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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곰 Aug 31. 2021

범인(凡人)의 가치

"우리는 재능 없는 사람에게도 예배를 해야 해."

 어쩌면 내가 논문을 쓰고 공부를 해보기로 결심한 것도 시작은 작은 다짐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어디까지 하는지 보고 싶다는 열망은, 사실 전면에 내세운-보여주기 그럴듯한 하나의 캐치프라이즈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내 결심의 원인이 어디서 왔는지 애매모호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변에서 '~는 재능이다'라는 류의 말을 자주 듣는다. 나를 향한 말이 아님에도 이상하게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자꾸만 공격받는 기분이 든다. 이 요상한 피해의식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건지 따라가 보면 그 기저에는 '나는 재능은 없지만 다만 열심히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자기 인식이 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선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어도 여전히 지나치게 슬프다. ‘나보다는 그런 사람이 연구를 더 잘할 텐데 굳이 내가?’라는, 이상한 생각이 자꾸만 머리에서 맴돌아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만다.


 물론 재능을 타고나면 좀 더 수월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재능 있는 사람과의 대화에서, 본인은 쉽게 성취하고 바라는 바를 거머쥔 것처럼 취급받아 속상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역설적이게도 그 말을 들을 때 나는 말하는 사람이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반대로 98%의 삶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 안에서 꾸준히 삶의 궤도를 집적해 나아가는 것은 재능 여하를 떠나 100%의 사람들 모두가 누구나 가능하다. 그래 봤자 재능을 따라잡을 수는 없는 거 아니냐는 반박에 나는 아니라고 감히 답하고 싶다. 우물 안의 짧은 경험이 무너지는 순간까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음을 다만 내딛을 뿐이고, 어느 날 그 걸음을 무너뜨리는 인간이 찾아와도 나는 구도자처럼 계속 내 길을 밟고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타고난 비판의식이나 날카로운 직관은 없지만 학습을 통해 논문을 쓰고 노련하게 연구하는 법을 익힐 수 있다고 믿는다. 꾸준함과 노력 또한 하나의 중요한 자산으로, 타고나진 않지만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본다.

노력이 절대적인 요인은 아니라는 반박 연구. https://www.ytn.co.kr/_ln/0104_201407271029471997

 H가 전해준 이야기가 떠오른다. 우리는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하면 뭐든 다 이룰 수 있다며 능력주의에 기반한 희망을 갖곤 하지만, 동시에 노력이 절대적인 변인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하면 된다'는 말로 사람을 갈아넣으면서까지 몰아붙여도 어떤 일은 정말 불가능하다.

 이 생각―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깨달음은 한동안 내 생각의 중심이었다. 허무주의이기도, 패배주의이기도 한 어느 사이에 서서 마구 흔들렸다. 내가 내 주변의 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감각에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그 시기를 넘겨 다시 궤도를 찾았다. 위 기사에 소개된 햄브릭 연구팀은 그래도 노력의 성과를 괄시하지 않는다. 고만고만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최고의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어쩌면 마땅한 업적이나 당위성 없이 그냥 하루하루 근근히 살아갈 힘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꾸준한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서술은 '최고가 되기'라는 말보다는 '하루하루 살아가기'라는 말에 더 어울린다.

 그래서 나는 다만 읽을 뿐이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다만 텍스트를 읽는 것'이라는 김영민의 말에 희망을 얻는다. 존재에 대한 오랜 고민 앞에서 내린 결론―결국 나는 한 명의 범인(평범한 사람)이라는 자각은 나에게 무너져도 돌아올 단단한 디딤이 되었다.

 

결국 내가 느끼는 감정은 다만 통계에 무너질 수밖에 없을 만큼 얄팍하기만 하다. 설운 감정을 뒤로한 채 나는 오늘도 조금씩 쌓아가려 한다. 성실함과 노력조차 빛을 잃은 지금의 나는 어떠한 재능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도 놓지 않고 끝까지 손아귀에 힘을 풀지 않는 자세는 분명 나의 것이다. 오랫동안 몰두하고 쉽게 질려하지 않는 나의 재능에 몸을 맡기려 한다.

 그렇게 믿어야만 지금 배우고 가르치는 내 존재가 정당화되기 때문일 것이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회피하지 말자. 98%의 삶을, 거들떠볼 필요 없는 무의미한 것으로 폄훼하지 말자. 데미안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나는 사람들이 이 여호와 신을 숭상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아, 전혀 조금도.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숭상하고 신성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해. 인위적으로 분리된 공식적인 반쪽만이 아니라 전체 세계를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는 신에 대한 예배와 더불어 악마에 대한 예배도 해야 해. 그게 옳은 것 같아. 아니면 악마를 자신 안에 품고 있어, 지극히 자연스러운 세상 일들이 일어날 때 그 앞에선 눈을 감지 않아도 되는 그런 신을 만들어 내야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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