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림의 리듬을 깬 신호등, 노년기를 밝히는 초록불
‘낯선 곳’으로의 이탈, 20km 완주의 몸부림
인생의 후반기를 준비하는 '갱춘기'의 혼란과 외로움 속에서, 마라톤은 나에게 삶의 주로(走路)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든든한 동반자다. 2025년 11월 인천마라톤대회 풀코스 완주라는 목표를 위해, 이번 주말은 총 40km를 달리는 숙제를 안고 비장한 마음과 함께 집을 나섰다. 오늘은 그중 20km. 늘 익숙한 달빛공원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택한 것은, 정해진 패턴과 시각화된 풍경이 주는 안정감 대신, 새로움이 주는 생각과 감정의 변화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동일한 트랙을 속된 표현으로 뺑뺑이 도는 지루함으로는 내 안의 갱춘기를 달랠 수 없었다. 낯선 도시, 낯선 풍경 속에서 다리 근육의 고통과 변화하는 환경에 몰입하는 것만이, 바쁜 업무 속에서도 대회를 준비하는 나의 철학이었기 때문이다.
‘속도’와 ‘순위’에 대한 욕심을 버린 11년의 동행
벌써 11년을 달리면서, 나는 속도에 대한 미련과 순위에 대한 욕심을 모두 내려놓았다. 있는 그대로의 실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의도적인 연습 덕분에 다행히 한 번도 부상을 입지 않았다. 부상은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갱춘기를 견디며 노년을 준비하는 지금의 철학과 닮아 있듯이, 나는 부상당하지 않을 몸을 만들기 위해 늘 새로운 코스를 천천히, 풍경을 감상하며 길게 달린다. 오늘은 달빛공원을 거쳐 센트럴파크, 해돋이공원을 잇는 코스. 언덕과 평지가 적절히 안배되어 있고 화장실이라는 달림 이의 숙적(봉변)을 피할 수 있는 실용적인 이점이 있는 코스였다. 시작은 가벼운 몸으로 출발했고, 계획대로 6분 30초 페이스를 유지하며 태양을 등지고 달빛공원을 달리기 시작했다.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듯 오늘 달림도 그러했다.
달림 ‘리듬’을 깨뜨리는 ‘신호등’의 등장
하지만 달빛공원을 벗어나자마자 계획은 틀어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신호등, 커넬워크 앞에서 빨간불에 멈춰 섰다. 달릴 때 호흡과 다리, 팔이 리듬을 타며 지속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겨우 2km 지점에서 멈춘 것이다. 몸이 달림에 맞는 리듬을 찾으려던 순간이었다. 움직임은 멈췄지만 호흡은 멈추지 않아 가빠지기 시작했다. 리듬이 깨지는 순간, 제자리 뛰기로 이를 만회하려 했지만 이미 흐트러진 호흡은 정상을 되찾지 못했다. 겨우 다시 뛰기 시작했으나, 3분을 못 가 다시 빨간불. 그 순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건널까 하는 충동마저 느꼈다. 신호등은 운전자에게 안전을 보장해 주지만, 지금 이 순간 달림이에게는 오직 리듬을 깨뜨리는 장애물일 뿐이었다.
‘신호등’ 속에서 발견한 ‘가을의 색채’
연이은 멈춤과 재시작은 생각보다 많은 체력을 소모하게 했다. 호흡과 몸의 리듬이 완전히 깨지면서, 리듬을 회복하는 데 에너지를 쏟아붓는 동안 나는 계획했던 페이스를 완전히 잃었다. 가까스로 센트럴파크 공원에 들어섰을 때, 나는 깨진 리듬에 대한 불만 대신 완연한 가을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빼앗겼다. 노랑, 빨강, 갈색, 연두, 초록 등 가을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색이 모인 모습은 마치 잭슨 폴록의 역동적인 추상화를 보는 듯 가슴을 확 트이게 했다. 낯선 곳을 달리는 매력은 바로 이런 순간에 있다. 가을의 위로 덕분에 리듬을 금방 찾을 수 있었고, 달림이들과 서로 추월하거나 때로는 추월당하며 각자의 속도대로 가을 속으로 달려갔지만, 이내 해돋이 공원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인천에서 가장 길다는 신호등 두 개를 연달아 만나며 또다시 리듬은 산산조각 났다. 결국, 과도하게 소모된 에너지 탓에 오늘은 원래 목표했던 20km를 채우지 못하고 멈춰 섰다.
공직자로서 깨달은 ‘신호등의 역설’
운전자의 입장에서 달림이의 입장으로 바뀌었을 뿐인데, 신호등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신호등은 늘 그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을 뿐인데, 나의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장애물(민원)이 되기도 하고 안전(질서)이 되기도 한다는 깨달음은 컸다. 문득, 공직자로서의 삶을 돌아보았다. 내가 신호등처럼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을 때, 누군가에게는 멈춤과 기다림을 강요하는 '민원'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질서와 안전을 책임지는 '선순환적 의미'가 되어 사회라는 도로 위에서 누군가의 안전을 보장해 주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늘 민원에만 집중하며 역할의 부정적인 측면에 매몰되어 있던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하게 되었다.
‘노년기’를 밝히는 ‘갱춘기’의 초록불
갱춘기를 보내는 나 자신에게 이 신호등은 무엇이었을까? 신호등은 기존의 생각과 감정대로 무작정 질주하려던 나를 잠시 멈추게 했다. 낯선 곳에서 만난 빨간불은 혼란스럽고 무기력한 나에게 '멈춤'을 통해 '성찰'의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그 성찰을 통해, 나의 역할이 단순히 민원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선순환적인 긍정의 힘을 가질 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오늘, 내 안의 신호등은 노년기를 준비하는 삶이라는 주로(走路)에서 기존의 습관을 벗어던지고 긍정적이고 선순환적인 나 자신을 들여다보라고 '초록불'을 밝혀준다.
이제 나는 리듬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멈춤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며 달려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