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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Jun 14. 2020

내 아이 인터뷰 두 번째-'관계'에 대하여

만 9세 아이가 생각하는 가족, 친구, 사람 사이란

지난해 말, 마음이 자라는 것을 기록하겠노라는 취지로 아이와 첫 번째 인터뷰를 한 지 6개월 여가 지났다. 시간이 흐른 만큼 그 사이 분명 아이의 의식 세계도, 마음 상태도 몸이 자란 것만큼 자랐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아이와 인터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몸과 마음이 급격히 변화하는 사춘기가 아니고서야 6개월이란 시간은 아이의 어떤 변화를 감지하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다시 아이에게 인터뷰 요청을 한 배경에는 코로나바이러스 국면으로 인한 생활의 변화와 그 속에서 아이가 겪고 있는 '관계의 변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나 역시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고 지내는 사이 불필요한 연락을 하지 않게 되고, 그간 맺고 있던 관계들이 자연스레 중요한 순서대로 정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듯, 아이도 자신이 맺고 있는 수많은 관계, 특히 친구 관계의 변화에 대해 툭툭 말을 내뱉곤 했다. 속상한 표정으로 "스테판은 자기가 필요할 때만 연락하고 내가 하면 안 받아"라고 말한다던가, "파나쉬 하고는 다른 반이 돼서 잘 못 만났는데 화상통화로 더 친해진 것 같아"라는 식의. 아이가 강하게 믿고 있던 '베스트 프렌드'의 궤도에 어떤 변화가 일고 있음이 감지되는 순간이었다.

독일 나이로 여전히 9살, 한국 나이로 11살인 아이가 생각하는 '관계'란 무엇일까,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는 어떤 관계로 보일까, 아이의 첫 사회생활인 학교는 물론 가족들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한편으론 '관계'라는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과연 우리의 대화가 원활할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내 기준을 아이의 생각을 마음을 재단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나는 물으면 되고, 답을 들으면 되는 거니까.

결과적으로 어려운 주제였다. 가끔은 동문서답도 없지 않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또 한 번 내 아이의 내면을 읽어낼 수 있었다.

 

코로나 시국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 아이는 친구 관계에 대해 '재편'하는 기회가 된 것 같다.




Q. 사람들 사이의 '관계'라는 게 왜 중요할까?

지금은 글로벌 시대잖아.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사람들에 대해 잘 알 수가 있잖아. 어떤 때는 사람과의 관계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맺어질 때가 있어. 다양한 관계를 맺기가 쉬워진 시대라고 생각해.


Q.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긴 하는데 모두와 친하긴 쉽지 않지 않나?

서로 공통점이 있으면 관계를 잘 맺을 수 있어. 나는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랑 더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져.


Q. 더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했어?

3학년이 돼서 아디프랑 친해지고 싶었어. 착하고 책임감 있고 좋은 친구거든. 최대한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는데 예를 들면 쉬는 시간에 아디프가 축구 좋아하는 것을 알고 같이 축구하는 식으로 했지.


Q. 반대로 다른 친구들이 너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고 느낄 때도 있었어?

글쎄, 잘 모르겠어. 나는 내가 항상 먼저 친해지고 싶어서 그 친구에게 다가갔다고 생각하거든. 스테판도 그렇지. 하지만 스테판하고는 나중까지 오래오래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친구는 아닌 것 같아. 하지만 괜찮아. 다른 친구들이 있으니까.  


Q. 스테판하고는 뮤지컬 공연 준비하는 동안 단짝 된 거 아니었어? 왜 그렇게 느껴?

스테판은 인기가 많고 나 말고도 친한 친구들이 굉장히 많아. 말투에서도 (나랑 오래 베프로 지내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 그 친구랑은 축구 외에 공통의 관심사가 별로 없기도 하고.  


Q. 좋은 관계란 뭘까?

시간이 오래 지나도 우정이 있고 함께 많은 걸 하고 싶은 거라고 생각해.  


