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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Jan 25. 2024

"엄마, 가지 마..."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날 오전 남편이 어머님과 통화를 하더니 강원도에 가서 빵을 가져오겠단다.

남편 친척분 중에 베이커리 가게를 운영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어머님께 빵을 한 박스 보냈다는 거다.

그런데 뭔 빵을 가지러 강원도까지 갔다 온다는 거지?

어머님은 그냥 택배로 보내겠다고 그러는데, 남편은 왕복 6~7시간 정도 되는 곳을 갔다 오겠단다.

지난달에 갓김치, 파김치 등을 담가놨으니 가져가라고 하셨는데, 시간이 되지 않아 가지 못했기에 겸사겸사 간다는 거다. 그러면서 나한테 같이 가겠냐고 물어본다.

두 아들은? 아이들 이모가 좀 봐주면 되지 않겠냐며 여동생에게 물어본다. (같이 살고 있다.)

두 아들이 강원도에 가겠다고 하면 1박 2일로 갔다 오면 되는데, 첫째가 싫단다.

갔다 왔다 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강원도에서 나오는 TV를 다 봐서 이젠 재미없단다.

이런... 둘째 아들은 갈팡질팡 하다가 형이 안 가겠다고 하니 자기도 안 가겠단다.

엄마, 아빠 둘이 갔다 오란다. 이모랑 자고 있으면 된다고 씩씩하게 이야기하면서.


남편은 출근했고, 밤 10:40분경 마치는 시간쯤에 맞춰서 나에게 오라고 했다.

8시 조금 넘어서 갈 준비를 하고 둘째 아들 책을 6권 정도 읽어줬다.

그런데 둘째가 시간을 계속 끌면서 이것도 해달라 저것도 해달라고 한다.

엄마도 밤에 늦게 가면 무섭다고 9시 전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자기도 가겠단다. 강원도에 가서 할머니가 주시는 것만 받고 바로 와야 해서 너무 힘들 거라고 얘기했다. 그럴 것 같은지 이제 나에게 "엄마, 가지 마..."라고 얘기한다.

아빠랑 약속을 했고, 아빠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졸리면 엄마가 깨워줘야 하니 오늘만 같이 가겠다고 했다.

그럼 엄마를 좀 안아주겠다면서 한동안 계속 안고 있다.

시간이 조금 흘러 "이제 갈게." 이야기하며 나오려는데, "엄마, 아빠 올 때까지 기다리면 안 돼?" 물어본다.

"아빠 올 때까지 기다리면 시간이 더 늦어져. 2시간 정도 더 늦게 오게 되는데 그러면 더 힘들잖아. 엄마가 지하철 타고 아빠 일하는 곳에 갔다가 같이 얼른 갔다 올게. 이모랑 형이랑 잘 자고 있어."

"엄마, 그럼 엄마 지하철 조심해서 타고 가야 해. 그리고 한번 더 안아줘."

엄마가 지하철 혼자 타고 가는 것이 걱정되었나 보다. 나 결혼하기 전에는 밤에 지하철 혼자 많이 타고 다녔는데. 두 아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그런가 보다.

둘째 아들을 진하게 안아주고 "엄마, 이제 갔다 올게. 잘 자고 있어." 얘기한다.

첫째 아들은 방에 누워서 책을 읽으면서 "응, 잘 갔다 와." 쿨하게 인사하고.

둘째는 앞에서 잘 갔다 오라며 안아주고는 눈물을 훔치는 듯 눈을 한번 비비고는 씩씩하게 인사했다.


https://pin.it/2CryMjhH3



밖으로 나와서 지하철을 타러 가면서 아이들 없이 혼자 밤에 어딜 가는 것이 얼마만인가 생각이 들었다.

밤에 나가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혼자 나오니 좀 무섭기도 했다.

지하철을 타고 남편을 만나러 가는 길에 금방 보고 온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핸드폰으로 아이들 사진을 봤다. 

그런 내 모습이 웃겼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정작 아이들이 없으니 금세 보고 싶어졌다. 밤이어서 더 그랬을까?

아이들이 보고 싶은 마음과 함께 예전에 남편과 연애했을 때가 떠올랐다. 남편이 바쁘면 남편 일하는 곳 근처에 가서 저녁만 먹고 집에 왔던 기억이 났다. 그땐 그렇게 얼굴 보는 것도 참 좋았는데.

오랜만에 둘이서만 강원도에 갈 생각을 하니 연애하는 기분이 났다. 

그렇게 1시간 남짓 지하철을 타고 남편이 일하는 곳에 도착했다.

남편 일 끝나기를 기다렸다 같이 출발했다.


출발해서 1시간 정도는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 얘기가 주를 이룬다.

남편에게 오기 전 두 아들이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하며 정말 성향이 다른 것 같다고 했다.

둘째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줄 아는 것처럼 그런 행동과 말을 잘 골라서 한다.

둘째로 태어나보니 경쟁자기 이미 있는 셈이었으니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 아닐까 하면서.

첫째 아들은 쿨해 보이지만 속은 여리기 때문에 함께 안아주고 표현해줘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

남편도, 나도 첫째여서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제야 떠올랐다.

첫째가 마음과는 다르게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해도 부모인 우리는 표현해줘야 한다는 말에 동의했다.

양가 집 이야기, 남편 일 이야기, 나는 뭘 하면 좋을지 이야기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1시간 정도 지나자 엄청 졸리기 시작했다. 불편하면서도 쿨쿨 잤다.

분명 남편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졸리면 깨워주기 위해 나도 같이 나온 것이었는데...

강원도에 도착하기 30분 전 깨서 남편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강원도에 새벽 2시경 도착했다.

강원도 하늘에 무수한 별이 우리를 맞았다. 우와~~ 엄청 감탄하며 내렸는데 강원도 추위가 나를 반겼다.

어머님은 감기에 걸리셨는데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 준다고 파를 다듬고 계셨다.

갓김치, 파김치, 총각김치, 묵은지, 배추, 무, 감자, 파, 들기름, 사과, 빵 한 박스 등을 바리바리 챙겨주신다.

아이들과 함께 왔다면 이렇게 바로 출발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30분 정도 있다가 다시 출발했는데, 어머님께서 배웅하시는 모습이 눈에 남았다.

아휴.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는데, 이렇게 금방 왔다 가니 섭섭하실 것 같았다.


그래도 아이들 이모가 다음날 출근해야 한다며 오전 8시까지는 와야 한다고 해서 지체 없이 출발했다.

나는 조금 있다 잠이 들었고, 남편도 피곤했기에 중간에 차를 세워놓고 조금은 잤다.

그리고 출발해서 집에 도착하니 새벽 6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누가 두들겨 팬 듯한 근육통과 뻐근함을 느끼며 차에서 내렸다.

씻고 옷 갈아입고 누웠더니 두 아들은 눈을 떴다. 

꽉 안아주며 잘 잤냐고 물어봤더니 둘째 아들은 내가 가고 나서 좀 울었단다. 아직은 아기구나 싶었다. 

엄마가 아빠랑만 둘이 가니 어땠냐고 물어보니 싫었단다. 엄마가 없으니 외로웠단다.

외로움이 무언지 아직 잘 모를 것 같은데 그런 말을 하는 아이를 보니 다음엔 같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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