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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춘기, 나이 들수록 생각과 감정이 고착화되는 이유

나이를 먹는 것인가? 익어가는 것인가?


'익숙함'이라는 달콤한 유혹

어느덧 삶의 가파른 고개 즉 55세를 넘어섰을 때, 우리는 종종 ‘익숙함’이라는 달콤하면서도 위험한 함정에 빠진다. 사람들은 나이 듦을 곧 ‘원숙함’이나 ‘익음’이라 표현하지만, 문득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나는 그저 나이를 먹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익어가는 중일까?” 갱년기의 혼란스러운 감정과 사춘기의 방황이 결합된 듯한 이 ‘갱춘기’의 중심에는 바로 우리의 생각과 감정의 ‘관성’이 자리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의 사고방식과 감정의 패턴은 멈추지 않는 거대한 롤러코스터처럼 더 확고해진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 오래된 감정적 방어기제들이 마치 강력한 중력처럼 작동한다. 문제는 이 관성을 잠시라도 멈추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나이가 들수록 고갈되어 간다는 점이다.


몸과 마음의 여력이 줄어들면, 뇌는 가장 적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경로를 택한다. 그것이 바로 '익숙한 판단', 즉 관성대로 움직이는 길이다. 이 관성은 과거에는 현명한 해결책이었을지라도, 시대가 달라지고 대상이 바뀌어버린 지금은 오히려 오류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변의 충고를 외면한 채, 그 익숙한 판단을 ‘올바름’이라고 착각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자기 합리화’라는 보호막으로 감싸며, 생각과 감정의 고착화는 더욱 심화된다. 우리는 멈출 힘이 없었을 뿐인데, 고집이 세진 사람으로 오해받기 시작하는 것이다.


'익어간다'는 것의 무게


흔히 나이 듦을 ‘익는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익음'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수많은 조건이 충족된 결과물이다. 잘 익은 열매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독서를 통해 세상의 다양한 빛깔을 이해하고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세계관을 길러야 한다. 또한, 나 외의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들의 다름을 나만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때로는 사회적 통념이나 익숙한 관계 속에 잘못된 현상이 직면했을 때, 망설임 없이 ‘아니다’라고 지적할 수 있는 대범함도 있어야 한다. 여기에 상황과 관계는 늘 변할 수 있다는 가정을 염두에 두고,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과 담담함, 그리고 당당함을 유지하는 삶의 지혜가 더해져야 비로소 익어간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련’의 과정을 빼놓을 수 없다. 삶의 난관과 사건, 사고를 겪지 않은 사람은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시련을 ‘남 탓’으로 돌리지 않고, 오롯이 ‘내 삶의 숙제’로 받아들여 견뎌내는 지혜이다. 남 탓으로 시련을 밀어내는 사람은 결코 떳떳하고 솔직한 자신을 정면으로 직시하지 못하는 비겁함 속에 머무르게 된다. 그런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결국 껍데기만 딱딱해질 뿐, 속은 익지 않는 법이다.


갱춘기의 핵심, '나는 누구인가?'


나는 과연 나이를 먹은 것인가, 익어가고 있는 것인가? 이 질문은 결국 우리 삶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와 맞닿아 있다. 부족한 나도 나 자신이고, 만족스러운 나도 나 자신이다. 힘들고 어려움에 직면한 나도, 행복으로 세상이 가득 찬 듯한 나도 모두 나 자신이다.


'갱춘기'가 그토록 혼란스러운 이유는 바로 이 ‘나는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나의 실체를 알지 못하기에 우리는 무기력해지고, 결국 생각과 감정의 관성이 하자는 대로 끌려가며 어리석음을 반복한다.


이제는 멈춰 서야 한다. 기존의 나에 대한 생각, 감정, 판단, 그리고 착각의 스위치를 의도적으로 내려놓아야 한다. 짧게라도 명상의 시간을 갖고, 내 호흡에 집중하며 오직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연습을 시작해 보자.

내가 잘하는 강점과, 남들보다 부족한 약점을 하나씩 적어보고, 그 모든 것이 바로 ‘나’ 임을 담담하게 인정하는 것. 이 인정이야말로 생각이 고착화되는 것을 막고, 쓸데없는 자기 합리화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게 하는 유연한 지혜의 시작이다.


나를 낱낱이 알아가는 과정, 그것이 갱춘기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단단하고 소중한 지혜이다. 오늘부터 명상하고, 걷고, 쓰면서 나를 온전히 마주하는 여정을 시작해 보자. 진정한 익음은 바로 그 길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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