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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Aug 01. 2022

아이를 야단친 다음 날

어젯밤 잠들 무렵 아이를 야단치고 불편한 마음이 여태 이어지고 있다. 

'혼을 내서' 불편한 게 아니라 이런 상황이 온 자체에 대한 불편함이다. 


나는 사안이 중대하지 않는 한, 반드시 '그때'라야 하지 않는 한 '야단치기'를 미루는 편이다.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야단을 치는 에너지 소모가 싫어서가 아니라 아이에게 '기회'를 주는 차원이다. 물론 혼을 내는 상황 연출이 되지 않을 뿐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지금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전략을 택하는 것뿐이다. 대개의 경우 아이는 그런 식으로 하면 상황을 깨닫고 돌아갈 때가 많다. 


그러니까 어젯밤 야단을 친 것은 내 입장에서는 참고 참고 참다가 '이제는 해야 할 때'라고 판단해서다. 

무려 7주간의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3주 이상이 흘렀다. 개인적으로 방학이 밀린 공부를 해야 한다거나 선행을 많이 할 수 있는 기회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동의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방학이 말 그대로 '학습을 놓는' 기간이어서도 곤란하다. 내가 생각하는 방학은 새로운 배움 혹은 시간 부족으로 못 다했던 취미든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그러니까 우리 아이의 상황을 예로 들어보면 아이가 늘 시간이 없어 충분히 할 수 없음을 아쉬워했던 드럼 치기나 피아노 연습, 시작만 해놓고 멈춘 지 몇 달 째인 대형 레고 완성, 밀린 독서 리뷰 블로그 등을 하기에 시간적 여유가 충분한 것이다. 합기도 말고는 학원 근처에도 가지 않으니, 그것도 충분히 놀고 쉬는 시간을 포함해서 말이다. 


지난 3주간 독일에서 실컷, 온전히 실컷 놀기만 하다 돌아오면서 서울에 돌아가서는 이번 방학에 하기로 계획했던 것들을 해보기로 다짐하고 돌아온 아이는 그러나 돌아온 후에도 같은 생활 패턴이 지속되고 있었다. 뭐 며칠 지나지 않았으니 더 지켜볼 수도 있었지만 어젯밤 내가 '지금'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8월을 앞둔 날이기도 했고, 야단을 치는 내용 중에 이미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도 한 번 지적한 바 있는 같은 문제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었다. 더 미루면 스스로 생활 패턴을 고치기 어려워질까 걱정스러운 것도 있었다. 

야단을 쳐야 할 일이 생길 때 매번 나의 핵심은 '자기 스스로'다. 

디지털 디바이스를 너무 오래 붙잡고 있는 아이에게 

"너무 오래 붙들고 있잖아! 그만 좀 할 수 없어?"가 아니라 "디지털 기기를 허락해준 건 네 스스로 조절이 가능했기 때문에 그랬던 거야. 그런데 지금은 네가 생각했을 때 어떤 것 같아?"라고 하고, 

"방학 때 그렇게 놀기만 하면 어떻게 할 거야?"가 아니라 "방학은 소중한 시간이야. 너도 방학 때 하고 싶었던 일들 많다고 했었잖아. 그런데 지금 너는 어떻게 보내고 있는 것 같아?"라고 하는 식이다.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를 지적하고 그게 왜 문제인지를 알려주는 것까지만 나의 몫이고 나머지는 아이 스스로 이 상황에 대해 생각해보고 고민하고 반성하며 앞으로를 계획해야 하는 것이다. 공부든 독서든 자기 계발이든 스스로 하지 않으면 엄마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효과 떨어질뿐더러 지속 가능하지도 않으니까. 아이를 야단치는 건 지금 당장 벌어진 상황을 바꾸는 것만이 아니라 보다 거시적인 변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니까. 


하나 더, 야단을 칠 때 나는 나름의 '기승전결'을 따르는 편이다. '기'에서는 이런 이야기, '승'에서는 이런 이야기 하는 식의 구분이 아니라 시작과 끝을 전략적으로 함으로써 보다 효과를 내기 위함이랄까. 

우선 시작할 때는 아이에게 반론권을 준다. 어제의 경우, 나는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야단치기를 시작했다. 

"엄마가 할 이야기가 있어. (일단 이 문장에서 아이는 나의 목소리 톤이 더없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으므로 야단맞는 시간이구나, 하고 깨닫는다) 그동안 너를 보면서 지적하고 싶었던 문제점들을 얘기할 건데 혹시 들으면서 내가 오해하는 부분이 있거나 반박할 내용이 있으면 말해줘. 엄마 입장에서는 충분히 지켜보고 생각한 것들이지만 또 너는 다를 수 있을 테니까."

실제로 보통 아이가 야단을 맞는 상황은 100% 일방적일 때가 많다. 아이가 그 상황에서 반론이라고 해봐야 상황 모면을 위한 '변명'으로 받아들여져 더 혼만 나는 악영향을 끼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나는, 특히 우리 아이처럼 자기 생각이 체계화된 나이의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자기 반론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엄마의 판단이 다 맞는 것도 아니고, 또 저렇게 말하고 시작하면 아이는 대부분 '반박'하지 않는다. 이미 이 상황이 민주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인지 대개는 "엄마 말이 맞아. 내가 잘못한 것 같아"라고 말한다. 


야단치기를 마무리할 때는 반드시 격려와 응원, 당부의 말로 '훈훈한' 끝을 맺는다. 

"엄마가 매번 네가 하는 걸 지적하거나 야단치지 않는 건 너를 믿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스스로 잘 해왔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오늘 우리가 한 이야기들 잘 기억하고 잘해보자.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생각대로 계획한 대로 살 수만 있는 것도 아니야. 엄마도 그랬고 다들 그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잘못된 채로 내버려 둘 수는 없어. 엄마는 너를 사랑하고 너를 잘 이끌어주는 게 내 역할이니까."

그리고는 다시 러블리한 모드로 굿나잇 인사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게 '야단치기' 상황의 끝. 그렇게 잠이 들고 아침이 되면 우리는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한다. 

어젯밤 많은 다짐의 말을 쏟아낸 아이가 오늘부터 어떤 변화를 만들어갈지 나는 알 수 없다. 생각보다 더 잘할 수도 있고 다시 잊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후자라고 해도 나는 또 혼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어떤 말'로 스트레스 없이 어젯밤의 상황을 리마인드 하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끊임없이 전략을 생각하고 말 한마디를 고민한다.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이만큼 '관계'를 위한 전략을 생각했었던가 돌아보면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오직 스트레스로만 작용하지 않는 까닭은 그걸 통해 나 자신도 더 성숙해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또, 백번 생각해도 '아이와의 관계'가 '직장에서의 관계'보다 중요한 건 틀림없이 사실이니 고민하고 노력하고 애쓰는 건 당연하지 않나. 


아이를 야단친 다음 날 아침, 아이가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일어나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굿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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