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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태형 Aug 25. 2022

인수인계 목록엔 화분 세 개도 포함되어 있었다.

작아서 큰 세게 (4)

  출근 이튿날, 전임 사서에게 인수인계를 받았다.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쏟아졌다. 전공이 이쪽이긴 하지만, 정보와 경험이 전혀 없던 나는 인수인계 받는 날부터 한동안 외계어를 공부하는 기분이었다. 특히 분류를 배운 게 20여 년 전이어서, 책 등록 설명을 들을 땐 수학공식을 보는 것만 같았다. 

  한참 동안 인수인계를 해준 전임 사서가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들었다. 이제 정말 떠날 때라는 몸놀림이었다. 어쩐지 애잔했다. 그러다 무엇인가 중요한 걸 빠뜨렸다는 듯이 “아!”하고 작게 놀란 소리를 냈다.


“이렇게 모니터에 제가 포스트잇을 붙여놨거든요. 자꾸 까먹기도 하고, 중요한 거기도 해서.”


  커다란 모니터 오른쪽 상단 위쪽에 민트빛 작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검정색 볼펜으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화분에 물주기’


  그렇게 내 인수인계 목록엔 화분 세 개에 심어진 식물들의 생명 유지도 포함되었다. 모니터 건너 창가에 놓인 세 화분엔 다육이, 선인장, 미니 장미가 각각 심겨져 있었다. 전임 사서의 화분 인수인계 설명은 이랬다. 

  미니 장미(당시엔 겨울이어서 아직 장미가 피지 않았다)는 일주일에 한 번씩 흠뻑 물을 주면 곧 예쁜 장미를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다육이는 잎을 살짝 만져보고 통통한 느낌이 아니면 물을 주면 된다고 했다. 자주 만져보고 자주 봐야 알 수 있는 ‘감’에 의존해야 하는 설명이었다. 미니 선인장도 육안으로 봤을 때 좀 말라보이거나 흙이 너무 바짝 말라 있으면 물을 주라고 했다. 무심히 있다가 까먹을 만하면 한 번씩 주라는 것 같았다.

이제 정말 인수인계가 끝났다. 전임 사서가 떠나고 화분이 온전히 나에게로 왔을 때 난 좀 비장한 마음이 되었다. 지금껏 식물을 제대로 길러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다육이는 하나가 아니었다.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는데 아마 뿌리가 각각 달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육 화분흙에 꽂힌 작고 흰 팻말에 작은 글씨로 ‘유트, 미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다육에 대해 문외한인 나는 혹시 이게 다육이 학명이 아닐까 찾아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냥 전전 주인이 애정을 가지고 직접 지어준 이름이라 여기고 싶어서였다. 

  세 화분은 도서관에 처음부터 있었던 아이들이 아니었다. 모두 각기 다른 사연을 품고 이곳으로 온 것들이었는데 미니장미와 선인장은 기억나지 않고, 다육이의 사연만 기억한다. 유트와 미르는 천안에 있는 어느 직원이 키우다가 임신을 하고 육아휴직을 하면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니 그 세월이 짧지 않고 사연이 없지 않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며 또 위로를 주며 곁에 있었을 이 사랑스런 작은 생명들은, 내게도 초록의 생명 빛을 알게 모르게 스며들게 해 주었다. 생명을 죽지 않도록 돌보는 일은 서로에게 초록을 선물하는 일이다.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미치니 당연하다. 도서관에 있는 동안 이 아이들은 무탈하게 내 곁에 있어 줬다. 시들거나 죽지 않아서 나도 시들거나 죽지 않았다. 

  나에게 온 식물들은 사시사철 저마다 다른 초록빛을 뽐내며 작지만 강한 생명을 느끼게 해 줬다, 봄이 되자 정말 아이보리 색 미니 장미가 나에게 찾아와 주었다. 활짝 핀 장미 덕분에 지인들에게 장미 사진을 보내며 인사를 건네게 해 준 고마운 시간을 허락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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