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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Apr 20. 2021

아이를 위로하려다 도리어...

엄마는 맨날 늙었다고 하면서 도전도 안 하고 그러는데 그러면 안돼.
엄마는 안 늙었어!
앞으로 120살까지 살 텐데 엄마는 아직 반도 안 산 거야.
애기야 애기. 


아침 7시 35분 차에 올랐다. 여느 날과 하나도 다를 게 없지만 분명 다른 날이다. 어제 아이에게서 들은 얘기가 아침 등교 시간이 되니 다시 마음에 얹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제 하굣길, 아이를 기다리며 대기 중이던 차에 올라타자마자 아이가 말했다. 

"엄마, 우리 학년에 인기 클럽 같은 게 있다고 말했지?"

학교에 오래 다닌 아이들 중심으로 모여 노는데 대부분 그 친구들이 인기가 많아서 아이들은 그걸 '인기 클럽'이라고 부른단다. 

"응, 알아, 근데 왜?"

"오늘 M(아이가 지금 학교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다)이 거기 인기 클럽 애들이랑 좀 놀았는데 내 이야기가 나왔대. 근데 애들이 나보고 좀 '어노잉(annoying)'하다고 그랬나 봐."

순간 마음이 쿵, 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3개월 전 전학을 가면서 이런저런 적응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각오도 했다.  이 상황에서 뭐라고 이야기 해줘야 할까, 머뭇거리는 사이 아이가 먼저 말했다. 

"근데 나는 괜찮아. 남들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든 상관없어. 걔네들 원래 모여서 다른 친구들 이야기하는 거 좋아하는데 그런 스타일이 나하고 안 맞아. 나는 혼자여도 상관없어. 친구 없어도 돼."

말은 그렇게 하는데 분명 엄청 속이 상해 있었다. 내가 아이 맘을 왜 모를까. 엄마에게도 속상한 그 맘을 들키기 싫어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는 것을. 

"음, 그 친구들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는 얘기 안 해?"  

"응 안 해, 물어보지도 않았어."

잠시 할 말을 정리를 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오늘 점심 메뉴는 어땠는지, 처음 시작한 자전거 수업은 어땠는지 등등. 집에 거의 다 올 때쯤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친구들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엄마는 '혼자여도 상관없어' '친구 없어도 돼'라고 말하는 게 너무 속상하네. 학교는 작은 사회야. 공부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하고 어떻게 관계를 잘 맺고 살아야 하는지도 배워야 하잖아. 만일 친구들이 너에게 어떤 오해 같은 게 있을 수 있으니 한번 잘 생각해봐. 하지만 엄마는 너를 믿어. 네가 학교에서 어떤 태도로 지내는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냥 네가 하던 대로 학교 생활하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 주눅이 들 필요도 없고. 다만 친구 관계도 중요하니까 혼자여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보다 잘 지내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을 해봐."


말을 해놓고도 잘 이야기한 것인지 판단이 안됐지만 이런 일로 또 너무 오래 대화하는 것도 도움은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걸로 끝. 그런데 오늘 아침 등굣길에 다시 마음이 불편해진 것은 혹 아이가 어제의 일로 학교 가는 발걸음이 전과 달라지지나 않았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다시 같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좋지 않으므로 나는 다른 일을 화제 삼아 아이 마음을 한번 더 다독여주기로 했다. 마침 오늘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오늘 음악 수업 있네? 좋겠다."

"응, 오늘 수업 시간에 내가 실로폰으로 '캐리비안의 해적'을 연주해주기로 했어. M이 지난 시간에 내가 그 곡을 치는 걸 보더니 이번 주에 제대로 친구들 앞에서 연주해달라고 부탁했거든. 나는 애들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할까 봐 먼저 하고 그러진 않는데 M이 얘기한 거니까 해주려고."

"우와, 좋은 친구네. 네가 음악 연주 잘하는 거 알고 있으니까 친구들한테 보여줄 기회를 주려는 거 아닐까? 역시 네가 좋은 사람이니까 옆에 좋은 친구가 있구나. 사람 관계는 절대 일방적일 수가 없거든.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면 그 사람도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지고 그런 거야." 


에둘러 말했는데 아이가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다. 아이 마음을 가볍게 해 주기 위해 다시 화제 전환이 필요해진 순간.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듣다 본 조비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 본 조비는 1900년대에 활동했지?"

"그렇지. 근데 1900년대라고 하니까 엄청 오래돼 보인다. 너한테 1900년대는 너무 옛날이지?"

"음, 그렇긴 한데 음악적으로는 안 그래. 1990년대 팝도 많이 듣거든. 근데 음악을 빼면 거의 기원전 같은 느낌이야."

"기원전이라고? 와, 1970년대생인 엄마는 완전 너무 옛날 사람이네? 맞아, 엄마는 너무 늙었어. 요새 거울을 보니까 진짜 매일매일 늙어가는 거 같아."

그 말을 듣더니 아이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훈계'를 시작했다. 

"엄마는 맨날 늙었다고 하면서 도전도 안 하고 그러는데 그러면 안돼. 엄마는 안 늙었어! 앞으로 120살까지 살 텐데 엄마는 아직 반도 안 산 거야. 애기야 애기. 배도 애기 같이 볼록 나왔고."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부모님이 늙었다고 한탄하는 게 너무도 듣기 싫었었는데, 아직 40대인 '주제'에 12살 아들 앞에서 이렇게 어리광이나 부리고 있다니, 급 반성 모드로 돌아선다.  

"진짜 그러네. 엄마가 늙었다고 말하는 거 듣기 싫구나? 미안. 그런데 배가 나왔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

아이가 피식 웃으며 하는 말, "너무 좋은 말만 해주면 안 돼."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너란 아이 정말 사랑해. 시작은 내가 아이를 위로해주려고 격려해주려고 했는데 결국은 또 내가 아이에게 힘을 얻고 끝난 오늘 아침 등굣길의 대화. 오늘도 이렇게 굿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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