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창문이 많다. 모두 천장부터 바닥까지 내려오는 커다란 창이다.
창문에 먼지와 사람 손때까지 더해져 점점 더러워지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청소할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시도하다 힘들어 결국엔 포기해 버릴 것 같은 느낌? 그럼 청소한 곳만 깨끗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얼룩덜룩해서 더 지저분할 것 같은 느낌?
핑계라는 것은 알지만 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해야지' 마음만 몇 년째 먹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이들 등교, 등원시킨 후 거실에서 밖을 내다보면 그래도 잘 보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늘도 잘 보이고 미세먼지가 좋은 날이면 저 멀리 산도 잘 보였으니까.
그런데 가슴 한편에 찝찝함이 계속 남아 있었나 보다.
창문에 얼룩이 보일 때마다 한숨을 내쉬며 외면하곤 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삼 주 전쯤 둘째 아들 유치원 하원을 기다리며 엄마들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엄마가 지금까지 유리창 청소를 하고 왔다는 거다.
헉... 그 힘든 것을 어떻게 했을까 싶어 궁금해서 물어봤다.
그랬더니 창문로봇청소기가 있다는 거다. 오잉? 처음 들어봤다.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대여해 주는 곳이 있어서 3일 대여하고 지켜보면서 청소를 하고 있다고 했다.
당장 검색해 봤다. 신세계였다! 이럴 수가... 나만 모르는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니...
마음먹은 김에 당장 대여했다. 우리 집은 창문이 많고 아이들 하교, 하원 후엔 놀이터에서 노느라 시간이 별로 없으니 4일로... 그 기다리는 며칠이 설렜다. 마법처럼 우리집 창문을 바꿔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드디어... 창문로봇청소기가 도착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포장을 뜯어보는데 의아했다. 이 조그마한 아이가 어떻게 외부에 있는 창문까지 떨어지지 않고 잘 버티고 할 수 있단 말이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뜯어본 직후 실내에 있는 창문으로 먼저 해봤다.
보내준 걸레에 물을 묻혀 꼭 짠 뒤 기계에 부착시키고, 창문로봇청소에 연결된 안전고리를 기둥에 지지하고, 유리 세정제를 칙칙 뿌린 후 작동시켜 봤다.
오~ 소리가 좀 크기는 하지만(일반 진공청소기 소리와 비슷했다) 혼자 낑낑 올라가며 열심히 닦았다.
시험 테스트는 이 정도 했으면 됐으니, 다음날부터 아이들 보내놓고 열심히 창문청소를 시작했다.
처음엔 떨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바라보느라 어깨와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런데 이 아이, 생각보다 창문에 잘 달라붙어서 청소한다.
청소기 혼자 작동시켜 놓고 뭘 하기에는 소리에 예민한 나이기에 쉽지 않았고, 또 방향도 가끔씩 봐줘야 했기에 거의 붙어있다시피 했다. 이 과정에서 진이 좀 많이 빠지긴 했다.
걸레는 충분히 받았지만 창문이 많이 더러웠던지라 빨아가면서 청소했다.
처음엔 한 창문 다하면 교체하곤 했는데 나중에는 조금 더러워지면 자주 갈아주는 것이 더 깨끗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걸 알았을 때는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는데, 다시 할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만족했지만 말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려 아이들 보내놓고 4시간 꼬박, 3일 정도 했다.
나중엔 지치기도 했는데, 그래도 깨끗해진 창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먼저 유리창 청소를 했던 아들 친구 엄마가 하늘이 이렇게 파란 줄 몰랐다고 하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처음엔 남편이 뭐 그리 차이가 있겠냐며 힘든데 하지 말라고 했는데... (처음엔 자기가 한다고 했다가 내가 외부 창문을 열고 청소기를 부착하는 것을 보고는 고소공포증이 있는 자기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포기해 버렸다. 우리 집이 14층이기에 고소공포증이 있는 남편은 무서울 수 있다. 내가 고소공포증은 없어서 다행이지.)
며칠 동안 열심히 한 것을 보더니 너무 깨끗하다며 바깥 풍경이 이렇게 차이날 줄 몰랐다며, 고생 많았다고 이야기한다.
두 아들도 너무 깨끗하다며, 깨끗해서 좋다고 이야기한다.
그래, 나만 좋은 것보다 가족 모두 좋아하니 나도 좋다.
그동안 먼지 잔뜩 낀 흐린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알았다.
이렇게 깨끗해진 창으로 밖을 바라보니 내 마음도 한결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깨끗해진 유리창으로 밖을 내다보는 횟수도 많아졌다.
그런데 방충망이 눈에 들어온다. 창문은 깨끗해졌는데 방충망이 더러우니 개운하지 않은 느낌.
하지만 여기에서 멈추기로 했다. 방충망까지 하다간 몸살 날 것 같다.
이 정도에서 만족하고 더러워지면 내년에 다시 대여해서 청소를 해볼까? 생각 중이다.
문득 내 마음의 창은 어떤지 살펴보게 된다.
로봇마음청소기가 있어서 내 마음의 창도 깨끗하게 닦아줬으면 좋겠다.
흐릿해진 창으로 흐리게, 내 마음대로 판단하지 않고 선명하게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말이다.
오늘 내 마음의 창이 흐린 것 같으니 '마음청소기' 작동! 하면 저절로 위이잉~~ 거리면서 쓱싹쓱싹 먼지와 손때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