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수용 멸치를 사놓은지 보름쯤 되어간다.
매번 살 때마다 고민한다.
육수용 멸치를 사서 직접 다듬을 것인가 vs 편한 코인육수를 살 것인가.
이리저리 재보지만 결국 선택은 멸치를 사서 내가 다듬는 것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은가 보다.
그런데... 사면 뭐 하나. 냉동실에 넣어두곤 열어볼 때마다 해야지 생각만 하고 다시 닫아버리니.
그냥 하면 되는데 왜 이리 귀찮게 느껴지는지.
미기적미기적 미루다 드디어 냉동실에서 꺼냈다.
세 남자 아침밥을 차려준 후 식탁 한쪽에 자리를 잡는다.
신문지 한 장, 멸치, 지퍼백과 비닐장갑을 준비하고.
자주 하는 편은 아니다 보니 처음엔 항상 버벅댄다.
머리를 떼고 멸치를 반으로 가른 후 내장을 떼는데... 시간이 조금 걸린다.
내 머릿속에서는 휘리릭 휘리릭 하는 영상이 떠오르는데 실제로는 버퍼링이 걸린다.
그래도 몇 마리 손질하다 보면 이내 손에 익어 속도가 좀 난다.
이때 난 무슨 생각을 하느냐?
솔직히 아무 생각도 안 한다. 이것이 매력 아닐까.
잡생각 하지 않고 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이.
머리와 내장이 쌓여가는데 남아있는 멸치도 여전히 많다.
포장된 상태로 봤을 때는 양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는데, 실제로 내가 다듬으면 많아지는 것 같다.
옆에서 하고 있으니 밥을 다 먹은 두 아들 신기한가 보다.
멸치 머리와 내장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뭐 볼 게 있나? 궁금하다.
멸치가 마지막으로 무엇을 먹었을지 아이들 나름대로 상상해 본다.
멸치 뱃속에 다른 생명체가 있지는 않은지도 궁금해한다.
난 그냥 기계적으로 손만 놀리고 있는데, 아이들은 이런 것들이 모두 신기하구나! 신기하다.
첫째 아들, 옆에서 보더니 내가 다듬어놓은 멸치를 한 마리 가져간다.
맛이 어떨지 궁금하다며.
이건 육수용 멸치라서 먹기 좀 그럴 거라며, 맛이 없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래도 궁금하단다. 처음엔 아주 조금 먹어본다.
괜찮은가 보다. 조금 짜지만 맛있단다.
그러고는 몇 마리를 계속 먹고 있다.
첫째 아들이 그렇게 먹으니 둘째 아들도 궁금했나 보다.
옆에서 열심히 다듬고 있는 나를 가운데 두고 두 아들은 멸치를 조금씩 먹고 있다.
나 보고도 먹어보라고 하는데, 나는 별로 먹고 싶지 않다.
조그만 멸치라면 어렸을 때 고추장에 찍어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지만, 육수용 멸치는 커서 먹고 싶지 않다.
먹기만 하니 그랬던지 첫째 아들은 옆에서 자기도 같이 다듬는다.
내가 하는 것을 봐서 그런지 곧잘 한다.
그러곤 자기 입으로 직행한다.
자기가 먹을 것을 스스로 선별하는 과정이었던 것인가?
어쨌든 아이들 덕분에 심심하지 않게 끝낼 수 있었다.
오늘 이렇게 손질한 멸치는 우리 집 육수로 빛을 발할 것이다.
내가 부지런하게 움직여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