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는 제게 고마운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연재했던 '생각이 자라는 아이'가 운 좋게도 지난해 출판 제의를 받았고 이제 막 세상에 나왔습니다.
처음 내는 책은 아닌데, 온전히 저의 이야기, 저의 콘텐츠로 가득 채우는 일이라 정말 쉽지가 않았어요. 처음엔 브런치에서 쓰던 대로 에세이 방식을 원했는데, 출판사와 의견 교류하고 시장의 니즈도 파악해가면서 방향이 조금 바뀌는 통에 적잖이 애도 먹었습니다.
불특정 독자들을 대상으로 편하게 저의 얘기를 써 내려갔던 브런치는 일말의 부담감도 없이 '대화하듯' 쓸 수 있었지만, 필요를 느껴 값을 치르고 책을 구매해서 읽는 독자들의 상황을 고려하니 한 줄 한 줄 그냥 넘어가지지 않더라고요.
마치 다시는 책을 쓰지 않을 것처럼 지난 12년 육아의 모든 경험을 아낌없이 들추어내고 지향했던 지점들, 실천했던 가치와 방법들까지 담아내다 보니 할 말은 쌓이고 쌓여 결국 원고를 덜어내고도 적잖은 페이지의 책이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소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읽을 때마다 부족한 점만 보여서 부끄러운 맘 가득이지만, 먼저 제 글들을 좋아해 주셨고 격려해주셨고 공감으로 큰 힘을 주셨던 브런치 구독자 여러분들 그리고 이웃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책 소개는 아래에 붙이는 책 속 '저자 서문의 글'로 대신할게요.
“지금껏 당신이 들었던 최고의 칭찬은 무엇인가요? 문자를 보내주세요!”
그날도 역시 운전을 하며 평소 애정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던 중이었습니다. 매일 같은 방식으로 청취자 참여를 유도하는 터라 특별할 것도 없었는데 그날의 질문을 듣자마자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참 잘 키워.”
생각할 때마다 가슴 뛰게 하는 이 문장은 우리 집 아이가 저에게 해준 말입니다.
지난 2021년 여름이었습니다. 당시 한창 이 책을 집필 중이었던 저는 하루 건너 고민에 빠지곤 했습니다. 우리 집 아이의 성장사를 잘 아는 지인들은 종종 ‘아이를 인터뷰한다면서요? 너무 훌륭한 생각이에요. 책으로 내도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아이랑 그렇게 사이가 좋아요? 비결이 궁금하네요’, ‘아이와 토론 수업을 하고 있다니 대단해요’ 등의 피드백을 주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내가 좋아서 하는 일’, ‘소소한 개인의 경험’이라는 식으로 넘어가곤 했지요. 그러다 막상 출간을 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 것은 ‘육아 전문가, 교육 전문가가 아닌 보통내기 엄마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30대 중반, 일만 하다가 준비 없이 엄마가 된 제 자신을 돌아보니 이런저런 육아 서적을 밑줄 그어가며 읽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아이를 키우면서 깨달았지요. 내 아이, 내 상황에 꼭 맞는 육아 참고서는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요. 전문가의 말들은 허투른 데가 없었지만 구체적이지 않았고, 자식을 성공적으로 키워낸 엄마의 경험담은 ‘결과적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엄마들이 주변의 다른 엄마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몇 년 앞서 육아를 경험 중인 선배 맘들에게 오히려 위안을 받고 실질적 조언을 얻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일 겁니다. 십 대 초반의 아이를 키우고 있고 여전히 선배 맘들에게 지혜를 구하기도 하는 입장에 있는 저의 이야기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조언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던 중 좋은 기회가 주어졌지요.
그러나 앞에서 고백했듯 책을 쓰는 중간 지속적으로 고민에 빠졌고 그날도 복잡한 내면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난 모양이었습니다. 언제나 엄마에게 관심이 많은 아들은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제 표정이 좋지 않은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야”하고 넘길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른이고 너는 아이’라는 식으로 나누지 않고 부모의 감정과 상황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좋은 대화의 태도라고 생각하는 저는 평소 하는 것처럼 아이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엄마가 지금 책을 쓰고 있잖아. 그런데 요즘 글도 잘 써지지 않고 고민이 많아. 왜 그런지 생각해 보니 엄마가 이 책을 쓰는 목적, 그러니까 엄마처럼 아이를 키우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 엄마가 너를 키우면서 겪은 일, 실천하고 있는 것들을 들려주는 게 정말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공감해줄까? 진짜 필요한 이야기 맞을까? 이런 고민들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는 눈을 맞추며 따뜻한 목소리로 딱 한 문장을 말했습니다.
“엄마, 엄마는 아이를 참 잘 키워.”
아이의 말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지만 그 안에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걱정 말라는 위로, 자신감을 가지라는 격려, 엄마에 대한 감사와 존중, 그리고 스스로 잘 자라고 있다는 자존감의 표현까지. 세상에 이렇게 멋진 칭찬을 들어본 엄마가 몇이나 될까요.
이후로도 책을 집필하다가 막힐 때는 아이의 문장이 강력한 힘을 발휘해주곤 했습니다. 강의 평가에서 최고점을 받은 선생의 심정으로 나의 경험과 가치관, 실천과 의지 등이 분명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이야기들일 것이라는 주문을 스스로 걸게 만들었지요.
생각하는 힘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인정합니다. 그 마음을 꿰뚫어 보듯 ‘생각을 키우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책이나 콘텐츠도 즐비합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은 자라는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별반 차이가 없게 들릴지 몰라도 디테일이 다릅니다. 아이의 키가 자라도록 조력자의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나의 의지대로 키울 수는 없습니다. 생각도 마찬가집니다. 생각의 씨앗을 심어주긴 하되 뿌리내리고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고 꽃을 피우는 것은 모두 스스로의 힘이 중요합니다. 다만 곁에서 필요할 때 물을 주고 양분을 제공하고 관심과 애정을 쏟으며 지켜봐 준다면 더 튼튼하게 뿌리내리고 향기로운 꽃을 피울 수 있겠지요. 아이의 생각이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어떤 씨앗을 심고 어떤 환경을 만들어주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들의 여정에는 특별한 조력자 혹은 스승이 등장할 때가 많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어낸 한 명일 때도 있고 여러 명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서도 그런 누군가가 등장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언제일까요, 누구일까요. 그 누군가가 등장할지도 모르는 언젠가를 기다려봐야 할까요. 아니, 반드시 있다는 보장이 있을까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부모가 그 ‘누군가’가 되어주면 어떨까.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늘 함께하고 있으니 어느 순간 ‘누군가’가 짠하고 나타나 주기를 바라거나 기다릴 필요도 없을 텐데’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조력자’ 역할은 생각 씨앗을 심고 가꾸어 아이 스스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단단하고 고유한 내면을 키워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하면 됩니다. 이 책 속의 많은 이야기들이 작은 실마리가 되어 각자의 방식으로 응용될 수 있다면 바랄 게 없겠습니다.
끝으로 이 책이 탄생하게 된 근원이자 위기 때마다 나아갈 힘을 준 사랑하는 아들 도윤이, 옆에서 무한 지지와 응원을 보내준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던 저에게 좋은 기회를 제안해준 출판사와 편집자에게도 감사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