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까지 아팠던 날, 나를 울린 메시지들
# 마지막 스낵 박스, 쪽지의 마법이 통하기를.
여느 때보다 늦은 아침 7시에 일어났다. 6시 40분에는 일어나야 아이 스낵 박스를 준비하고 아침 식사도 챙기고 학교에 8시까지 갈 수 있는데. 그것도 겨우 세수만 하고 말이다. 7시에 일어나는 날은 세수는 무슨, 일단 그냥 간다. 학교 앞에서 아이 혼자 내려주고 돌아오면 되니까 가능한 일이다.
점심은 학교에서 주지만, 오전 일찍 아이들은 스낵을 먹는다. 아마도 학교를 일찍 가야 해서 아침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해 그런 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여기 와서 매일 아침 스낵 박스를 준비하는 일이 솔직히 스트레스였다. 간단히 과일 정도 챙겨가는 걸로 만족해주면 간단할 일이지만, 독일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은 아이는 스낵을 점심 삼아 먹었다. 그러다 보니 매일 아침 김밥을 싸거나, 주먹밥을 만들거나, 치킨을 튀기거나, 만두를 굽거나, 든든하게 요기가 될 만한 것들로 채우느라 나의 아침은 늘 혼이 나갔다. 게다가 '아침을 푸짐하게 먹고 싶다'는 아드님 요청에 적어도 3첩 반상은 차려드려야 하니,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잘 먹어주니, 잘 커주니 얼마나 다행인지. 한국에 있을 때는 할머니 밥을 주로 먹었던 아들에게 매일 엄마 밥을 해줄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야 했다.
마지막 스낵 박스는 그런데 오히려 부실했다. 냉장고 재료를 거의 소진한 탓이다. 전날 사둔 빵과 남은 만두 몇 개를 굽고, 사과 1/3쪽쯤을 잘라 넣었다. 그리고 역시 메모를 남겼다. 마지막 날이라고, 친구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정말 마지막 같으니까,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웃으면서 돌아오라고. 엄마 도시락 쪽지의 마법이 오늘도 통하기를 바라는 맘으로.
# 몸이 아픈 건지, 마음이 아픈 건지.
오늘따라 컨디션이 계속 좋지 않았다. 몸이 아픈 건지, 마음이 아픈 것인지. 계속된 두통으로 앉아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며칠 통 밤 잠을 설친 탓일지도 몰랐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잠을 푹 자기가 어려웠다. 이런저런 걱정과 챙겨야 할 것들 때문에 아마도 긴장 상태였던 모양이다.
할 일을 내일로 미뤄 놓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는데 지속적으로 왓츠앱 메시지가 울렸다. 아이 학교 학부모들이었다. 아이들끼리 친한 덕분에 자주 부딪치고 문자 할 기회가 많았던 그녀들과는 함께 한 시간보다 훨씬 유대 관계가 깊은 느낌이 있다. 메시지의 내용은 이런 식이었다.
"우리 아이가 너무 슬퍼하고 있어.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정말 너무 힘든 시간이야. 그렇게 말이 많던 우리 애가 오늘 얼마나 조용했는지 몰라. 한국이랑 시차가 어떻게 되느냐고 묻고, 한국에 꼭 한 번 가야 한다고 하더라고. 아이들은 아마 알아서 계속 우정을 잘 지켜나갈 거야. 우리는 너희들을 정말 그리워할 거야. 하지만 어떻게든 다시 만날 기회를 만들 거니까 '영원히'라는 표현을 안 할게. 다시 만나자."
메시지를 읽는데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이 이별을 힘들어하는 아이들 반응에 고맙고 미안했다. 우리 아이가 친구들 사랑을 많이 받았구나, 40개월 동안 우리 가족에게 좋은 친구들이 정말 많았구나, 나중에 그리워할 이들이 이렇게도 많구나, 하는 생각에.
답장을 보냈다.
