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린 발걸음 Aug 23. 2024

기분 전환

결혼하기 전에 나는 집 앞 마트에 갈 때도 청바지로 갈아입고 갔다.

집에서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으로 나가면 왠지 내 속살을 보이는 것 같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때는 편한 차림으로 밖을 다니는 사람들이 조금 이해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나였기에 아마 쭉 그럴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의 세계로 들어오면서 나의 생각은 바뀌었다.

언제 울면서 나를 호출할지 모르는 아이를 보느라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할 때였다.

집 앞 마트에 유모차를 끌고 갈 때 집에서 입던 편한 옷에 모자만 쓰고 나갔다.

다른 옷으로 갈아입을 틈도 없었고 그럴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것 또한 나에게는 에너지를 써야 하는 일로 여겨졌으니까.


결혼반지, 귀걸이 등은 사치였다.

아이가 다칠 수도 있는 모든 것은 하지 않았다.

원래 화장을 잘하지도 않았지만 선크림만 바르고 나가거나 그것조차 하지 않고 나갈 때도 있었다.

아이들은 모자에, 선크림에 다 챙겨주면서 말이다.

나 자신을 위한 치장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냥 그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오면서도 화장도 이쁘게 하고 하늘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은 엄마들을 마주했다.

순간 내 모습을 봤다. 편한 티셔츠에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있던 나.

두 아들과 함께 다니려면 그런 차림이 제일 효율적이어서 그렇게만 입고 다녔는데...

약간은 충격이었던 것 같다.

엄마도 꾸미려면 얼마든지 꾸밀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배제하고 살고 있었으니까.


둘째 아들이 5살 되던 해부터 결혼반지와 귀걸이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단조롭던 일상에 조금은 기분 전환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옷장 속에 잠들어 있던 직장 생활할 때 입고 다녔던 옷들도 하나하나 꺼내봤다.

편한 옷 말고 가끔은 이쁜 옷도 입으면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를까 봐.

그런데... 체형이 변한 것인지 타이트하게 입고 다녔던 윗옷은 어깨와 팔 부분이 너무 끼었다.

스커트들은 하나 같이 길이가 짧았다. 당시엔 잘 입고 다녔는데 지금 보니 음... 왜 이렇게 다 짧지?

민망해서 도저히 입지 못할 것 같아 눈물로 미니스커트들과 작별하고 긴 원피스를 몇 벌 샀다.

가끔 입어야지 하고 샀는데, 두 아들이 9살, 7살 된 지금도 정작 입은 날은 며칠 되지 않는다.

두 아들과 다니려면 편한 옷이 제일이다.

이리저리 움직일 일이 많기도 하고 아이들이 언제 내 옷에 무엇을 묻힐지 알 수 없기도 하기에.


그런데 아주 아주 가끔은 기분 전환을 하고 싶어 진다.

지금 이런 내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달라진 내 모습을 보고 싶은 거다.

그럴 때면 원피스를 꺼내 입고, 얼굴에 팩트도 두드리고 볼터치도 한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매니큐어도 바르고, 구두나 샌들도 신는다.

옷차림이 달라지면 행동도 달라진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달리 입으면 내 행동도 조금은 조심스러워진다.

그리고 엄마가 아닌 여자가 된 느낌이 아주 조금은 든다.

그 느낌이 좋아 아주 가끔은 기분 전환을 하나보다.

그날이 며칠 되지 않고 다시 편한 옷으로 돌아오긴 하지만.

그 며칠이라도 조금은 다른 나를 마주하면서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이미지 출처 : https://pin.it/3 EU8 j5 vsQ












작가의 이전글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바라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