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곰 Sep 28. 2022

교량

칸딘스키는 점의 긍정적인 내적 의미를 교량으로 서술하고 있다

 입이 달다. 익숙하지 않은 포테토칩. 짠 맛을 먹고 남은 찌꺼기가 치아 구석구석에 속속이 박혀 떫은 압박을 낸다. 멍한 정신머리에 조금씩 멍청해지는 느낌이 든다. 불쾌한 마음.

 쉬이 읽히지 않는 칸딘스키의 책을 가슴 앞에 두고 C는 목을 좀 더 노트북 쪽으로 내민다. 무슨 글을 써야 할지 이리저리 빙빙... 수억 개의 달을 앞에 둔 나방의 자세로 글의 머리를 자꾸만 이리 휘적, 저리 휘적, 한다.


 어쩜 시를 써도 좋을지 몰라.

 손을 입 앞으로 가져다댄다.

 역하고 텁텁한 냄새가 손주름 구석구석 단디 찬다.

 뇌주름에까지 그 구역질 나는 냄새가 가득 들어차는 듯 하다.


 C는 얼른 손을 떼고 화장실로 가기로 한다. 다섯 시간 째 연락이 되지 않는 애인에게 조금 울적한 기분을 느끼며 칫솔을 입에 문다. 먼저 연락해줬음 좋겠는데. 애인은 점심도, 저녁도 사진으로 찍어 남기는 사람이 아니었는가. 결국 C는 한 손으로 폰을 두드린다.


 잘

 놀

 고 있

 어


 ?


 물음표 아래로 칸딘스키의 철학 중 하나가 폰 화면에 담겼다. '내적으로 가장 간결한 형태'이다. C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으로 대충 화면을 훑어 없앤다.


#45$^&*


 이상한 상형문자가 제멋대로 입력되더니 그대로 애인에게 전송된다. 씨이발... C는 차마 소리내어 욕을 하진 못하고 서둘러 세면대에 고개를 숙인다. 그는 그다지 용감하진 않다.


 ... 한 작품의 내용은 콤포지션에서, 다시 말해 이 경우 필수적인 긴장들이 내적으로 조직되는 총체 속에서 표현되고 있다. ...


 그와 나의 관계는 어떠한가. 문득 문장으로 향하는 눈길을 거두고 C는 다시 노트북을 바라본다. 당신과 나의 관계는 그 날 술을 잔뜩 마시고 난 다음 날부터 긴장이 수그러든 상태이지. 의무만 남은 절박한 관계에 목이 매여 있지는 않았는가. 적어도 그는 안정되고 단단해 보인다. 나를 단단하게 봐주었을 B도 이런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그렇다면 B는 많이 불안하고 손아귀로 무언가를 움켜쥘 만큼 절박한 상태였을 것이다. 절박한 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타인이 기도하는 마음을 이해했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는 의무적인 관계에 떨어져서야 비로소 관계 이전의 긴장이 넘치는 사이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끊임없이 두렵고 더할 나위 없이 당신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 나는 이게 두렵고 당연하게 느껴진다. 당신이 그렇지 않아하는 만큼. 아니, 그렇지 않아하는 건 내 짐작이자 내 희망이다. 당신마저 불안하게 느낀다면 나는 안정보다는 서서히 애정이 떨어져가는 것을 앞으로 바람처럼 보고 있을 것이다. 겨우 바람이 부는 와중에 공기로 흘러버리는 가볍디 가벼운 모래들처럼 우리 애정은 흩어질 것이다.

 C와 애인의 애정은 아스팔트 위, 바람이 분다면 날라 없어질 모래만큼 쌓여있다. 시리도록 부신 흰 옷을 입고 가무를 추는 어느 승려의 소맷자락이 일으키는, 그래 그 나비와 같은 손짓에도 모래는 날린다.

 이번에 C는 옛 애인을 떠올린다. 정확히는 울고 불고 헤어짐을 나눈, 그러나 며칠 전 다시 마음을 준 그. 그를 떠올리면 이제 모래는 아스팔트가 아닌 사막에 쌓여 있다.

작가의 이전글 지금이어야만 쓸 수 있는 어떤 글에 대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