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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춘기와 동행하며 생각·감정 관성 탈출기 11 마지막회

쉰여덟, 갱춘기라는 이름의 용기: 남의 시선으로부터의 독립선언


그동안 ‘갱춘기와 동행하며 생각·감정 관성 탈출기’라는 주제에 관심 가져주시고 함께해 주신 모든 독자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 글을 연재 초기에는 60대에 접어든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라기보다는, 끝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이 시기를 갱년기(更年期)의 신체적 한계와 오춘기(五春期)의 심리적 혼란이 결합된, ‘갱춘기(更春期)’라 명명하는 엉뚱함으로 시작했습니다. 이 연재글의 여정은 바로 이 갱춘기가 던지는 질문에 답과 지혜를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처음, 저는 끝없는 상실감과 무력감이라는 ‘감정 관성’에 갇혀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겪는 신체의 노화와 공허함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인데, 저는 여전히 젊고 유능했던 ‘이상적인 자아상(페르소나)’을 놓지 못했습니다. 잘 해내지 못할까 봐, 혹은 남에게 부끄러움을 보일까 봐 새로운 도전을 포기하는 대신, 스스로 무력함이라는 족쇄를 채우는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한 번에 체력이 무너지며 셀 수 없이 많은 임플란트를 해야 했고, 치솟는 혈당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행위는 지혜로 이어졌습니다. 가만히 앉아 고민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요. 갱춘기를 현명하게 이겨내는 방법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멈추지 않는 작은 움직임’을 통해 기존에 유지해 왔던, 그리고 노화와 함께 시작된 감정 관성을 끊어내는 용기였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해 봤습니다.


갱춘기를 현명하게 이겨내는 지혜 세 가지


첫째, 내면의 고요함을 찾는 ‘호흡’의 훈련입니다.


함께 한 여정 중, 레이저 공기권총 사격 대회에 도전했던 경험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처음의 고득점 후 찾아온 실망스러운 결과, 그리고 온몸을 짓누르던 열등감과 부끄러움. 우리는 그 고통 속에서 ‘잘해야 한다’는 강박과 외부의 인정을 향한 욕심을 놓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흔들린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해결책은 역설적이었습니다. 바로 ‘힘 빼기’였습니다. 호흡에 집중하고, 외적인 욕심을 내려놓자 비로소 몸의 긴장이 풀리고 흔들림이 멈추는 고요함을 경험했습니다. 갱춘기는 우리 삶에 덧씌워진 수많은 책임감과 이상으로부터 힘을 빼고, 내면의 안정감을 선택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부족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그 순간, 비로소 세상의 시선이 아닌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일 용기가 생겨납니다.


둘째, 노년의 주체성을 확보하는 ‘디지털 문해력’입니다.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했던 경험은 단지 기계 사용의 어려움을 넘어, 노년기에 세상으로부터 고립될 수 있다는 근원적인 불안감을 반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디지털 문해력(스마트 가전, 비대면 시스템 등)이야말로 우리의 노년 생활을 더 주체적이고 여유롭게 만들 필수 도구임을 확인했습니다. 낯선 기술 앞에서 부끄러워하거나 피하는 대신,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버리고 어린아이처럼 ‘놀이’처럼 접근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변화를 거부하는 아날로그식 감정 관성에서 벗어나, 유연한 디지털식 사고로 전환해야 합니다.


셋째, ‘독립된 인격체’로서 가족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입니다.


황혼 이혼과 고독사에 대한 불안은 갱춘기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 중 하나였습니다. 남편의 은퇴 후 역할 상실, 혹은 자녀가 떠난 후의 공허함은 가족 구성원을 ‘내 소유’로 여겼던 오랜 관성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고통스러운 임플란트 수술을 통해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을 재발견하고, 가족을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역지사지의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이는 갱춘기의 외로움을 메우는 근본적인 지침이며, 서로를 지탱하는 가장 견고한 버팀목을 만드는 일입니다.


노년기를 위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가장 급한 일


이 연재글을 통해 하고 싶었던 가장 큰 명제는 "늘 남의 시선에 의해 끌려 다니던 나 자신으로부터의 독립"입니다.


직장을 갖고 나서부터 저는 조직의 위계와 타인의 기대에 철저히 부응하며 살아왔습니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기에 당연시하며 남의 시선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노년기 세상은, 관계와 위계보다는, 나 자신의 결정권과 행복을 최우선으로 존중할 것입니다.


노년기를 위해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가장 급한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감정의 기록 (글쓰기): 글쓰기는 부끄러움과 좌절, 그리고 불편한 감정을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였습니다.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기록할 때, 우리는 열등감과 무력감이라는 감정 관성을 멈추고 자기 회복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일기글은 노년의 자아를 지키는 정신적 유산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시간이 되신다면 부모님을 위한 자서전을 헌정하는 도전을 해 보시길 권합니다.


노력의 결과를 기대하지 않는 ‘놀이’를 찾기: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는 ‘놀이’를 시작해야 합니다. 마라톤, 맨발 걷기 동호회, 혹은 어머니 손맛 요리처럼 오감을 만족시키는 활동을 통해 타인의 인정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노년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함께 하는 놀이보다는 혼자 할 수 있는 놀이를 찾아야 오랫동안 자신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는 외로움을 채우는 동시에 자신감을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통제권 회복을 위한 '저축': 노후의 재정적 준비(저축)는 단순히 돈을 모으는 행위가 아니라, 노년기에 외부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삶의 통제권을 스스로 쥐기 위한 필수적인 행위입니다. 주체적인 노년은 경제적인 안정감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부터 저축과 투자의 금액을 훨씬 더 많이 늘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와 관련된 서적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제가 앞으로 연재할 '화폐의 신'을 읽어보시면 또 하나이 세계관을 장착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갱춘기는 우리 삶의 ‘노년기 입문기’입니다. 이 시기는 우리가 과거의 낡은(꼰대가 갖는 패러다임) 생각과 감정을 멈추고, 부끄러운 나 자신을 솔직하게 마주하며, 내면의 행복과 안정감(상실감을 선택하지 않는 용기이며 지혜)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는 기회입니다.


에필로그: 함께 동행해 주신 독자님께


저의 솔직하고 때로는 부끄러웠던 이야기들을 묵묵히 읽어 주시고, 댓글과 격려로 함께 걸어주신 모든 작가님과 독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연재는 저 혼자만의 내면 갈등이 아니었습니다. 독자님들의 공감과 응원 덕분에 저는 비로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흔한 말 대신, “나이는 용기이자, 성장의 기록이며, 지혜의 보고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안정감을 찾았습니다.


이제 저는 이 연재를 마무리하고, 매 회 정리한 이 지침들을 가지고 현실 속의 새로운 노년기를 향한 도전을 시작하려 합니다. 우리 모두 갱춘기의 고통을 용기로 바꾸어, 삶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주체적이고 의미 있게 채워나가기를 함께 응원하자구요.


감사합니다. 또 다른 연재를 통해 새로운 세계관을 공유할 날을 차분히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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