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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Nov 19. 2023

남편 꿈에서 바람(?) 피운 나


가끔 잠에서 깨어난 남편의 표정이 심상찮다.

피곤해서 짓는 표정과는 다른, 뭔가 복잡 미묘한 심정을 잔뜩 품은 듯한 표정.

"왜 그래요? 잠을 잘 못 잤어요?"

"꿈자리가 너무 뒤숭숭해요. 기분 나빠요."

나도 가끔 뒤숭숭한 꿈을 꾸긴 하지만, 별 의미는 두지 않으려 노력한다.

예전엔 무조건 꿈 해몽을 찾아봤는데, 좋지 않으면 찜찜한 기분이 들어 아예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다.

그런데 아주 아주 가끔 너무 궁금해서 찾아볼 때가 있다.

좋으면 기분이 좋은데, 별로면 '에이~ 괜히 봤어. 빨리 잊어버리자!' 생각해버리려고 한다.


"그래요? 무슨 꿈이었는데 그래요?"

남편이 슬쩍 나를 흘겨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왜지?

나는 지금 남편이 일어나야 할 시간이라 일어나라고 깨운 것 밖에 없는데, 왜?

남편이 조금은 짜증이 섞인 듯한 표정으로 뾰로통하게 말한다.

"S 씨가 꿈에서 다른 남자랑 뽀뽀하는걸 내가 봤어요. 기분이 너무 나빠요."

그러면서 그 남자의 인상착의를 대충 이야기해 준다. 당연히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음... 그러니까 지금 본인의 꿈 때문에 이렇게 찌푸리고 있다는 말이지?

내가 실제로 한 것도 아니고, 내 의지도 전혀 아닌데, 왜 본인이 그런 꿈을 꾸고서는 나에게 그러지?

억울하다. 나는 한껏 억울함을 담은 표정과 말투로 이야기한다.

"우와, 진짜 어이가 없네요. 내가 진짜 한 것도 아니고. 오빠 꿈에서 한 걸로 왜 나한테 그래요?"

"몰라요. 꿈에서라도 다른 남자랑 그러는 거 짜증 나요."

하... 이럴 때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내가 진짜 그럴 생각이 1이라도 있으면 억울하지도 않지.

유치원생, 초등학교 1학년 두 아들과 함께 지내느라 나의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거의 없고, 무엇보다 두 아들에 시달리다 보니 누굴 만나는 것 자체가 피곤한 나인데... 

남편이 아주 가끔 저런 꿈을 꾸고서는 나에게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릴 때면 이해되지 않았다.

'왜 저러지? 본인 꿈에서 그런 것 아닌가? 괜히 나한테 그러네' 이런 생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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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도 한 번 내 꿈에서 남편이 다른 여자랑 꽁냥꽁냥하는 것을 보는 꿈을 꿨다.

꿈에서 깨면서 일어났는데, 기분이 엄~~ 청 나빴다. 

분명 꿈이라는 것을 안다. 내 꿈이라는 것도 안다. 남편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속에서 짜증이 조금씩 조금씩 올라옴을 느꼈다.

이 감정이 옳지 않다는 것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이상하게 내 표정과 말투는 싸늘하게 나온다.

"오빠, 뭐예요?"

남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는다. "뭐가요?"

"내 꿈에서 나온 여자, 도대체 누구예요?"

"S 씨 꿈에서 내가 여자랑 나온 꿈을 꿨어요? 그 여자 어땠어요? 이뻤어요?"라고 싱글거리며 묻는 남편.

아무리 내 꿈속에서라고 해도 이쁜 여자였으면 좋겠다는 것인가? 어이가 없다.

"몰라요. 잘 기억나지 않아요. 나이도 나보다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에이, 아깝다."

뭐가 아깝다는 거지? 남편의 저런 반응조차 어이가 없다.

남편은 한참을 웃더니 이야기한다.

"이제 내 마음 알겠어요? 나도 S 씨가 내 꿈에서 딴 남자랑 꽁냥대면 기분이 나쁘다고요."

그제야 인정한다. 그래, 그렇구나.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기분 나쁠 수가 있구나.


내가 경험해 보기 전에는 억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직접 경험해보고 나니 기분 나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우리, 둘 다 참~~ 유지하다.

어쩜 꿈에서 나온 다른 이성의 모습만 가지고도 이렇게 서로 기분 나빠하는지...

이래서 남들이 보기엔 유치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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