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서 큰 세계 (8)
“얘들아~! 여기 도서관이에요. 놀이터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하니?”
처음부터 이런 말을 목에 핏대 세워가며 한 건 아니었다.
“와이파이 비번 설정했어요. 당연히 비번은 비밀이야. 앞으로 게임 못 해! 게임하면서 욕은 더 더욱 안 돼!”
역시 처음부터 아이들에게‘만’ 와이파이를 통제한 건 아니었다.
“여기에 쓰레기를 버리면 어떡해~! 규칙 써 놓은 거 안 보여요?! 다 같이 이용하는 곳이니,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읍!!!”
이 또한 처음부터 뒷목 잡아가며 규칙을 운운한 것은 아니었다.
“쉿!”, “쉿, 제발!”, “쉿, 하자.”
“쉬~~~~~~~~~잇!”
‘쉿’이란 단어가 다양하게 변주되는 과정을 스스로 체험하리란 것도, 사서 생활 중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되리란 것도 예상한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아이들 입장에선, 나와 안면을 트고 경계심이 어느 정도 허물어졌으며 새로 온 ‘사서 쌤’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이 되었다 생각한 시점부터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입장에선, 아이들에게 쓰는 존댓말과 반말의 비중이 점점 균형을 잃기 시작한 시점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아주 오래된 초등학교 뒤편에 있는 어린이도서관은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학원이나 집에 가기 전, 학교 운동장에서 놀기 지겹거나, 덥거나, 춥거나, 비가 오거나, 목이 마르거나, 와이파이를 이용하고 싶거나, 프로그램실에 한가롭게 누워 있고 싶거나, 방석 던지는 놀이를 하고 싶을 때 찾는 공간이었다. 이 시간대는 대체로 정해져 있다.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 수요일은 오후 1시부터 시작된다. 물론 이 틈새 시간에 책을 읽으러 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이 꿀 같은 시간에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본인만의 시간(그러니까 온전히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시간)을 확보하고자 아주 많이 애를 썼다.
예를 들면, 아이들은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장소를 골라 옹기종기 모여 앉아 게임을 한다. 그러다 흥분하여 목소리가 높아지고, 또 그러다 더 흥분하면 욕설이 오간다. 그러면 간혹 오는 성인 이용자들로부터 민원이 들어온다. 이런 일도 있다. 한참 몸을 쓰고 싶어 하는 초등 고학년, 특히 남자아이들이 비어 있는 프로그램실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무엇을 할지 몰라 방석을 들고 돌리다가 패대기도 쳤다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결국 방석 싸움까지 한다. 그러면 방석이 터지는 것은 물론, 프로그램실에 놓여 있던 좌식 책상에 걸려 넘어지고 다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도서관에서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몰래 숨어서 먹다 들키거나, 도서관 앞 데크 파라솔에서 간식을 먹은 뒤 쓰레기를 그대로 두고 가는 아이들도 있다. 2시에서 4시 사이,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나면 말 그대로 ‘넋이라도 있고 없고’ 상태가 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운영위원회 중요 안건으로 아이들의 도서관 이용 규칙을 강화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달 운영위원회 안건 중 하나는 아이들의 도서관 이용에 관한 건데요….”
넋이 반은 나갔어도, 우리 도서관 관계자들이 아이들의 도서관 이용을 통제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운영위원들의 찬반 논의는 아이들의 안전과 권리에 대한 줄다리기였다. 프로그램실에 관계자가 상주할 수 없으니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처음엔 좌식 책상을 치웠고, 그러다 그곳에서 아이들끼리 몸싸움이 벌어지자 일정 시간대에 폐쇄하자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폐쇄’에 대한 논의는 아이들이 잠시 쉴 공간이 필요하다는 ‘권리’ 문제로 확장되어, 결국 운영위원들이 돌아가며 그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와이파이에 대한 논의는 좀 더 치열했다. 한 아이가 시작하면 너도 나도 모두 게임의 세계로 입성하는 강력함 때문에, 또 그로 인한 민원 때문에 지난한 논의 끝에 와이파이 비번을 설정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아이와 어른의 시선을 자주 오르내렸다. “내가 아이라면”이라는 말이 갈수록 많이 나왔고, 그래서 고민이 깊어졌다. 모두가 아이들에게 친절해야 하고 그들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현실은 정말이지 너무나 달랐다. 크고 작은 사건과 욕설과 민원이 툭툭 튀어나올 때마다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는 너무도 쉽게 짜증으로 변질되거나, ‘안전과 이용규칙, 공공의 공간’이라는 탈을 쓰고 잔소리와 통제로 변모했다.
아이들의 도서관 이용에 대한 논의는 무게중심을 어디에 실을 건지에 대한 고민으로 얼굴을 붉힐 정도의 이야기가 오고가기도 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가치 있고 꼭 필요한 시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 논의에서의 방점은 ‘도서관 이용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주최한 ‘북스타트 담당자 직무연수’에서 이경근 이사는 이런 말을 했다. 조용한 곳을 원하면 독서실에 가야지, 도서관에 오면 안 된다고. 작은도서관은 살아서 움직이는 곳이라 시끌벅적해야 한다고. (끄덕끄덕) 공감의 고갯짓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선 여전히 목에 핏대를 세운다. 그림책 『여름의 잠수』에서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빠를 만나기 위해 홀로 버스에 몸을 실은 소이는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아무도 내가 낮에 뭘 하는지 묻지 않았다. 지금과는 다른 시절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조금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했다”라고. 그렇다. 도서관은 시끌벅적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이고, 그곳이 어린이도서관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김지은 평론가도 그의 저서 『거짓말하는 어른』에서 말했듯 아이들은 소이처럼 “어른이 없는 사이에 조금씩 자란”다.
이런 의미에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건강하고 즐겁게 도서관을 이용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통제와 관리 대신 “게임 말고 더 재미있는 놀이를 하자고 하면 어떨까?”, 규칙만 강조하지 말고 ”도서관 이용을 위한 견학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떨까?” 등, ‘~하시오.’에서 ‘~어떨까?’로의 변화는 실로 놀라운 고민의 결과다. 비록 그 과정이 좌충우돌이고 불끈불끈 낯선 감정이 치고 올라올 때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니 ‘아이들의 시간과 공간’을 고민할수록 어른도 함께 성장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 시간만큼 어른도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