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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Feb 05. 2024

혹시, 나 감시해요?


집을 나서면 연락을 제대로 하지 않는 남편.

물어볼 것이 있거나 나에게 부탁할 일이 있을 때는 잘만 하면서.

안부를 물어보는 일은 아주 아주 가끔이다.

일하러 갔을 때는 그러려니 한다.

8년이 되어가다 보니 나도 두 아들 보느라 정신이 없기도 하니까.


그런데 강원도 시댁을 혼자 갔다 올 때도 연락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할머님, 아버님 제사, 친구분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어머님께서 김장 김치 등을 가지러 가라고 하실 때 등 혼자 갔다 온다.

같이 가면 좋지만 아이들은 다음날 학교, 유치원도 가야 하고, 무엇보다 금방 오는 경우가 많은데 왕복 6~7시간을 아이들이 힘들어해서다. 

그럴 때는 잘 도착했는지, 출발했는지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하라고 하는데, 하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

자고 있는데 깨울 것 같아서 그렇다나. 그래서 문자라도 하라고 하는데 말이다.

제대로 하지 않아서 이젠 미션이라면서 알려줬다. 출발하거나 도착했을 때 연락을 무조건 하기로 말이다.

남편에게 연락하라고 했으면서, 가끔 내가 먼저 할 때가 있다.

잠을 안 자고 있거나 잠깐 잠에서 깰 때가 있는데, 그때 전화를 한다.

분명 이 시간쯤 출발하거나 도착할 것 같은데 왜 아직도 연락이 없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말이다.

"어디예요? 도착했어요?"

"이거 뭐죠? 나 지금 막 도착했어요. 이제 도착했다고 문자 하려고 왔는데 연락이 온 거예요."

"그래요? 그럼 출발할 때 문자하고 출발해요. 운전 조심해서 하고요."

"알았어요. 얼른 자요."


이것이 한 번이었다면 우연이겠거니 하겠는데 남편 말로는 거의 그랬단다.

남편이 이제 막 도착하고 출발하려고 준비하면서 문자를 하려고 하면 내가 전화를 한단다.

그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면서 이야기한다.

"혹시, 나 감시해요?"

"감시요? 아니요. 감시 안 하는데요. 근데 내가 감시 안 해도 오빠는 나에게 다 들키잖아요. ㅎㅎ"


https://pin.it/1 gQo84 WiZ



그렇다. 남편은 나에게 다 들킨다.

남편이 나를 약 올리려고 가끔 장난을 칠 때가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진짜인 것처럼 진지하게 말한다.

처음에는 진짜 그런가? 했는데, 이젠 살다 보니 알겠다.

이 남자 장난치는 중이라는 것을. 

그러면 나는 폭풍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남편... 눈동자 굴리며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이 보인다.

하나 겨우 지어내면 나는 또 질문을 한다.

그러면 "에이, 못하겠어요. 거짓말도 해본 사람이 잘하지. 난 이런 것도 못하네요."

"오빤 나한테 다 들켜요. 그러니 이상한 소리 하지 말아요. ㅎㅎ"

"그렇네요.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네요. 생각하는 게 더 힘들어서 안 할래요. ㅎㅎ"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나에게 장난을 치고 있다. 

가끔은 장단을 맞춰 준다고 그렇냐고 하면, 신나 한다. 


다 큰 어른인데 연락을 하든 안 하든 별 상관하지 않아도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에 위치추적장치 같은 것을 해야 하나 생각한 적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지금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남편이지만, 결혼 초반에는 꽤 마셨다.

10시에 일이 끝나다 보니 술자리가 있으면 새벽 2~5시 사이가 귀가 시간이었다.

첫째 낳았을 때는 남편이 오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아 기다렸다.

둘째 낳고 나서는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자버렸지만.

어느 날, 아는 형과 만나서 술 한 잔 하고 가겠다면서 새벽 3시 정도까진 집에 가겠다고 한 적이 있다.

알겠다고 대리 기사님 불러서 조심히 오라고 하고, 두 아들과 함께 잠들었다.


다음 날, 새벽 6시경 눈이 떠져 일어나서 남편이 왔나 봤는데 이 남자, 아직 안 왔다.

전화를 했는데, 연락도 안 받는다. 처음엔 화가 나다가 나중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두 아들이 일어나서 아침밥을 챙겨주면서도 전화를 계속했는데 계속 연락두절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술을 먹어도 항상 집에는 잘 왔던 남편이었기에. 

9시가 다 된 시각, 페이스톡으로 겨우 연락이 된 남편. 필름이 끊긴 남편을 아는 형이 형네 집에 데리고 와서 같이 잤단다. 하... 안도감과 함께 짜증도 같이 밀려왔다.

일단 집으로 오라고 한 뒤 잔소리를 했다. 얼마나 걱정을 했는 줄 아냐며 연락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고. 

그때 몇 시간을 마음 졸여서 위치추적장치라도 달아야 하나 잠깐 생각했지만, 그것도 피곤할 것 같아서 안 했다. 다음부턴 그런 일이 없기도 했고. 

그때 이후로 연락을 제대로 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이제는 본인이 어디갈 때 내가 자느라 연락을 하지 않으면 서운하단다.

감시라도 하는 것처럼 신경 써줄 때가 좋았다면서.

아이들만 챙기지 말고 자기도 챙겨달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오빠는 어른이잖아요."

"아니에요. 나도 아직 어려요. 그러니 나도 챙겨줘요."

음... 이 남자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귀찮게 간섭해주고 싶은데, 내가 힘들다. 그래도 원한다면 가끔은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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