"고마워. 사실은 나도 돌아가는 게 아직 믿기지 않아. 그냥 좀 긴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랄까. 조금 있으면 다시 여기로 돌아올 것만 같아. 아이들을 슬프게 만들어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 우리 아이도 사랑하는 친구들을 너무나 그리워할 거야. 이토록 멋진 친구들을 만났으니, 얼마나 행운인지 몰라. 우리 모두 너희들과의 소중한 기억들을 오래오래 간직할게. 네 말처럼, 우리 다시 만날 거니까 안녕이라고 말하지 않을 거야. 우리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굿바이 말고 씨 유, 김은숙 작가가 너무나 좋은 표현을 알려줬다.
# 눈물을 거두고 웃으며 안녕.
아이 하교 시간에 맞춰 남편과 함께 아이를 데리러 갔다. 나올 시간이 되니 슬슬 걱정이 됐다. 아침에 반 친구들과 선생님들 드린다고 굿바이 구디백을 들고 갔는데, 혹시나 이별 의식을 치르다가 울어버린 건 아닌지. 그도 그럴 것이 전날 잠이 들 때까지 아이는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매일매일 잘 버티더니, 마지막 날을 앞두고서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겉으로는 아이를 토닥이면서도 속으로 함께 눈물이 났다. 그 마음을 너무나 짐작하기에.
아이는 나올 시간이 지나고 교문이 잠기기 직전까지 나오지 않았다. 걱정이 됐다. 아이의 베스트 프렌드들도 하나 같이 안 나온 걸 보니 다 같이 있는 모양이라 그나마 다행. 시간이 한참 지나고 아이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떠들썩하게 웃고 장난치며 교문 밖을 빠져나왔다.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정신없이 수다 삼매경을 이어갔다. 상상했던 장면과 너무 다른 상황에 나는 안도했다. 아이들을 잠시 진정시키고 기념으로 남길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은 분명 웃고 있는데 나는 그 안에서 진짜 감정을 읽었다. 섭섭하고 슬픈 마음을 모두들 들키지 않게 잘 컨트롤하고 있었다. 짠했다.
집에 돌아와 친구들이 주었다는 선물을 열어보고 우리는 한참을 웃었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자신들을 절대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선물 아이디어를 내느라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아이들의 진한 우정이 부러웠고 기특했고 감사했다. 아이는 오히려 어제보다 훨씬 침착해져 있었다. 아마도 친구들의 마음을 강하게 확인해서이겠지, 이 우정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 어디에 있든 이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서겠지. 너희들의 우정이 지속될 수 있도록 어른들이 노력해 줄게, 걱정 마.
# 왕진가방과도 이별할 시간입니다.
다들 집에 건강염려증 있는 사람 한 두 명 있을 텐데,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다. 베를린 올 때 사온 한국 약만 한 가득인데, 한국에서 누가 온다고 하면, 한국에서 공수받을 기회가 생겼다 하면, 그분은 여지없이 비어있는 약품 목록을 채우느라 바빴다. 사실 비어있는 것도 아니다. 5개에서 1개가 비었으면 5개를 채워야 하는 식?
'어디가 아프다' 말만 하면 그분이 왕진가방을 들고 와서 적절한 약을 내밀었다. 집안일의 99%는 내 몫인데 약품 관련한 일은 전~혀 손댈 필요가 없었다. 어떤 때 무슨 약을 먹으면 가장 효과적인지, 그분이 가장 잘 아니까, 어디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면 된다.
왕진가방은 한국으로 미리 간 컨테이너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왜냐고? 임시 생활자의 삶이라고 건강염려증이 없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남편의 왕진가방은 우리와 함께 에어비앤비로 이사를 왔더랬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제 왕진가방과 이별할 시간이 왔다. 수많은 약품을 다 들고 한국으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심지어, 3년 전에 사들고 온 약품이 아직 남아있는 것도 있으니, 꼭 필요한 것만 챙기고 나머지는 정리해야 할 수밖에.
남편은 30분 넘게 왕진가방 안에서 약품들을 꺼내어 분류하는 작업을 하더니 드디어 작별의 순간을 맞았다. 그 장면이 나에게는 얼마나 코믹하던지. 그런데 또 한편 생각하면 남편의 왕진가방 덕분에 아플 때마다 적절한 약을 제공받았으니 고마운 일인 건 분명하다.
여기서는 이별이지만, 아마도 한국 돌아가면 또 다른 왕진가방이 생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