Q. 그럼 나쁜 관계란 뭘까?

나쁜 관계도 있지. 서로 라이벌이라던가. 하지만 모든 관계는 나중에 달라질 수 있어. 좋았다가 나빠지기도 하고 나빴다가 좋은 관계가 되기도 해. 미카랑 나도 그랬지. 미카랑은 2학년 말에 엄청 친해졌는데 사실 그 전엔 내가 별로 안 좋아했거든. 그 친구가 나를 때린 적도 있어서 오히려 내가 미카 때문에  아빠한테 권투도 배우고 그랬잖아. 그런데 지금은 베스트 프렌드야. 처음에 생각한 것과 다르게 나중에 보니 미카도 좋은 친구야.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는 달라져.


Q. 독일에 와서 새로운 관계를 많이 맺었는데  뭐가 가장 어려웠어?

맨 처음이 가장 어려웠지. 조금 알아가면 이후엔 자연스러워지는데 처음에 가까워지려고 다가가는 게 어려웠어.


Q. 독일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친구 관계는 뭐야?

미카랑 아디프가 성공적 관계라고 생각해. 아디프랑은 2년 동안 한 번도 같은 반 아니었는데 마지막 학년에 좋은 친구를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됐어. 미카도 그래. 어쩌다 보니 친한 친구가 됐는데 나중까지 오랫동안 잘 지낼 수 있는 친구가 된 것 같아.


Q. 엄마 아빠와 너의 관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독일에 와서 훨씬 친해졌지. 한국에서는 엄마는 저녁에만 보고 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 보거나 못 볼 때도 있었어. 그게 속상했는데 그래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같이 놀아주고 보살펴줘서 괜찮았어.(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한국에서 소원했던 것보다 여기서 더 돈독해진 것에 방점을 찍고 있었지만, 이 대목에서 나는 울컥했다.)

여기 와서 엄마 아빠랑 매일매일 많은 시간을 보냈잖아. 아빠는 '바쁜 친구'(엄마 아빠가 베스트 프렌드라고 하는 아이는, 항상 바쁜 아빠를 '바쁜 친구'라고 부른다)지만 그래도 집에서 일하니까 같이 있어서 좋아. 그래서 훨씬 더 친해진 것 같아.


Q. 독일에서 매일 같이 있게 된 후 우리 가족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졌다고 생각해? 새롭게 알게 된 거나 그런 게 있어?

이미 알고 있던 건데 더 확실해진 게 있지. 엄마는 그냥 좋다, 가 아니라 좋다는 감정이 확신적으로 드는 거고, 아빠도 그렇지. 한국에서 아빠를 생각하면 특별한 장면이 기억나지 않거든. 독일에서는 그냥 매일 같이 밥 먹고 집에 같이 있는 것도 다 기억나고 좋아. 특히 여기서 아빠는 나한테 많은 걸 가르쳐주잖아. 아빠가 잘 못하는 발차기 같은 것도 유튜브 보면서 가르쳐주고, 그런 것도 좋아.  


Q. 아쉽다, 하는 점이 있어?

보드게임을 잘 안 해주잖아! 더 놀아주면 좋겠어! 그거 외엔 불만 없어.  


Q. 네가 바라보는 엄마와 아빠의 관계는 어떤 거 같아?

굉장히 친하게 지내는 거 같아. 내가 학교 간 후에 같이 도서관에도 가고 그러잖아. 농담도 많이 하고 장난도 치고 친구 같아. 그런 거 볼 때 좋아. 엄마 아빠가 친구처럼 지내는 거 보면 나도 다른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알 수 있고 그래.


Q. 나중에 네가 어른 된 후 부모가 되면, 엄마 아빠는 참고할 만해?

응. 아빠는 운동을 가르치고 엄마는 수학이랑 국어도 가르쳐주고. 엄마 아빠는 나한테 친구처럼 하니까 참 좋아. 같이 대화하는 것도 참 좋아. 저녁 먹을 때 하는 대화도 좋고 잠자기 전에 하는 대화도 너무 좋아. 아주 작은 걸로 시작해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는 식으로 하는 거 있잖아. 어제도 엄마랑 자기 전에 줌 미팅으로 시작해서 프랑스 파리, 똥 냄새, 향수의 발명까지 이야기했잖아! 엄마는 설명을 재밌게 잘해.


Q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너에게 어떤 사람들이야?

