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의 압박 속 작은 힐링
# 반갑다, 한국 돈. 근데 이 낯섦은 무엇?
계좌를 정리해야 할 시점이다. 가지고 있는 유로화 중 남겨야 할 부분과 송금해야 할 버짓을 체크해서 분리를 해두었다. 정리하는 김에 가지고 있던 외화들을 한 번 더 정리했다. 출장이나 여행 다니면서 환전했던 외환 중 남은 것들을 보통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참 보유 중인 외화가 다양하기도 하다. 많았으면 좋았을 걸 그냥 다양하다. 달러는 기본이고, 러시아,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그리고 유럽에서도 유로화를 쓰지 않는 나라들을 여행할 때 필요해 환전한 체코, 스위스, 폴란드, 영국 등. 여행 후 남은 돈이 부러 다시 환전을 꼭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만큼 많지 않은 이유도 있었고, 어쩌면 한 번 더 필요한 일이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도 사실 있었다. 특히 독일에 살면서 인근 유럽 나라들을 다닐 때는 더더욱. 아닌 게 아니라 폴란드, 체코 등은 바로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자주 드나들었던 탓에 어느 정도의 돈은 보유할 필요성도 있었다. 정리를 한답시고 꺼내놓고 보니 다시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올해 이렇게 발이 묶여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될 줄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이 돈들을 나중에 다시 쓸 기회가 있을까.
외화 사이에 섞여 있는 한국 돈을 꺼내 지갑에 넣어두었다. 유로화로 채워져 있던 내 지갑의 주인이 이제 곧 원화로 바뀌겠지. 5만 원 권, 1만 원 권, 5천 원 권, 1천 원 권, 그리고 동전들. 반갑기도 한데 어쩐지 낯설다. 지인의 SNS를 보면서도 원화로 가격이 적힌 물건값을 자연스레 '유로'라고 읽을 정도로 화폐의 우선순위가 바뀌어 살았던 때문일 게다. 돈을 세면서 당장 한국 도착해 (쓸 일이 있을까 싶지만 여하튼) 쓸 돈 정도는 있다는 생각에 괜한 안도감이 들었다.
# 아날로그와는 이제 작별인가?
독일은 여전히 아날로그 사회다. 디지털화로의 속도가 빠르다고 하는데, 글쎄, 왜 체감되지 않는 것인지.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대부분의 관청이 닫으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관청 및 기업들의 온라인 서비스가 많이 개선되긴 했다. 얼마 전 주소지 이전을 하면서 '이게 온라인으로 된다고, 이제?' 하면서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관련 관청으로부터 '가능한 한 빨리 처리해주겠다'는 답장을 받고 '빨리'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고 얼마나 기대를 했던지. 결국 주소지 이전(움멜둥) 완료는 신청일로부터 약 열흘이 지난 시점에 받았다. 그것도 우편으로! 아, 온라인으로 신청이 된다고 해서 결과까지 온라인으로 받는 건 아닌 모양이다. 얼마 전 한국으로 돌아간 지인은 '압멜둥(퇴거 신청)'을 신청했는데 무려 3주 만에 그것도 우편으로 완료 처리 서류가 왔다고 했다. 믿을 수 없었다. 처리 기간이 길었던 데는 한국으로 우편을 보내서 도착하는 기간도 포함돼 있었던 건데, 정말 놀랍지 않나? 독일의 아날로그식 일처리가?
40개월을 그런 식으로 살았으니 쌓여있는 페이퍼들이 얼마나 많겠는지 상상해보라. 나중에 혹시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편을 통해 페이퍼로 받은 각종 계약서며 관련 서류들을 모아놓다 보니 그것만으로도 짐이 한가득이었다. 일단 에어비앤비로 모든 서류를 들고는 왔는데, 이것들을 죄다 한국으로 가져갈 수는 없는 일. 오늘은 그 서류들을 일일이 꺼내서 필요한 것은 킵하고, 알쏭달쏭 한 것은 스캔을 하고, 아닌 것은 폐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시간이 많~~ 이 걸리는 일이었다.
아날로그라는 것이 꼭 일처리의 속도가 느리다는 뜻은 아니지만, 여기는 아날로그면서 느리다. 우리가 독일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처리 중인 일들이 많을 거라서 여기서의 생활이 끝난다고 모든 서류를 폐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딱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다. 주택 임대 계약이 마침내 끝났지만 사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보증금 정산 관련한 문제가 남아있고 관리비 정산도 남아 있다. 이게 이사 가는 날 왜 정리가 안 되느냐고? 그게 독일 식이다. 보증금의 경우는 집 손상 등을 따져 돌려주게 돼 있는데, 언제 그 처리가 끝날지는 주인 맘이다. 아는 지인은 2년을 끌다가 결국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고 끝나기도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한 달 만에 돌려받기도 했다. 복불복이요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관리비는 좀 더 시간이 걸린다. 매월 관리비를 '어림짐작'해서 내다보니 일 년 뒤 실 사용량을 따져 제대로 다시 정산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 지난 10월 중순 임대 계약이 끝난 우리는 아마도 내년 5월 이후에나 관리비 정산 내역을 받게 될 것이다. 보통 돌려받는 일이 드무니, 이사 간 지 한 참 후인 내년 여름 즈음에 '얼마'를 더 내라는 통보를 받으면 정말 쌩 돈 무는 기분이 들겠지.
