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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May 29. 2023

바람 쐬고 올게요



"바람 쐬고 올게요."

남편이 하루에도 몇 번 하는 말입니다.


일단 일어나자마자 스타트를 끊습니다.

밥을 먹은 후마다 추가됩니다.

뭐... 여기서 끝이냐? 그건 또 아닙니다.

집안일 뭐 하나 한 후나, 아이들과 좀 놀아준 후 어김없이 저 말을 하면서 잠깐 사라져요.

5분만 바람 쐬고 오겠다고 하지만, 실제로 시간을 재보니 7~10분이더라고요.


실제 바람을 쐬겠다고 하면서 무엇을 하느냐?

눈치를 채셨나요?

담배를 피우러 갑니다.


바람 쐬고 오겠다는 말은 제가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두 아들이 아직 어릴 때 담배가 좋은 것도 아닌데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거든요.

차라리 바람 쐬고 오겠다고 말하라고...

지금은 남편에게 충격요법(?)을 준답시고 애들에게 아빠 담배 피우러 갔다고 직접적으로 말합니다. ㅎㅎㅎ


담배 이야기하니 남편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네요.

소개팅 자리에서 남편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었죠.

"담배는 하루에 2~3개비밖에 안 피워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 담배 금방 끊을 수 있겠구나.'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담배 냄새를 정말 정말 정말 싫어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담배를 하루에 1갑은 피웠던가 봐요.

뭐... 저를 만날 때는 거의 안 피웠으니(본인 말로는 참았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잘 몰랐던 거죠.

사업하면서 스트레스 푸는 수단이 담배 피우는 것이라고 하니 어느 정도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처음엔 연초를 피우다 지금은 전자담배로 바꿨어요.

냄새가 덜 나고 덜 독해서 바꿨대요.

초반엔 이전에 비해 훨씬 괜찮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이것도 냄새가 코를 찌르고 올라옵니다.

남편에게 말해요.

"악! 담배 냄새! 저리 가요!"

남편은 어리둥절해하면서 묻죠.

"에이~ 거짓말하지 마요. 이건 냄새가 별로 안 나잖아요."

"아니에요. 이제는 이것도 냄새가 많이 난다고요!"


저도 가끔 담배 피우는 것에 한마디를 하는데, 남편 주변에서도 압박이 들어옵니다.

시어머님은 결혼 전부터 말씀하셨어요.

"담배 뭐 좋은 거라고 좀 끊어라."

두 아들이 태어나고 지금까지 계속 말씀하세요.

"이제 애들도 있는데 좀 끊지. 그놈의 담배 역사는..."


담배를 피우다 딸이 태어나자 담배를 끊으신 둘째 서방님도 말씀하세요.

"애들도 있는데 형도 이제 담배 좀 끊어."


이제 8, 6세가 된 두 아들도 이야기합니다.

"아빠! 냄새나! 담배 좀 그만 피워!"

"엄마, 아빠 또 담배 피우러 갔어. 나랑 놀아준다고 했는데 바람 쐬러 간다면서 담배 피우러 갔어."

작년 어느 날 유치원에서 아빠 담배 피운다고 이야기했다는 첫째.

"엄마, 오늘 내가 oo 친구한테 우리 아빠 담배 피운다고 했는데, 그 친구 아빠도 담배 피운대."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해줬는데, 처음엔 좀 당황하더니 이내 잊어버리더라고요.


다른 건 끊을 수 있겠는데 담배는 못 끊겠다는 남편.

금연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담배는 끊은 것이 아니라 참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남편도 이틀 정도 금연을 시도했던 적이 있었어요.

스트레스로 인해 다시 피웠지만요.

남편 건강을 생각하면 끊었으면 좋겠는데, 스트레스받는다니 그건 그것대로 좋지 않고...

참, 딜레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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