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방학을 맞은 아이를 데리고 짧게 여행을 하느라 며칠간 일로부터 해방돼 있었습니다.
일주일 간 발행해야 하는 콘텐츠와 원고, 수업 자료 제작 등 주간 단위(주말을 포함하여!)로 비교적 규칙적이고 타이트하게 돌아가는 일정에서 며칠을 뺀다는 것은 일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리 해놓아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주말 하루를 포함한 사흘간의 일정이었다 해도 그 며칠을 쉬기 위해 그로부터 며칠간은 더 빠듯한 하루하루를 보냈다는 것을 의미하죠.
몰아치기로 일을 처리해 놓고 쉴 때는 좋았는데, 일상으로 복귀해 다시 업무를 시작하려니 왜 이리 일손이 잡히지 않는 것인지, "인간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자기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는 건 아닐까"하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하면서 일하기 싫은 마음을 합리화하는 중입니다. 물론 이 법칙이 작동하려면 '외부의 힘이 0'이어야 하니까 '일'이라는 압박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을 때만 가능할 텐데 문제는 제가 그리 '통 큰' 사람이 못 된다는 것이죠.
'이것도 해야 하는데, 저것도 해야 하는데, 아무리 미루고 미뤄도 내일까지는 00를 마무리하고, 그다음은...' 하는 식으로 마음 한편에서 솟아나는 근심들을 꼭꼭 눌러 가면서 반나절을 온전히 빈둥거리다가, 세상에나! 마음에 온전한 평화를 주는 문장을 만났지 뭡니까.
** 이 책은 그러니까 2020년 말, 독일살이를 끝내고 돌아오자마자 주문해서 읽었던 책입니다. 그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는 까닭은 평소 김영민 교수님의 팬을 자처하는 제가 독일에 있을 때 책의 출간 소식을 듣고 '버킷리스트'에 올려 두었다가 귀국하자마자 '빨리 읽어보고 싶다'는 간절한 맘으로 구매했기 때문입니다. 특유의 유머러스함, 그러나 때론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움이 있어 언제 다시 봐도 여전히 좋은 글이 많습니다. **
행복의 계획은 실로 얼마나 인간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주는가.
우리가 행복이라는 말을 통해 의미하는 것은 대개 잠시의 쾌감에 가까운 것. (...)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따라서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중에서
이 구절에서 핵심은 단연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입니다.
그러게요, 기다리는 독자, 써야 할 글, 콘텐츠 기획안, 발행 계획, 수업 자료 제작 같은 소소한 근심이 있다는 것은 그 이상의 큰 걱정과 근심이 없다는 것이니 충분히 누릴 만한 것이겠죠.
동화 <걱정씨>에서 마법사 덕분에 모든 걱정을 내려놓았던 걱정씨가 결국 "걱정할 게 하나도 없어서 걱정이라구요!"라면서 걱정할 게 하나도 없는 것을 걱정했던 것처럼, 누려도 괜찮을 작은 근심 걱정이 있는 상태가 오히려 인간다운 행복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