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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가지

나무에 대한 한자를 깊숙이 들여다봤습니다.

by 따름

작은 씨앗이 날아와 언 땅 위에 살포시 내려앉습니다. 겨우내 잠자고 있던 땅 위에 내린 촉촉한 봄비가 땅속의 틈을 만들어 줍니다. 이제 씨앗은 자신만의 집을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몸집은 커지고, 두껍고 단단해집니다. 아래로 위로, 더 많이 더 크게 더 넓게, 세상 구경을 나설 준비를 차근차근해 나갑니다.


아래로는 단단한 뿌리가 점점 더 깊고 넓은 땅속 세상을 구경하고, 위로는 두꺼워진 줄기가 점점 더 위로 밝은 세상 구경을 나섭니다. 한 해 두 해 시간이라는 세월을 견디며 한층 더 성숙해져 갑니다.


이렇게 나무의 성장을 나타내는 한자들을 그림으로 그려보았습니다.


根(뿌리 근) : 木(나무 목) + 艮(그칠 간)

→ 나무의 멈추는 부분, 고정된 시작.

→ 사물의 근원, 근본, 기초를 뜻할 때 사용됨.

(예: 근본(根本), 근거(根據), 뿌리(根))


芽(싹 아) : 艹(풀 초) + 牙(어금니 아)

→ 땅 위로 막 돋아나는 식물의 새싹, 움트는 생명력.

→ 어금니처럼 단단히 박혀 있는 모양에서 새로 움트는 생명체나 시작되는 조짐을 비유함.

(예: 맹아(萌芽), 아생(芽生), 발아(發芽))


幹(줄기 간) : 干(방패 간) + 木(나무 목)
→ 나무의 중심 줄기, 몸통이 되는 굵은 부분.
→ '干'은 본래 방패를 뜻하며, ‘막다’, ‘주체가 되다’는 의미를 가짐. 여기에 ‘木(나무)’이 더해져 나무의 중심을 이루는 단단한 줄기를 뜻하게 됨.
→ 중심, 주체, 근간을 나타내며, 사물이나 조직의 핵심 구조를 의미함.
→ 식물의 몸통 줄기에서 확장되어, 사물의 본줄기, 조직의 중추, 주요한 인물 등을 뜻함.
(예: 간부(幹部), 간선(幹線), 주간(主幹), 줄기(幹))


枝(가지 지) : 木(나무 목) + 支(지탱할 지)
→ 나무의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부분.
→ '支'는 지탱하거나 뻗어 나간다는 뜻을 가지며, 나무의 몸통에서 갈라진 지지 구조를 형상화함.
→ 주된 줄기에서 파생된 세부적인 구조 또는 부속적인 것.
(예: 가지(枝), 지류(枝流), 분지(分枝))


條(가지 조) : 木(나무 목) + 攸(멀 유 / 갈 유)

→ 나무에서 길게 뻗어나간 줄기나 가지.

→ ‘攸’는 본래 ‘가는 곳’, ‘멀리 갈 수 있는 방향’을 뜻하는 글자로, 방향성이나 연속성을 의미함.

→ '木'과 결합해, 나무에서 길게 뻗어나가는 긴 가지나 줄기, 혹은 항목별로 나뉜 사물을 뜻함.

→ 하나하나 갈래를 이루는 형태에서 확장되어, 조항, 항목, 조목 등의 의미로도 사용됨.

(예: 조항(條項), 조문(條文), 조목(條目))


肢(팔다리 지) : 月(육달 월/몸) + 支(지탱할 지)
→ 몸에서 뻗어 나온 팔다리.
→ ‘支’는 뻗어나가 지탱하는 것을, ‘月’은 신체를 뜻하며, 신체에서 뻗은 부분이라는 의미 형성.
→ 신체의 사지(四肢), 팔과 다리처럼 중심에서 뻗어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
(예: 사지(四肢), 지체(肢體))


杖(지팡이 장) : 木(나무 목) + 丈(장인 장)

→ 길고 곧은 나무로 만든 지지 도구, 손에 쥐고 의지하는 막대기.

→ ‘丈’은 본래 길이 단위(한 장: 약 3.03m)를 나타내며, 키가 크고 곧은 모양을 뜻함.

→ 나무(木)와 함께 쓰여 ‘곧고 길게 만든 나무 막대기’, 즉 지팡이, 지지봉의 뜻이 됨.

→ 주로 노약자가 몸을 지탱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를 의미하며, 때로는 권위의 상징이나 훈육 도구로도 사용됨. (예: 지팡이(杖), 목장(木杖), 지장(持杖))


楚(회초리 초) : 木(나무 목) + 疋(발 족)
→ 나무로 만든 회초리.
→ ‘疋’는 본래 발을 뜻하지만, 이 글자에서는 채찍질, 벌주는 도구와 연결되어 쓰임.
→ 벌을 주는 데 쓰이는 나뭇가지, 또는 질서와 훈육을 상징.
(예: 회초리(楚), 초벌(楚罰))


果(열매 과) : 木(나무 목의 의미를 내포) + 田(밭 전)
→ 밭에서 자란 나무가 맺은 열매.
→ ‘田’은 밭, 경작지를 의미하며, 결실의 장소를 상징.
→ 노력의 결과나 자연스러운 결실을 의미하며, 구체적인 성과를 비유할 때도 사용.
(예: 결과(結果), 과실(果實), 과일(果物))


顆(낱알 과) : 頁(머리 혈) + 果(열매 과)

→ 머리처럼 둥글고 단단한 낱알, 하나하나 분리된 알갱이.

