문을 빠져나가던 뒷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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