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헬조선’에 사는가?
전 세계 주요 도시들과 비교할 때, 서울의 주거 환경과 삶의 조건은 과연 어느 정도로 힘든 수준일까? 흔히 한국 청년들은 자조적으로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부르곤 한다. 그만큼 삶이 팍팍하다는 뜻인데, 단순한 푸념을 넘어 국제 비교 지표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인식에 일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주택 가격 부담에서 인구 밀도, 교통 혼잡과 통근 시간, 사회이동성, 주거 만족도와 삶의 질, 정부의 정책 개입 수준까지, 여러 분야의 최신 통계는 서울 및 한국의 상황이 선진국 대도시들에 비해 얼마나 유독 가혹한지 보여준다.
2장에서는 일본 도쿄,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독일 베를린, 싱가포르 등과 서울을 비교하고, 그 구조적 원인을 문명사적 관점에서 해석해 본다. 결론부터 말하면, 서울은 인구와 자원이 좁은 땅에 압축적으로 몰린 “압력솥”과 같으며, 역사적으로 탈출구가 부재했던 한국 사회의 특성이 여러 지표에 드러난다. 이는 단순한 수치적인 열세를 넘어 “한국이 특히 절망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근본적인 배경이 된다.
먼저 주택 가격 부담부터 살펴보자. PIR(Price to Income Ratio,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은 한 가구의 연소득 대비 주택 가격의 배수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내 집 마련이 어려움을 의미한다. 2024년 중반 기준 서울의 PIR은 무려 25.1배에 달한다. 이는 서울의 중위소득 가구가 중간 가격의 집을 사는 데 25년 치 소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수치는 세계적으로 주거비가 비싸기로 악명 높은 뉴욕이나 런던보다도 높다. 예컨대 파리의 PIR은 약 17.8배, 로마 15.1배, 런던 14.8배, 뉴욕 14.0배 수준이다. 다시 말해 서울 사람은 파리나 런던 시민보다 집 사는데 10년을 더 일해야 한다는 의미와도 같다.
더 충격적인 비교는 국가 단위 평균으로 봐도 드러난다. 2023년 기준 주요 선진국들의 주택가격 부담을 보면, 일본 11배, 독일 9.4배, 영국 9.1배 수준으로 한국(서울)의 절반 이하에 불과했다. 미국은 불과 3.3배로, 넓은 땅을 배경으로 인해 주택 구입 부담이 매우 낮았다. 다시 말해 서울/한국의 주거비 부담은 다른 선진국의 2배 안팎, 일부 국가에 비해 몇 배나 높은 것이다. 이러한 격차는 단순히 “서울 물가가 비싸서” 정도로 설명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서울보다 PIR이 높은 곳은 내전이나 특수 상황을 겪는 시리아, 에티오피아 등 몇 곳에 불과했고, 아시아에서도 홍콩(약 30배) 정도를 제외하면 찾기 어렵다.
왜 서울의 집값은 유독 소득 대비 비싸게 형성되어 있는 것일까? 이는 좁은 국토에 인구와 경제력이 과도하게 집중된 구조와 연관이 깊다. 뒤에서 살피겠지만, 수도권에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몰려 있고 기회도 집중된 탓에 수요가 폭발적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한국은 광대한 신대륙을 개척하거나 해외 식민지로 인구를 분산시킨 경험이 없었다. 그 결과 한정된 땅에서 내부 경쟁만 심화되었고, 토지와 주택의 희소성이 극대화되어 가격이 치솟았다. 서구 사회는 19~20세기 미국의 서부 개척이나 아시아에서 아프리카까지 식민지 이주 등을 통해 인구 압력을 상당 부분 외부로 흘려보냈지만, 한국은 그런 “탈출구”가 없었던 압력솥 사회였던 것이다. 서울의 살인적인 PIR은 그런 문명사적 배경의 산물이기도 하다.
주택난의 또 다른 배경은 인구밀도다. 서울이 얼마나 빽빽하게 사람으로 가득 찬 도시인지는 수치를 보면 바로 실감된다. 서울특별시의 인구밀도는 ㎢당 16,000명을 훌쩍 넘는다. 이는 파리(약 21,000명/㎢) 다음으로 세계 주요 도시 중 두 번째로 높은 값이며, 도쿄 도심이나 뉴욕, 런던 등 다른 대도시를 모두 앞선다. 뉴욕시(5개 구)의 밀도는 약 10,400명/㎢ 수준이고, 런던(그레이터 런던)은 5,200명/㎢ 정도에 불과하다. 베를린은 넓은 면적에 370만 명이 살아 밀도가 4,000명대에 그친다. 이와 같은 사실을 비교해 볼 때 서울은 런던의 3배, 베를린의 4배 이상, 뉴욕보다도 1.5배 넘게 빽빽한 것이다. 싱가포르 역시 도시국가로 밀도가 높지만 약 7~8천 명/㎢ 수준으로, 서울의 절반 수준에 가깝다. 다시 말해, 서울은 부유한 국가의 수도들 중 가장 혼잡한 도시 공간을 보여준다.
인구밀도를 수도권 광역 차원에서 보아도 상황은 비슷하다. 수도 서울을 포함한 서울 대도시권(수도권) 인구는 약 2,384만 명으로, 세계에서 도쿄 대도시권 다음으로 많다. 그런데 서울 수도권의 면적은 11,800㎢ 남짓에 불과하여, 수도권 평균 인구밀도가 ㎢당 약 2,000명에 달한다. 이는 도쿄 광역권(약 2,627명/㎢)과 함께 전 세계 메가시티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다. 참고로 뉴욕 대도시권은 면적이 훨씬 넓어 밀도가 약 1,100명/㎢ 정도이고, 런던 대도시권(광역도시권)도 700~1,000명/㎢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정리하면 서울 및 수도권은 지구상에서 가장 사람이 꽉 들어찬 거대도시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구 밀집이 가져오는 결과는 무엇일까? 우선 주택과 토지의 극심한 경쟁이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몰리니 집값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앞서 본 서울의 높은 PIR은 이 초고밀도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또 생활환경의 스트레스도 크다. 도시가 빽빽하면 쾌적한 주거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워지고, 녹지나 공원이 부족해지는 등 삶의 질에 부담을 준다. 실제로 서울 시민들이 “콩나물시루 같은 아파트”에서 살아간다는 자조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문명사적으로 보면, 서울의 밀집은 개발 시대의 산업화와 농촌 인구 유입이 압축적으로 진행된 결과이기도 하다. 예컨대 영국 런던이나 프랑스 파리는 산업혁명 이후 수백 년에 걸쳐 인구가 불어났고, 그 사이에 교외 개발이나 신도시 건설로 완만한 분산이 이뤄졌다. 반면 서울은 불과 수십 년 만에 전국 인구의 절반이 몰려들면서 도시 계획이나 분산 정책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채 고밀도로 치닫은 측면이 있다. 요컨대, 서울의 인구밀도는 역사적 시간 압축의 산물이며, 그 부담은 고스란히 현재를 사는 시민들의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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