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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Nov 19. 2021

오늘 아침, 뉴스에서 찾은 '자극'의 순간

"한국에선 내로라하는 우등생이었지만, 그는 사실 한국 교육에 회의적이다. 막상 올라선 국제무대에서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가로막혔던 경험 때문이다. (...) "유학생활은 처절했다"고 한다. "이른바 '좋은 교육'을 한다는 서구권에선
늘 건설적으로 비판하기를 훈련했지만, 한국에선 그렇지 않았다"면서다. 그는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서울대에 왔는데 뭘 배웠는지 기억도 안 난다. 남은 게 뭔지 생각하면 허무하다"고 했다."

오늘도 역시 아침 루틴으로 뉴스들을 훑어보다 클릭을 부르는 강력한 제목 한 줄을 발견했다. <"서울대서 뭘 배웠나 모르겠다" 세계대회 우승한 여성의 일침(중앙일보)>이 그것. 우선 제목을 보고 떠오른 생각은 그랬다. 마침 어제가 대학 수학능력 시험일이었고 시험이 어려웠다는 평이 지배적이었으며 그로 인해 벌써부터 원하는 대학 진학이 가능할 것인가를 두고 수험생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피가 마르고 있을 이 시점에, 서울대서 뭘 배웠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하는 기사라니! '서울대'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만으로도 폭발적 클릭을 부를 수밖에 없는 '절묘한 타이밍'이다. 아니지, 우리나라에서 '서울대'는 꼭 입시철이 아니어도 언제든 (특히나 학부모들의) 클릭을 유도하는 '절대적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등등의 사념들. 


기사는 세계 최대 규모 인공지능 경진대회 '캐글' 데이터 분석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서울대 국제대학원 이수형 교수의 얘기다. 그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행정고시 차석으로 고위 공무원이 됐으나 막상 실전에서 역량 부족을 깨닫고 유학을 떠났고, 오랜 유학으로 면직 처리가 되는 상황에서도 공부를 계속했다. 그 스스로 '처절했다'라고 고백하는 유학생활 중의 깨달음이 바로 맨 위에 쓴 문장들이다.  


'서울대에서 뭘 배웠는지 기억도 안 난다'는 자극적인 문장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일 테고, 내가 특히나 꽂히는 문장은 '건설적 비판'이다. 그 누구와도 어떤 주제로든 토론할 수 있고 상대가 어떤 배경을 가졌든 필요하다면 설득할 수 있는 자질과 태도, 더불어 능력까지 갖춘 사람,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지향하는 교육의 목표는 사실 딱 이 한 가지로 귀결된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건 '아이 vs 어른'의 구도에서 이루어지는 건설적 비판이나 토론이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또래 사이에서 자기 주관에 근거한 비판을 하기란 상대적으로 쉽지만, 어른을 상대로는 간단치 않다. 사고력이나 논리, 추론, 경험치 등 일반적으로 어른이 우위일 수밖에 없는 점들을 다 차치하고 '나이'에서 오는 장벽 때문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어른에 대한 예의를 중시하는 상황에선 아이의 '건설적 비판'도 그저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이나 말' 정도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아니 '비판'이라는 단어 자체를 굉장히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부터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비판의 사전적 정의는 <1. 현상이나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함 2. 사물을 분석하여 각각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고, 전체 의미와의 관계를 분명히 하며, 그 존재의 논리적 기초를 밝히는 일>이다. 비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얘기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사물을 분석하고 논리적 기초도 밝힐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음, 아침부터 이렇게 심오하게 흐르려던 건 아니었는데, 아이들의 토론 능력 키우기에 너무나 진심인 나는 어디서든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또 이렇게 전투력이 상승하고 만다.)


토론력 키우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아이들이 '어른과의 대화'에 익숙해지고 그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자기 생각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경험치에서 우러나온 '결론'이다. 기사 속에서 이수형 교수가 말한 '좋은 교육을 하는 서구권의 건설적 비판 훈련'은 바로 교육 현장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학생(아이)과 선생님(어른) 사이의 장벽 없는 대화와 토론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말을 해도 괜찮을까' '나 혼자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따위 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아이는 어떤 상황에서든 상대가 누구이든 토론도 건설적 비판도 가능해진다. 토론의 에티켓이며 적절한 화법, 얼굴 달아오르도록 치열한 토론 후에도 상대에게 감정의 찌꺼기를 남기지 않고 다시 평소의 관계로 돌아가는 법까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훈련되니 좋은 교육일 수밖에. 


우리나라에선 온전히 사교육의 영역인 토론이 어떻게 하면 각자의 집안으로 일상으로 들어올 수 있게 만들까, 그 고민을 시작으로 열심히 역할과 방향성을 찾고 있는 나는 오늘 아침 뉴스 속에서 자극이 되는 에너지를 얻었다. 내가 생각하는 길과 한국의 학부모들이 원하는 길 사이에서 요 며칠 갈등이 많기도 했는데 흔들리던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나 할까. 


오늘도 굿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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