엄마 아빠를 대신해줬잖아. 할아버지는 친구처럼 같이 놀아줬고 특히 나를 너무 웃게 해 줘. 할머니는 나를 보살펴줬고. 할아버지는 차 사고 날 뻔했던 것처럼 조심하지 않는 점이 약간 단점이고 할머니는 너무 논리적이야. 게임할 때도 나한테 져주지 않아. 할아버지는 맨날 져주는데.


Q 수지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때?

한 달에 한두 번 갈 때 하룻밤 자고 올 때도 있었잖아. 그때 오래 같이 지냈는데 재밌었어. 할머니는 같이 음식도 만들게 해 주고 너무 좋았어. 할아버지는 오목이나 바둑을 같이 했는데 너무 좋았어. 근데 수지 할머니 할아버지도 너무 논리적이라는 게 단점이야.


Q. 다른 또 기억나는 가족들 관계가 있다면?

서진이 누나는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서 너무 좋은 관계지. 작은 고모부는 서진이 누나랑 나를 데리고 가서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좋았어. 큰 고모도 나한테 엄청 잘해줬어. 할머니 집에 갈 때 큰고모를 자주 만났는데 나를 예뻐한다는 게 느껴졌어. 아 그리고 큰고모가 나한테 찰리 푸스도 알려주고 중요한 역할을 했지. 그게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재밌게 작곡하는 과정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야.

석준이 삼촌도 좋아. 삼촌은 IT 쪽에서 일하잖아. 내가 신기해하는 것들을 많이 알려줬어. 삼촌은 기술적으로 다 잘하는 사람 같아. 되게 웃기고 나를 즐겁게 해 주고 또 많이 놀아주지.


Q. 한국에 가면 또 새로운 관계를 맺을 텐데 두려움이 있어?  

지금은 친구랑 이야기할 때 영어로 하는 게 더 편해. 한국 가면 한국어 써야 하니까 두려움은 아니고 불편함이 있을 것 같아. 걱정은 별로 없어. 힘든 건 있겠지만 이겨낼 거야.


Q. 자신감이 있네? 너만의 관계 쌓기 노하우가 있는 거야?

음, 공통점을 잘 활용하고 최대한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면서 관계를 쌓고.. 그렇게 친해지는 거지.  


Q. 그렇게 해도 실패하는 관계가 생기면?

포기하면 안 되지.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서 다시 시도하면 될 것 같아. 처음 봤을 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반대로 별로였는데 좋은 사람일 수도 있잖아.


Q. 엄마는 서로 좋은 자극을 주는 관계가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

그렇지. 나는 특히 미카에게 좋은 자극을 주고 싶었어. 사실 미카가 태도 같은 게 별로 좋지 않았거든. 근데 갈수록 바뀌는 거 보면서 성취감을 느꼈어.


Q. 어떤 식으로 자극을 줬어?

나는 계속 미카에게 좋은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어. 평소에 태도도 좋고 잘하는 사람들은 한번 실수해도 용서받지만 평소에 잘 못하는 사람들은 잘해도 인정해주지 않잖아. 평소에 성실하게 살면 인생이 좀 더 쉬워질 거 아냐. 미카는 내가 그렇게 말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 조금씩 달라지는 거 보고 뿌듯했어.


Q. 독일을 떠나면 너를 잊는 친구들도 있을 텐데 괜찮아?

속상하지. 모두가 나를 기억해주기를 바랄 수는 없는 것 같아. 인생의 모든 관계가 평생 갈 수는 없잖아. 그래도 노력하면 이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 이번에도 학교는 안 갔지만 그동안 스카이프로 화상통화도 하고 그러면서 더 친해진 경우도 있잖아. 인터넷이 발달했으니 이메일도 보낼 수 있고 왓츠앱 같은 어플도 있고, 연락하고 지낼 수 있는 방법이 있어서 괜찮아.


아이는 헤어짐은 영원한 게 아니라는, 다소 어른스러운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독일을 떠날 날이 가까워오면서 나 또한 어떤 날은 이 수많은 관계들과의 헤어짐에 감정적이 되곤 했는데, 이렇게 또 아이에게서 배운다. 아들아 너는, 나의 훌륭한 선생님이기도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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