→ '頁'은 본래 사람의 머리를 뜻하는 글자로, 둥글고 분리된 형태를 상징하고, '果'는 열매를 의미하여 함께 쓰일 때는 ‘작고 둥글게 맺힌 알갱이 모양의 열매나 알’을 뜻함.

→ 작고 동글동글한 입자나 알맹이 하나하나를 세는 단위로도 사용되며, 낟알, 알약, 구슬 등을 나타냄.

(예: 낱알(顆粒), 약알(藥顆), 일과(一顆))



뿌리에서 자라 나온 작은 싹은 줄기가 됩니다. 줄기는 다시 가지가 되어 사방으로 뻗어 나아갑니다. 가지는 다시 더 작은 곁가지가 되고 그 곁가지 중 더 얇은 것은 회초리가 됩니다. 그리고 그 끝에 열리는 열매들. 열매의 씨앗은 또다시 땅으로 돌아가 자신만의 뿌리는 내리고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합니다.


씨앗 -> 뿌리 -> 줄기 -> 가지 -> 곁가지 -> 팔다리
-> 지팡이 - > 회초리 -> 열매 - > 작은열매


나무와 관련된 한자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인생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주목한 부분은 하나의 씨앗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성장은 쭉 한 방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엔 하나였지만 가지는 사방으로 뻗어 나아갑니다. 햇볕이 더 많이 드는 방향으로 자라기도 할 테지만 그렇다고 반대편에 가지가 전혀 없지도 않습니다. 또한 열매는 여러 가지 끝에 주렁주렁 열립니다. 이를 한 사람의 생각과 관심사와 연관 지어 비교해 봅니다.


얼마 전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교육부에서 제작한 영상을 하나 보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선생님이 꿈이었던 소녀가 어느덧 자라 선생님으로 부임한 첫해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날 선생님의 엄마와 그 선생님의 선생님, 그리고 그녀의 현재 제자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선생님이라는 꿈을 이룬 그녀를 축하해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릴 적부터 바라는 한 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일찍부터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알고 그 방향에 맞춰 자라는 사람은 어찌 보면 행운아일지 모릅니다. 일찍부터 자신의 나아가고자 하는 길을 찾아내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꿈이 없는 사람이 실망할 일은 아닙니다. 아직 찾지 못한것 뿐이니까요.

한 곳에서 시작하였지만 나에겐 어쩌면 너무 많은 가지가 자라고 있어 어느 가지의 꿈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재능이 많은 사람이 그렇더군요. 이 일도 맞는 것 같고 저 일도 잘하고. 재능이 많은 사람은 싫증도 많이 내어 직업을 자주 바꾸기도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모두 다 자기 안에서, 자기 속에서 원하는 무수히 많은 가지가 세상을 향해 뻗어나가 위한 과정 속에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대나무처럼 쭉쭉 위로 길게 자라는 나무도 훌륭한 나무이지만, 위의 그림에서 처럼 여러 가지를 골고루 다 가진 나무도 있다는 것을요. 굵은 가지가 기둥에서 뻗어 나와 그 몸통의 균형을 맞추어 가듯 가지가 많은 것은 많은 대로, 가지가 적은 나무는 적은 대로. 그 자체로 훌륭한 나무이니까요.



아직 자신의 나아갈 방향이 명확지 않더라도 너무 자책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나이가 들어서 다른 가지의 내가 보이거든, 그리고 그쪽으로 마음이 더 끌리더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그때라도 마음이 끌리는 가지에 힘을 실어보세요. 그리고 그 가지의 끝에 열리는 작은 열매의 단맛을 맛보길 바랍니다. 열매는 한 가지에서만 열리지 않습니다. 어느 가지 끝에나 열릴 겁니다. 팔다리처럼 회초리처럼 그 안으로 깊숙이 파 들어가기만 한다면요. 즉, 사람에 따라서는 여러 나뭇가지를 가진 사람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요즘 중고등학교에선 진로교육이라는 프로그램이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진로에 대한 깊은 관심과 탐구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설계해 보자라는 취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의 진로나 적성을 찾지 못했다며, '전 잘하는 게 없어요'라고 속상해하는 친구도 보았습니다. 이제 고작 열 몇 살의 아이가 자신의 가지가 어디로 뻗어 자랄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다 자란 어른들도 잘 모르는 일인 걸요. 고작 십 대의 나이로 자신의 가슴과 마음이 하는 소리에 얼마나 귀 기울여 들어봤을까요. 사실 너무 일이 많아 바쁘면 어른들도 내 안의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바쁘잖아요. 그러니 마음의 소리를 들을 여유를 가질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 탓이 아닌 것이지요. 국영수 책으로만 세상을 경험하고 배우니 앎의 한계가 적어 선택의 폭도 좁습니다. 아이들의 줄기가 자라고 가지가 더 자라서 더 많은 햇볕을 받고 더 자라야 합니다. 직접 바람도 맞고 눈이 쌓여 부러져도 보고 말입니다. 그렇게 직접 부딪치며 더 위로 옆으로 자라 넓은 세상을 구경하고 자신만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가지를 쭉쭉 뻗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열매가 열릴 가지가 어느 것인지 더 깊이 뻗어봐야 합니다.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늙은 말의 지혜라는 뜻으로 경험을 두루 쌓은 사람의 지혜를 나타냅니다. 저는 이 말을 약간 변형하여 지기지지(知己之智)라고 바꿔 부르고 싶습니다. 자신의 마음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살아보니 알겠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그 유명한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격언이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잘 듣고 자신만의 가지를 뻗어나가 열매를 맺어 보길 응원합니다. 그리고 기대 수명이 늘어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어른들도 남아 있는 두 번째 인생을 맞아하여 보다 더 주의 깊게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무의 성장을 한자로 지켜보며 떠오른 또 다른 이야기가 있어요.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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