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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Sep 23. 2023

퇴근하겠습니다! (씨익)


"저, 이제 퇴근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상대의 얼굴을 슬며시 바라본다.

아... 표정을 숨기려고 노력하지만 속마음이 얼굴 곳곳에서 슬며시 새어 나온다.

얼굴에 웃음이 한~~ 가득이다.

"우와, 엄청 좋은가 봐요?"

"아니에요. 좋긴요. 나도 같이 있고 싶지만 어쩔 수 없으니까 그런 거예요."

"아, 그래요? 얼굴 표정이 싹 바뀐 건 알고 있어요?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데요?"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ㅎㅎ 그럼 전 이만 퇴근할게요~~" (휘리릭~)



https://pin.it/6 GWiruj



남편이 출근할 때 나와 나누는 대화다.

언제부터인가 남편은 출근하는 것을 '퇴근'한다고 표현한다.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아이들과 함께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러 가는 것이 꼭 퇴근하는 것처럼 느껴진단다. 아... 무슨 말인지 10000% 공감한다.

두 아들과 함께 있으면 음... 조용할 틈이 없긴 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말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1시간 정도만 있다 보면 남편의 얼굴에서 영혼이 조금씩 빠져나감이 느껴진다. 

그래,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지. 나도 항상 느끼니까... 


나는 두 아들과 매일 함께 있다 보니 남편이 말하는 입장에선 퇴근이 없는 셈이다.

음... 그렇구나... 나는 퇴근이 없는 삶을 꽤 살아가고 있구나.

아니다. 아이들이 등교, 등원하고 집에 돌아오기까지 4~5시간 남짓한 시간을 퇴근 시간이라고 이름 붙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직장 생활할 때는 일하고 집에 가는 시간만을 기다렸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등교, 등원할 때만 기다린다.

그렇다 보니 소위 말하는 빨간 날인 주말, 공휴일이 그리 반갑지 않다.

그날은 내 입장에선 퇴근이 없는 날이어서 그렇구나! 새삼 깨닫는다.

뭐 빨간 날은 그나마 나은 편인가. 아이들 방학은 1달~2 달이니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아프다.


가만 보면 남편도 일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텐데, 그렇게 이야기해 주니 어떻게 보면 고맙다.

그만큼 집에서 아이들 보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인정해 주는 것이니...

매번 내게 이야기하는 것이 일하는 것보다 아이들을 보는 시간이 행복하지만 엄청 피곤하단다.

소파와 잠시라도 일체가 되려고 하면 두 아들이 아빠 위에 올라타고 이것저것 해달라고 하니 뭐... 

가끔 너무 피곤해 보이면 엄마랑 놀고 아빠는 좀 자게 내버려 두라고 하는데...

잠시 그렇게 하다 어느새 아빠에게 쪼르르 달려가 아빠를 올라타고 책 읽어달라, 목말을 태워달라, 같이 놀아달라, 정리하는 것 같이 도와달라 요구사항이 끝이 없다.

그럴 때 남편을 보면 짠하다. 아빠라는 것도 참 쉽지 않구나 느낀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시달리다 남편은 어느 순간 퇴근해야겠다면서 벌떡 일어난다.

씻으러 욕실로 들어가면서부터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아... 이제 이 사람은 퇴근시간이라 즐거운 모양이구나 생각하면 부러울 때도 가끔 있다.

'나도 데려가요!'라고 속으로만 외친다는 것이 가끔 입 밖으로 튀어나올 때도 있다.

남편은 어쩔 수 없지 않냐는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과 나와 인사하고는 즐거운 마음으로 퇴근한다.


아직은 두 아들이 어려서 이것저것 챙겨주고 봐줘야 해서 힘들다고 느끼는 것일까?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엄마, 아빠와 노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던데...

그때가 되면 항상 퇴근인 느낌일까? 

주변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던데...

그냥 이 시기를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데, 가끔은 벅찬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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