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TJ가 한참 동안 메뉴판을 넘기는 이유

어쩌면 결정장애가 아니라, 완벽을 향한 분투

by 블루프린터

ISTJ를 곁에 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답답함을 느껴봤을 겁니다. 세상 신중하고, 돌다리도 부서질 때까지 두드려보고, 메뉴 하나 고르는 데도 한참이 걸리니까요. '그냥 아무거나 고르면 안 돼?' 싶지만, 이들의 머릿속에선 지금 거대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단순히 우유부단한 게 아니란 거죠. 솔직히 말하면, 이건 거의 시스템적인 오류에 가깝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이들의 머릿속에 빽빽하게 들어찬 '과거 경험 데이터베이스' 때문이에요. ISTJ는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가장 먼저 이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뒤집니다. '예전에 이럴 땐 어땠지? 어떤 선택이 가장 안전하고 결과가 좋았지?' 하고요. 검증된, 성공했던 길로만 가려는 거죠. 아, 그런데 만약 여기에 데이터가 없다면? 처음 겪는 일이라 참고할 만한 파일이 하나도 없다면? 바로 그때부터 모든 게 멈춰 섭니다. 마치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었는데 '경로를 찾을 수 없음'이라는 메시지만 бесконечно 뜨는 상황과 같달까요. 한 발짝도 떼기가 힘들어지는 겁니다.


여기에 기름을 붓는 건, 평소에는 얌전히 숨어있다가 위기의 순간에만 튀어나오는 '최악의 시나리오 생성기'입니다. 의지할 데이터가 없어서 불안해지면, 갑자기 온갖 부정적인 상상력이 폭주하기 시작해요. 이건 뭐 긍정적인 가능성을 찾아보는 수준이 아니라, 'A를 선택하면 100% 망할 거야. 왜냐하면...', 'B를 선택하면 이런 끔찍한 일이 생길지도 몰라' 같은, 정말이지 발생 가능한 모든 불행 회로를 풀가동하는 거죠.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불행을 거의 창조해 내는 수준이에요. 이러니 뭘 선택하든 지뢰밭처럼 보여서 꼼짝달싹 못 하게 되는 '분석 마비' 상태에 빠져버립니다.


상황이 이런데, 효율성을 추구하는 이성적인 '프로젝트 매니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아니죠.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합리적인 계획을 짜야 하는데, 한쪽에선 "데이터 없음!"이라고 외치고, 다른 한쪽에선 "모든 선택지에 위험 가득!"이라고 비명을 지르니 말입니다. 어떤 계획도 '효율적'이라고 결론 내릴 수가 없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인 셈입니다. 결국 시스템 전체가 다운되고 마는 거죠.


정말 정말 아이러니한 건, 이 모든 혼란의 뿌리에 '완벽한 결정'을 내리고야 말겠다는 강박이 있다는 점입니다. ISTJ는 그냥 '괜찮은 선택'이 아니라, '가장 옳고, 가장 안전하며, 가장 예측 가능한 단 하나의 완벽한 선택'을 찾아 헤맵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현실에 그런 선택지가 어디 있겠어요? 결국 있지도 않은 완벽한 답을 찾기 위해, 결정을 무기한 미루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겁니다.


그러니 ISTJ가 망설이고 있다면, 그건 게을러서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완벽한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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