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만의 <과학이란 무엇인가 The meaning of it all>
파인만은 ‘인간의 거대한 잠재력에 비해 우리가 지금까지 이뤄온 업적(accomplishments)은 매우 작은 편’이라는 말과 함께 강의를 시작한다. 과거에 우리는 교육과 의사소통을 통해 무지에서부터 벗어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의 잠재력이 선과 악, 양쪽으로 모두 발달할 수 있다는 것을 ‘잘못된 믿음에 의한 역사’를 통해 배웠다. 결국 과학은 선과 악에 대해 직접적으로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것을 슬기롭게 쓸 수 있을까? 파인만은 우리가 ‘모든 것의 의미(The meaning of it all)’에 대해 확실하게 알지 못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지와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은 문제를 수정하고 새롭게 발견하는 시작이다.
1. 과학과 종교
삶의 의미와 도덕적 가치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종교(가치, 믿음)의 관계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파인만은 과학과 종교 간의 갈등에 대해 ‘신앙을 가진 청년이 과학을 전공하게 되며 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되는 일화’에 빗대어 설명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까닭은 무엇인가? 수많은 무신론자 과학자들이 학교와 교실에서 이 젊은이에게 자신의 사악함(!)을 전수했기 때문도 아니고, 과학을 조금밖에 모르는 나머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착각했기 때문도 아니다. 파인만은 과학은 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부정할 수 없으며, 과학과 종교의 믿음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위 청년이 과학을 공부하며 겪는 어려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과학교육을 통해 의심의 필요성과 가치를 배운다는 것이다. 둘째, 과학과 종교 두 체계의 충돌에 따른 갈등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논의함에 있어 종교가 한 발 물러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우주의 중심이 아닌, 동물로서의 인간). 이렇듯 과학은 종교와 은 생각에 영향을 미치지만, 어떤 측면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파인만은 종교의 측면을 세 가지로 제시한다.
①종교의 형이상학적 측면(인간이란? 신은 누구? 어떤 성격?)
②종교의 도덕적 측면(무엇이 옳은 행동인가)
③종교의 감화적 기능(inspiration, 행동으로 이어지기 위한 조건)
과학은 ①형이상학적 측면과 갈등을 이루는데, 이는 ‘사실’에 대한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이 심적 태도에 영향을 미치며 과학과 갈등하게 되는데, 이는 과학이 가지는 ‘불확실성, 회의적 사고’라는 특징이 종교의 ‘확고한 믿음’을 흔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종교의 도덕적 가치가 과학의 범주 밖에 있는 이유가 있다. 첫째, 종교의 형이상학적 입장이 변해도 도덕적 관점에는 변화가 없다. 둘째, 종교 윤리를 실천하는 선한 사람들 중에는 신성(神性)을 믿지 않는 이들도 있다. 셋째, 과학적 연구가 도덕적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증거를 모두 모아도 옳고 그름에 대한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넷째, 최종적인 판단은 인간이 내려야 한다. “내가 이걸 해야 할까?”라는 질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이걸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질문은 과학이 해결할 수 있지만, “나는 어떤 상황이 빌어지길 원하고 있는가?”는 과학에서 해결 불가능한 질문이다. 종교로 대표되는 믿음(가치)은 인간에게 의지력, 안정감, 감정적 유대감,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준다. 파인만은 이러한 두 가지 입장이 양립할 수 있길 바라며 논의를 마친다.
2. 과학과 정치
파인만은 당대 미국과 소련을 비교하며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개방성, 자유 비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상 통제 국가에서는 기술 진보는 이루어지더라도 과학 진보는 어려울 것이다, 폴란드, 리센코의 후생유전학, 소련 물리학자, 나크로소프Nakhrosov와 파드고브니Padgovney의 사례를 통해 파인만은 정부는 과학적 원리, 예술, 경제, 역사, 종교, 철학 이론에 대해서만큼은 규제하고 판단하길 멈춰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정부의 역할은 인간의 가능성, 개인의 지적 모험과 발전이 가능하도록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