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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May 26. 2021

엄마가 충고하는 전략적 방식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뭐든 하나마나

어제는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엄마표 토론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수업 며칠 전부터 어떤 주제를 고를까 한참을 고민했던 나는 이번 수업을 통해 아이에게 정말 너무나 하고 싶었던 충고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이렇게 해'라는 식의 일방적인 의사전달을 경계해왔고, 무슨 일이든-그것이 아주 작은 시도이거나 결정이라도- 반드시 아이와 상의하고 의견을 물어 결정해온 오랜 방식 때문에 좀처럼 직설적인 충고는 잘 안 먹히는 까닭이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해서 반강제적으로 한다 한들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아이 스스로 내면에서 동기부여가 되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벼르고 벼르던 충고는 한글 책을 좀 읽으라는 것. 초등학교 1학년부터 외국에 살았던 아이는 한국어를 능숙하게 하지만 어휘 사용, 글쓰기 할 때 맞춤법 등에 있어서는 현저히 부족한 게 사실이다. 게다가 오랫동안 영어로 된 책을 보는 데 익숙해져 한글책은 가뭄에 콩 나듯 읽는 게 현실. 그나마 아이의 한국어 빈틈이 걱정돼 토론 수업이며 기사 읽기며 함께 (다소 어려운) 책 읽기 등을 하고 있지만, 스스로 책을 읽으면서 얻을 수 있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책을 무척 좋아하면서도 항상 영어책만 끼고 있는 탓에 어쩌다 내가 지적이라도 하면 잠시 한글책을 보는 듯하더니 어느새 다시 영어책을 읽고 있다.

친한 친구들과도 영어로 대화하고 한글 사용은 집에서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만날 때나 사용하니, 학년은 점점 높아지는데 이러다 제 또래에 맞는 국어 어휘를 갖추지 못하고 아이 수준에 머무르는 건 아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본인 스스로 심각하게 반성하고 자각할 기회가 필요했다. 해서 내가 선택한 토론 주제는 바로 젊은 층의 외국어, 외래어 남발에 관한 것. 5월 11일 자 이데일리 기사인 "국적 불명 외국어에 '까막눈'된 사람들"을 아이들에게 제시하고 외국어 남용의 문제며 우리말에 소중함 등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토론자로 참여한 아들아이와 아이의 친구는 본인들의 외국어 남발은 잊은 채, 세대 간 소통의 어려움과 이러다 우리말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걱정 등을 근거로 들며 외국어 남발을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했다. 뿐만 아니라 공공 기관 등에서 어려운 어휘를 사용하는 것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해칠 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흥분하며 화를 내기도 했다.


재밌는 건 기사를 함께 읽고 내용을 정리하는 시간에는 스스로 한국 어휘 부족으로 인한 문제가 계속 발생했는데,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기사 중에 "영국의 경우 영세민이 난방비 지원을 하지 못해 얼어 죽은 것을 계기로 '쉬운 영어 쓰기' 운동이 일어났다"는 부분을 읽을 무렵 아이 친구가 질문했다. "그런데 영세민이 뭐예요?" 내가 답할 틈도 없이 아이가 끼어들기를 "이름이잖아! 근데 영세민 씨는 왜 영국까지 가서 난방비를 신청했어?"

헉! 자신 있게 말하는 아이를 보고 웃음이 터지는 한편 진짜 걱정이 들었다.


토론 내내 나는 '영세민'을 예로 들고 외국어 남용을 걱정하는 아이들 발언에 힘을 실어주는 척하며 진짜 하고 싶던 말 "너희들부터 고쳐야 해. 어휘가 부족해서 어쩌니. 제발 한글책 좀 읽자" 식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강하게 반복했다.


 효과가 좀 있었던 것일까. 오늘 아침 등교 전에 아이는 한글로 된 '동물농장'을 읽고 있었다. 이번엔 좀 효과가 오래가려나. 다시 잊어버릴 때쯤 되면 슬그머니 옆에 가서 속삭여야지. '영세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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