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에 개봉한 '인사이드 아웃 1'.
남편과 둘이 영화관에서 손 꼭 잡고 보면서 웃고 울고 다양한 감정을 경험했던 기억이 있다.
사람의 감정에 대해 어떻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 감탄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이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기에 2016년 태어난 첫째의 태명을 '기쁨이'라고 정했다.
뱃속에 있는 '기쁨이'에게 기쁨의 감정이 많이 담기기를 기원하면서 말이다.
아마 이건 당시 남편이 나에게 '버럭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뭐,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감정의 기복이 심했었으니까.
시간이 흐르고 흘러 2024년이 되었다.
그 사이 두 아들이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 유치원생이 되었다.
살면서 여러 감정에 휩싸였지만,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살기도 했다.
예전의 감정을 다시 떠올리도 싶기도 하고, 두 아들은 어떻게 느낄지 궁금해서 영화관에서 '인사이드 아웃 2'를 같이 관람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라일리의 감정이 더 다양해지는 과정이 담겨 있었다.
감정들의 소용돌이에 같이 휩싸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훌쩍거리고 있었다.
첫째 아들이 내 옆에 앉았었는데, 내게 살며시 물어본다.
"엄마, 우는 거예요?"
이런... 들켰다. 눈물이 조금 난다고 이야기하고는 얼른 눈물을 닦았다.
그런데... 다시 울었다. 기쁨이의 한 마디 때문에.
"라일리가 어떤 사람인지는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야!"
아마 두 아들이 생각나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두 아들에게 내가 원하는 모습을 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게 되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은연중에 그런 뉘앙스가 아이들에게 비치진 않았을까 해서다.
애니메이션이 다 끝나고 두 아들을 봤는데, 첫째 아들은 재밌었다고 하고, 둘째 아들은 재미없었다고 한다.
아마 유치원생에겐 시간도 길고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첫째 아들은 인상 깊었는지 인사이드 아웃 1도 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나도 보면서 지금 아이 연령에 맞는 것은 1편인 것 같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조만간 함께 1편도 봐야겠다.
그러면서 영화, 책, 드라마 등을 보면서 눈물을 자주 흘리는 나를 떠올렸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긴 한데, 어째 나이가 들면서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똑같은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데 혼자서 눈물 바람이 될 때가 많다.
감정이 풍부해서 그렇다고 스스로 위로해 보지만, 왜 울지?라는 시선을 마주할 때가 있다.
아... 약간 당황스럽다. 내 감정을 모두 드러내고 해소하지 못해서 이런 식으로 해소하나 싶을 때도 있다.
실컷 울면 감정이 조금은 차분해지는 느낌이니까.
MBTI 테스트가 사람들에게 유행하기 전에는 나의 이런 감정적인 모습이 싫었다.
감정이 앞서서 할 얘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기에 논리적인 사람이 많이 부러웠다.
내게 있는 면을 보기보다 내게 없는 면이 더 멋져 보였던 거다.
MBTI 테스트를 해보고 내가 'F'라는 것을 안 지금, 예전보단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논리적인 사람이 부러운 건 지금도 조금은 유효하다.
예전보단 덜 감정적으로 되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안 될 때도 있어서다. 아니 많아서다.
똑같은 것을 보고 경험해도 사람은 각자 느끼는 바가 다 다르지 않나.
똑같은 사람도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른 감정을 느끼는데.
'인사이드 아웃 2'가 내 내면을 건드린 거다.
내 마음속에 있던 감정을 끌어올려 눈물로 터지게 만든 거라 생각한다.
뭐, 어쩌겠나. 이런 나를 인정하며 살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