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깨달음
거실 한쪽에 선물로 받은 작은 화분이 있습니다. 우리 집 화분은 대부분 수명이 원래 짧은 것인지, 아니면 짝꿍을 잘못 만난 운명의 장난인지 그리 오래 햇볕을 보지 못하고 흙으로 돌아갔어요. 그런데 제 책상옆 작은 화분은 신기하게도 너무 잘 자라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다가 혼자서도 쑥쑥 잘 자라는 화분이 신기하여 물도 주고 자주 들여다보니 잠깐동안은 왠지 더 잘 자라는듯했습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지 그 작은 화분의 흙이 밖으로 조금씩 조금씩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화분의 흙도 바싹 마르지 않은걸 보니 내가 너무 물을 많이 주고 있구나, 싶었지요.
'그래, 원래 내 손이 덜 가던 때가 더 잘 자랐어.'
예전에 응원하던 농구팀이 있었습니다. 축구팀도 있었고요. 경기는 보고 싶은데, 고민이 되었지요.
'내가 보기만 하면 응원하는 팀이 진단 말이야.
응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경기를 봐도 되나'
화분에 관심을 두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전 무관심을 택하였고 역시나 '똥손이 분명하군.' 제 마이너스 손을 증명이라도 하듯 화분은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로 잘 자랐습니다.
그렇게 잊고 지냈는데, 최근 우리 집 제 짝꿍이 나이가 들더니 사람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온 집안의 화분을 너무 잘 돌보는 거예요. 원래도 손재주가 있던 사람인데 이젠 화분이 우리 집 천장에 닿을 지경입니다. 그러더니 그 작은 화분의 넘친 흙을 보고는 화분을 바꿔줘야겠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짝꿍도 저도 평생 식물에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라 유튜브를 검색해 봅니다. 블로그로 찾아보고요.
작은 화분의 화초를 꺼내야 하는데 왜 안 나오는 걸까. 낑낑거라다 식물에 대해 잘 아는 올케에게 영상통화도 해봅니다.
화분을 깨야하는구나.
깨서 구근을 살살 잘라 큰 화분으로 옮겨줘야 하는구나.
그리곤 다시 또 무관심해야 한다는 내용.
주방 한쪽 구석에서 짝꿍과 딸이 화분을 깨지 않고 뿌리를 꺼내보려고 내내 낑낑거립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 망치로 화분을 깨니 그안을 꽉 메우고 있던 뿌리가 드러납니다. 흙도 별로없는데 깨진 화분에서 나온 뿌리가 대단합니다. 그 좁은 곳에서 어찌 살았을까 싶고 그러니 흙이 흘려 나왔지 싶네요. 그동안 사기 화분이 안 깨진 게 신기할 정도로 꽉 들어차 있던 뿌리.
아, 네가 그래서 힘들었겠구나.
아, 그래서 네 잎이 떨어졌구나.
아, 그래서 점점 힘이 없어졌구나.
더 커지고 싶어서, 더 넓은 곳으로 가고 싶어서, 네 스스로 너무 자라 버려 그래서 힘든 것이었구나.
화분을 옮기며 문득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내가 지금 힘든 것은 내 그릇이 좁아서 일지도 몰라. 나를 담글 더 큰 그릇을 찾아야 하는데 계속 현재에 안주하고 있었구나. 그렇지만 그릇을 옮기는 건 현재의 내 그릇을 깨고 나와야 하는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 나 스스로 그 화분을 깨고 나와야 하는데, 나에겐 그만한 용기가 있을까. 더 큰 화분에서 살아남을 수는 있을까. 하지만 지금 그릇에 계속 남아있겠다는 선택을 한다 해도 어차피 오래가지 못해 남아 있는 잎들이 모두 떨어질 텐데.
선택하지 않을 용기도
선택할 결심도 없다면
곧 시들어 말라버릴지도 몰라.
이런 게 인생인가.
성장해서 힘든 것임을,
더 넓은 그릇을 찾야 한다는 그 가르침.
알면서도 두려워 실천하기 참 어려운 게 인생인가 보다.
새로 큰 화분으로 이사하고는 며칠동안 조마조마하다.
잘 버텨서 전보다 더 튼튼한 뿌리를 내려야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