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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태형 Sep 24. 2022

그들의 개구멍

작아서 큰 세계 (9)

  더운 여름날이었다. 출장을 다녀오는 길, 시원한 도서관으로 빨리 들어가고 싶어서 총총총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때 왼쪽 200미터쯤 옆 시야에 학교 뒷문 담을 넘는 몇 명의 사람들이 포착됐다. 휙! 나는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학교 담을 넘는 이들은 늘 나와 도서관에서 투닥거리고 실랑이를 벌이며 반성문도 벌써 몇 장씩이나 쓴 남자 아이들 무리였다. (사실, 반성문이라기보단 편지에 가까웠다. 이용 규칙을 심하게 어길 때마다 사서 쌤에게 편지 쓰기 벌칙이 있었다.) ‘멀쩡한 정문을 놔두고 왜 뒷문 담을 넘고 있는 건지! 혹시 땡땡이? 땡땡이치는 게 확실해!’

  오지랖이 발동했다. 난 발길을 돌려 총초총초총초총총 더 빠른 걸음으로 아이들을 향해 뛰다시피 걸었다. 아이들은 내 표정 같은 건 못 본 건지, 걸음걸이에서 감정을 포착하지 못한 건지, 해맑게 웃으며 담 위에서 두 손을 쭉 뻗어 내게 손을 흔들었다, 아주 힘차게!


  “쌤! 어디 가세요?”

  “아, 되게 반갑다. 오늘 도서관 안 갔어요?”

  나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너네 위험하게 왜 담을 넘어?! 문이 있는데 왜 굳이! 혹시 땡땡이치는 거 아냐?”

  그러자 아이들은 어이없어 하며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

  “우하하하하하.”

  “쌤! 땡땡이라니요. 수요일이잖아요.” 

  “수요일은 일찍 끝나는 날입니다요. 헤헤.”

  “그리고 요새 땡땡이 못 쳐요!”

  “쌤은 땡땡이 많이 쳐 보셨구나?”

  나는 얼른 내려오라며 손을 휘저었다.

  “아, 그럼 왜 몰래 담을 넘는 거야?”

  하나 둘 담을 타고 내려온 아이들은 고민도 없이 말을 쏟아냈다.

  “몰래 아니거든요.”

  “그냥요.”

  “재미로요.”

  “담이 있으니까 넘어보는 거죠.”

  “운동이에요, 운동.”

  “짜릿해서요.”

  “여기, 위에 공기가 달라요.”

  그렇게 말하더니 신발주머니를 돌리며 반대편으로 우르르 사라졌다. 숨 가쁘게 뛰어온 나는 무안해졌다. 아이들이 떠난 학교 뒷문을 멍하니 보면서 땀을 닦는데 문득 여고 시절이 떠올랐다.


  그땐 아침에 등교하면 아파서 병원에 가지 않는 한, 하교 전까지 학교 밖을 나갈 수 없었다. 정문은 경비 아저씨가 지키고 있었고 육중한 뒷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누구인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빛나는 아이디어로, 집단의 암묵적 합의로, 뒷문 아래에 조금씩 개구멍을 파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일탈이 시작되었다. 어느 정도 깊이의 개구멍이 파지자 우리는 그 개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납작 엎드리는 것도, 바짝 눕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온몸이 흙 범벅이 되어도 기어이 그 개구멍을 통과해 바깥바람을 쐬고 왔다. 그 뒷문 하나로 학교 밖 공기는 천지차이였다. 바람을 쐰다는 건, 그러니까 이어달리기 시합에 나간 듯 바깥에서 파는 갖가지 주전부리를 최대한 빨리 주문해서 먹고 들어와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아이들과 바턴터치를 하는 일이었다. 개구멍의 일탈은 점심시간에 반짝 이뤄졌기 때문에 말 그대로 1분 1초가 아쉬웠다. 

  우리의 웃기고도 진지한 개구멍 탈출은 지나가는 지역 주민들에게 매번 포착됐다. 

  “이게 뭐하는겨? 옷 찢어지겄어. 그렇게 무릎을 꿇지 말고 유격훈련 받을 때처럼 포복자세로 해야지! 그려, 그렇게!”

  “아이고, 얘들아. 줄줄이 어디를 가려고 이렇게 기어 나오는 거야들?”

  “헛 둘, 헛 둘, 잘한다!”

  “얼른 먹고 들어들 가라~.”

  아주 간혹 고함을 치며 빨리 다시 기어들어가라고 소리치는 어른이 있긴 했어도, 대개는 우리의 개구멍 탈출을 모르는 척 해 줬다. (아마 선생님들도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때 우리의 개구멍은 무엇이었을까? 비상구, 비밀통로, 불량 간식 맛, 숨통, 추억 만들기……, 같은 것이지 않았을까?


  아주 옛날 진도에서는 진짜 개를 위한 구멍을 집에 만들어 놨다고 한다. 호랑이들이 민가로 내려와 사람이고 가축들이고 모두 고생할 적, 호랑이가 마당에 들어오면 진도의 개들은 이 개구멍을 통해 부엌으로 도망친 뒤 짖어서 호랑이가 왔음을 알렸다고 한다. 만약 이 개구멍이 없었으면 당시 진도의 개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많은 개들이 호랑이의 배 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더운 여름 날, 학교 뒷문에서 마주친 아이들에게 ‘담’ 역시 개구멍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권력으로 작동하는 이 세상에서 이방인에 가깝다. 이런 낯선 세상에 크고 작은 호랑이들이 그들 앞에 포진해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개구멍이 필요하다. 그 개구멍은 비상구의 역할을 해 줄 것이다. 비상구는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지만 꼭 있어야 하는 통로이다. 아이들의 삶에도 비상구 같은 개구멍이 군데군데 있었으면 좋겠다. 진심이다. 

  아이들과 날마다 실랑이를 벌여도, 아이들은 안다. 피부로 느낀다. 이 잔소리가 애정이 담긴 것인지 아닌지. 이 눈빛이 비난인지 걱정인지. 그래서 나는 개구멍이 필요하단 말을 하다가, 문득 아주 고전적이며 진부한 질문으로 마음의 상태를 다시 점검할 수밖에 없다. 아니, 점검해야만 한다. 


  우리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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