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나더씽킹 May 20. 2022

관찰과 발견의 시간을 너에게

5월 들어서면서부터 아이는 하교 후 혼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학교 앞 1분 거리의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한 번에 오는 버스 노선이 있고 심지어 그 버스를 타는 게 엄마 차를 타고 돌아오는 것보다 시간이 적게 소요되는 장점까지 있으니 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5분 남짓의 시간까지 포함하면 30여 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나는 요즘 이 시간이 아이에게 보석 같은 시간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사실, 아이가 혼자 귀가하게 되면서 내가 느낀 감정은 대중교통을 혼자 처음 이용해 보는 아이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아이와 내가 나누는 내밀한 대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차에 타면서부터 시작되던 온갖 이야기들, 오고 가는 대화 속에 끝도 없던 웃음, 그걸 통해 나는 내가 함께 하지 않는 아이의 생활을 마치 함께 하는 것처럼 공유하고 있었고 때론 아주 사소한 한 마디, 사소한 표정을 듣고 관찰하며 아이를 발견하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나의 아쉬움은 그러나 더 귀한 발견과 관찰의 시간으로 바뀌었음을 이제는 느끼고 있다. 혼자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내내 아이는 버스 안의 사람들을 관찰하고 거기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상상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버스 안에 붙어있는 각종 광고와 노선지도를 보고, 집까지 걷는 동안 대로 위 온갖 현수막들을 구경하기까지 하면서 이보다 더 다채로울 수 없는 30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발견과 관찰의 시간을 거친 후 집에 돌아와 나에게 해주는 이야기들은, 아이가 혼자 귀가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대화 소재에 오르지 않았을, 생각해보지 않았을 거리들도 많다. 이를 테면 이런 대화들.


"엄마, 왜 내 옆자리에는 할머니들만 앉을까? 오늘은 심지어 어떤 할머니가 내린 후 또 다른 할머니가 내 옆에 앉았어."

"버스에 왜 이렇게 닭가슴살 광고가 많아? '국가대표 블라블라~~~~' 이렇게 광고해. 내가 타는 버스에는 한 60% 정도가 닭가슴살 광고인 것 같아. 아, 오늘은 부동산 광고도 봤다!"

"나는 버스에 탈 때 항상 인사를 하는데 어떤 아저씨는 인사를 받아주고 어떤 아저씨는 모른 척해. 왜 인사를 안 받아줄까?"

"오늘은 oo이랑 잠깐 같이 왔는데 그 친구는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집에 가는데 빨간색 버스를 탄대. 빨간색 버스는 어떤 거야?"

"(마중 나간 아이가 길거리에서 두리번거리며 걸음을 멈칫하는 걸 보고 왜 그랬는지 묻자) 아 현수막이 새로 생겨서 그게 뭔가 구경하려고~!"


매일 소소하지만 그간 우리가 나눠보지 않았던 소재로 새로운 대화의 장이 열린다. 결과적으로 내밀한 대화 30분을 못하게 됐다고 아쉬워했던 나의 판단이 틀린 것이었다.

(전제가 있긴 하다. 전화기를 들여다보지 않을 것. 혼자 하교를 위한, 오직 그것만을 위한 수단으로 얼마전 비로소 개설한 아이의 폰은 '버스 탔어' '다음에 내려'라는 이동에 대한 문자 정보 공유만 하고 나머지는 꺼진 채로 두거나 가방 안으로 직행이다.)


언젠가 한 방송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레스토랑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쥐어주는 부모들에게 오은영 박사님이 건네는 말이었는데, 식사 시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모의 선택도 이해는 하지만 그 순간 아이는 관찰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했다. 식당 안은 어떤지 오가는 종업원들은 어떤 태도이며 어떤 말을 하는지 주변의 다른 손님들은 또 어떤지, 수많은 상황이 벌어지는 그곳에서 아이는 스마트폰에 집중하느라 그 다양함을 관찰하고 그걸 통한 자극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아이가 혼자 귀가하는 30여 분, 아이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발견과 관찰의 시간이다. 내가 늘 아이를 관찰하고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이와 내 관계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아이에게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이 그 시간 동안의 관찰이 아이를 더 깊어지게 만들고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시간들이 될 것이라 믿는다.


오늘은 또 어떤 관찰의 결과물을 가지고 대화의 물꼬를 트게 될지 기대하며,

오늘도 굿모닝.


매거진의 이전글 job은 있지만 출근하지 않는 엄마의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