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초록의 생명체와는 거리가 멀던 우리 집.
식물과 알록달록한 꽃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키우는 것은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키우기 쉽다던 것들도 내 손을 거치면 어느새 시들시들해져 버렸으니까.
그래서 밖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았다.
가끔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에서 화분을 받아오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남편과 두 아들은 아니었나 보다.
올해 봄부터 화분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3월 꽃박람회에 가서 두 아들이 작은 선인장 화분을 3개씩 산 것이 시작이었다.
어느 4월, 쑥덕쑥덕거리던 세 남자는 나를 데리고 꽃과 화분을 파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키우고 싶은 화분 3개씩을 정신없이 고르던 남자들.
이것도 이쁘지 않냐며 더 사려고 하는 것을 적당히 하라고 했다.
사기만 하고 제대로 키우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사는 것부터 잘 키우라고 겨우 말리면서.
나도 기웃거리다 로즈메리 화분, 상추, 오이, 가지 모종을 샀다.
내가 산 것들은 어찌 다 음식과 관련된 것들이네.
어쩔 수 없이 실용성을 먼저 따지게 되나 보다. (조금 슬프네.)
초반엔 하루에도 몇 번씩 베란다에 나가서 식물과 꽃을 관찰하던 두 아들.
물도 잘 챙겨주고 관심을 보였다.
다만 자기들이 산 화분만.
나와 남편은 두 아들이 화분에 물을 줄 때 우리가 산 화분에도 물을 줄 것이라 생각해서 거의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베란다에 나가보다 나와 남편 것은 거의 시들시들해져 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엄마, 아빠가 산 것은 엄마, 아빠가 물도 주고 챙겨줘야 하지 않냐며 말했다.
음. 맞는 말이긴 하지만, 줄 때 같이 좀 챙겨달라고 했더니 그제야 알았다고 대답하는 두 아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베란다에 나가서 식물을 보는 횟수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았다.
6월 어느 날 베란다에 나가 보니 초록의 생명을 내뿜는 것들도 있었지만 시들어서 생명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난 관심을 제대로 가지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데, 첫째 아들 말이 응애라는 진드기 유충이 식물의 영양을 다 빨아먹어서 그렇단다.
음... 그렇구나. 처음 알았다.
식물을 키우는 것이 이래서 어렵다.
똑같이 키워도 물, 햇빛 등 양을 다 달리해야 하기도 하고, 이런 벌레들도 생기고 말이다.
밖에서 키우는 것과 집 베란다에서 키우는 것도 차이가 있을 테고.
화분이 집에 오는 횟수가 뜸하던 어느 6월 말.
첫째 아들이 방과 후시간에 '네펜데스'를 받아왔다.
예전부터 꽃가게, 식물원에 가면 식충식물에 관심이 많던 두 아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관심을 환영하지 않았다.
어떻게 키울 것이냐가 가장 중요했는데, 곤충을 잡아 주거나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해져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했다.
그런데, 방과 후 생명과학 시간에 이런 것을 가져올 줄이야.
어쩌겠나. 우리 집에 온 생명체니 잘 키우는 수밖에.
첫째 아들 말이 아직은 어려서 물만 주면 된다고 해서 알아서 잘 챙겨주라고 했다.
아이들이 원해서 데려온 생명체들은 자기들이 알아서 챙겨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으니까.
그래야 책임감도 느끼고 나도 스트레스를 덜 받으니까.
네펜데스가 온 이후 첫째 아들은 하교 후 바로 베란다고 간다.
네펜데스를 보러 가기 위해서인데, 그 참에 다른 식물들도 보고 물도 준다.
둘째 아들도 가끔 물을 주는 모습을 보며 그래도 잘 챙겨주고 있구나 생각했다.
시간이 조금 지난 7월 어느 날,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한 키즈카페에 갔다.
첫째 아들은 블럭방에 가서 노는데, 둘째는 가기 싫다고 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냥 주변을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
남편과 함께 주변을 보고 오던 둘째 아들, 갑자기 화분을 하나 사고 싶다고 한다.
아... 또? 머리가 아프다.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둘째 아들, 나를 끌고 간다. 꽃과 화분을 파는 곳이 있었는데 방울토마토 화분을 사고 싶다고 한다.
저게 방울토마토인가? 싶었지만 열매가 비슷해서 그런가 보다 했다.
생각 좀 해보고 형 오면 같이 오자고 얘기했다.
첫째 아들이 블럭방에서 나오자마자 둘째 아들이 식물을 보러 가자고 했다.
방울토마토 화분을 사겠다고 하니, 주인 왈, 그건 방울토마토가 아닌 관상용 앵두라고 했다.
아, 그건 집에 별로 필요 없지 않나?
집에 갈까 얘기하려는데 두 아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그 근처에 있던 식충식물들로.
눈길을 다른 데로 옮겨주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식충식물만 바라보고 계속 얘기하고 있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식충식물 하나씩을 고르라고 했다.
첫째 아들은 파리지옥을, 둘째 아들은 긴잎끈끈이주걱을.
그렇게 식충식물들이 우리 집에 왔다. 이로써 총 3개가 생긴 셈이다.
그 후 날파리, 죽은 개미 등 벌레나 곤충을 잡아서 준다. 물론 아이들이.
그러면 입을 벌리고 있던 파리지옥이 서서히 입을 다무는 모습이 신기하긴 했다.
(이 아이를 진짜 식물이라고 분류할 수 있을까? 의문도 생기고.)
하지만 내가 키우고 싶진 않다.
아이들이 샀으니 자기들이 잘 키워야지. 난 가끔 구경만 하고.
그런데, 첫째가 다니는 미술치료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네펜데스(곤충을 잡아줘야 하는) 2개를 준다고 하셨단다. 아... 머리가 아프다.
왜 갑자기 우리 집에 식충식물이 이렇게 늘어나는 것일까?
우리 집에 그렇게 벌레가 많은 것도 아닌데, 식충 식물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다른 이유가 있을 리가 없다.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일 뿐.
그저 생명력을 부디 오래 발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