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서 큰 세계 (5)
도서관의 잠을 깨우는 사람은 청소를 해주시는 어르신들이었다.
총 여덟 명의 어르신들이 근무를 하셨는데 더울 때나 추울 때나 걱정이 없었던 게 어르신들이 먼저 오셔서 추울 때는 따듯하게, 더울 때는 시원하게 도서관 온도를 늘 맞춰 주신 덕이었다. 그뿐이랴. 아이들이 오는 곳이라며 도서관 곳곳을 말 그대로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주셨다.
그리고 가끔 수줍게 들고 오시는 마법의 검정 비닐봉지가 있다. 어떨 땐 책상 위에 무심히 놓고 가시고, 어떨 땐 직접 건네주셨다. 어떨 땐 청소를 마친 뒤 소풍 오신 것처럼 둘러앉아 마법의 검정 봉지를 푸셨다.
그 봉지(아, 그냥 ‘봉다리’라고 부르고 싶다)에선 곶감이, 사과가, 빈대떡이, 지난 명절에 남아서 냉동실에 있다가 프라이팬에 기름을 잔뜩 묻혀 소생시킨 고소한 인절미 누르미가 나온다. 꼭 알라딘의 램프 같다. 어르신들만의 노하우로 완성된 핸드메이드 먹거리는 그 어느 것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맛을 냈다. 때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딸기청 같은, 개성이 묻어나는 음식이 나올 때도 있고, 손수 깎고 햇볕을 담뿍 담아온, 흔하지만 안 먹고 때를 지나면 섭섭한 과일 말랭이들이 나올 때도 있었다. 그래도 역시 자양강장제를 빼놓을 수 없다. 도서관에 행사가 있거나, 야유회라도 다녀오셨을 땐 어김없이 박카스나 쌍화탕을 사오셨다.
박카스와 검정 봉지를 내미는 어르신들 얼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미소는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바로 그것이었다. ‘정이 많다’로는 표현하기 힘든 천진난만한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피고용인일지언정 세월을 견뎌온 어른으로써 이 정도는 한다는, 베풂의 기개가 묻어나는 것이다. 언제나 무슨 일이든, 이토록 사소해 보이는 것으로부터 삶의 진실이 드러난다.
우리 직원들은 검정 봉지를 매개로 어르신들과 더욱 돈독해졌다. 그리고 어르신들도 아이처럼 서로에게 삐치고 투닥거리다가도 누군가 검정 봉지를 들고 오면 화해의 신호라는 걸 알아챘다. 굳이 미안하다 말하지 않아도 흔들거리는 검정 봉지가 보이면 마음이 벌써부터 풀리셨으리라. 인생의 선배님들이 건네주시는 갖가지 세월의 맛들은 도서관에서 생활하는 동안 나를 이곳저곳 살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