여하튼 그러다 보니 주택 관련 서류를 내년까지 들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임대 계약이 끝나고 집을 돌려주던 날, 관리인이 내게 물었다. "관리비 정산 서류받을 한국 주소를 알려줘." 헉. 그 서류를 한국으로 보낸다고? 우편으로? 나는 지금 주소가 없다고 했다. 오직 이메일만 가능하니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과연 잘 처리될 것인지 궁금하다. 내년에 설마, 다시 주소 보내달라고 연락 오는 거 아닌지.
# 3일 남았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좀 내야지!
진짜 3일 뒤면 가는데, 하루하루 뭐 이리 정리할 게 많고 분주한 지. 임시로 살다가 가는데도 버릴 건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날짜가 임박할수록 복잡해져 가는 머릿속과 일정으로 마음이 시끄러운 찰나, 창 밖으로 다른 집들이 장식해 놓은 크리스마스트리며 조명 등이 보였다. 아, 크리스 마스지!
독일에선 (유럽이 다 그렇지만) 크리스마스가 연 중 최대의 축제다. 지금 코로나로 인해 올해는 크리스마스 마켓조차 대부분 오픈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상상이 안 된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없는 12월이라니!!
거의 모든 가정에선 진짜 나무를 사다가 트리 장식을 하고 테라스에도 찬란한 장식을 한다. 본인들 즐기려고 하는지 남들 보라고 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장식을 바라보는 시선이 외부인에 맞춰져 있다. 덕분에 직접 집안을 꾸미지 않아도 어딜 가든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 풍긴다. 아이들은 선물로 받은 아드반트 캘린더를 매일 한 칸씩 개봉하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아드반트 캘린더는 보통 초콜릿 브랜드에서 많이 판매하는데 12월 1일부터 24일까지 해당 날짜의 숫자가 적힌 칸을 열면 그때그때 다른 초콜릿 등이 들어 있다.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처음 그걸 봤을 때 기가 막힌 상술이라는 생각을 했다.
남의 집 장식 보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했는데, 채워지지가 않았다. 아쉬운 대로 빨간 양초 하나로 버티고 있었으나, 미미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어제 급히 아마존에 장식용 양말을 주문했다. 3개들이 세트에 15유로였다. 이 날짜에 이걸 산다고 하면 남편이 분명 뭐라고 할 테니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득달같이 배송이 왔다. 벽난로가 있었던 자리에 나란히 걸어두었다. 이게 뭐라고, 기분이 좋은 건 뭔지. 한국 가서도 빈 집에서 2주간 격리해야 하는데, 이 양말 장식이 위로가 되어줄지 모른다.
# 아플 때 가장 서러운 외국 생활, 선생님 덕분에!
저녁 무렵 주치의 선생님이 오셨다. 잠깐 볼 일이 있어 들르신 차였는데 아이를 위한 굿바이 선물을 사들고 오셨다. 매일매일이 작별로 슬픈 아이에게 또 그렇게 기쁨을 주셨다.
외국에 살면서 가장 서러울 때가 아플 때다. 말이 통한다 해도 참 설명하기 애매한 아픈 증상들도 많으니 많은 한인들이 애초 한국인 의사 선생님이 있는 병원을 찾는 편이다. 우리의 주치의 선생님도 가정의학과 병원을 운영하시는 한국 분이셨다.
참, 독일은 주치의 제도가 있다. 한국처럼 이 병원 저 병원 골라가는 분위기가 아니라 본인이 등록한 병원을 주치의 병원으로 다니며 건강을 체크받는다. 제도라고 해서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고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아이들의 경우에는 주치의가 필요하긴 하다. 학교나 유치원 등에 가거나 어떤 클럽 등에 참여할 일이 있을 때도 주치의가 누군지를 써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이력을 꿰고 있으니 주치의가 있는 게 참 편하고 좋긴 했다. 특히나 그분이 세심하게 신경 써주시는 한국분이셔서 더더욱.
아파도 예약 없이 갈 수 없는 독일 병원과 달리, 우리 주치의 선생님 병원은 갑자기 방문해도 받아주셨다. 다행히 3년 넘게 크게 아파서 병원 신세 질 일은 없었지만 철마다 한 차례 감기를 앓는 아들과, 틈틈이 이런저런 병원 갈 일이 생기곤 했던 우리에게 선생님의 존재는 든든한 백이었다. 아프면 안 되지만 아파도 마음 놓고 찾아갈 병원이 있다는 게, 그 자체만으로 얼마나 마음이 든든했는지.
"나는 늘 여기 있는 사람이니 베를린 오게 되면 언제든 놀러 와요."
모든 인연이 다 소중하고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